좋은 테러와 문화는 어긋나지 않는다
  • 김진석 교수(인하대·철학) ()
  • 승인 1995.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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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이하이며 이상인 문화에 근거한 삶은, 문화적인 것이 잔혹함과 기꺼이 만난다는 것을 깨닫는다. 현실에서 폭력이 필요하다면, 바로 그 문화적인 것에 근거한 폭력은 의로움을 가진다. 이 점에서 문화도 바른
‘정치는 현실이다’라는 말에 깃든 귀신이 몸안에 들어와 몸을 축 늘어지게 만들면서부터 ‘문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응어리가 된다. 명목적인 해석을 걷어치우면, ‘현실’이란 무엇보다도 있는 그대로의 세력이 인정되는 공간이다. 그러자면 저 불굴의 사기꾼들인 정치가들이 지방 영주로 좌정하고 땅따먹기 하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으라는 소리인가.

중세적 봉건성이 죽다 살아나는 시대가 바로 탈현대라는 점을 다시 인식시켜 주는 시대. 정치가들뿐 아니라, 거대 기업들의 사옥도 중세의 성보다 거대한 성을 쌓아 놓았으니, ‘경제 역시 현실이다’. 그러면, 문화는 어디 있는가. 물론 문화가 정치와 경제의 바깥에 은거하는 것은 아니다. 판매 부수로 평가되는 문학, 그림 가격으로 평가되는 미술, 앨범 판매 순위 및 빌보드 차트 순위로 존재하는 음악, 관객 입장 수로 평가되는 영화 따위로 대변되는 문화도 현존하는 세력을 인정한다. ‘심지어 문화도 현실이다’.

문화인이 문화를 위해 쓴 ‘혈서’

그러나 현실 이하이면서 이상인 문화가 있다. 수적으로 적다는 점에서 ‘이하’이고, 현실보다 깊고 넓은 것을 소화한다는 점에서 ‘이상’이다. 물론 이하와 이상의 영역은 탈현실의 탈에 해당하는 것이고 거기서는 숨쉬기가 수월치 않다. 이 희박한 공기의 체험은 그가 다시 저 현실의 공간으로 내려가는 데 도움이 된다. 그가 이제 이 현실 공간에서 저항과 거부의 행동을 한다면, 그 행동에는 저 ‘이하’와 ‘이상’의 아우라가 숨어 있을 것이다.

어떤 저항? 예를 들자면, 안중근의 테러. 그를 좁은 의미의 민족주의자라고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만일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도 현실이다’라고 믿는 현실주의적 민족주의자였다면, 그는 ‘너무 깨끗하고도 너무 더러운’테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임시정부 차원의 덜 과격한 정치 및 군사 행동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의사로서의 그의 행동은, 저 현실 이하와 이상의 막막함을 체험한 자의 행위가 아닐까. 현실의 이상과 이하를 체험하고 현실로 되돌아오는 자의 행위.

흔한 편견과 달리, 좋은 테러와 문화는 어긋나지 않는다. 오히려 매우 밀접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현실 이하와 이상인 문화를 체험하고 갈구하면서도 현실을 살아가는 자가 선택한 길이 그 모양을 한다. 그 테러는 맹목적인 테러와 이름은 같지만 성질은 다르다. 백범의 경우도 이럴 것이다. 임시정부에서 일할 때 그는 바로 안중근 방식의 테러를 지원했다. 광복이 된 뒤 그의 바람은 무력이나 경제력에서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문화적으로 떳떳한 나라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두 행위는 어긋나지 않는다. 또 흔히 그의 삶이 폭력의 단계에서, 폭력을 배제한 평화로운 문화의 단계로 이행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생각도 편견이다.

물론 안중근과 백범의 삶은 과격하면서도 행복한 경우에 속한다. 현실 이하이며 이상인 문화를 등에 지고 현실에서 기는 자가 모두 그런 행복한 과격을 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작고 미세한 일을 하더라도 이하와 이상의 아우라는 거기 스며 있는 것이다. 뿌옇게. 시민과 농어민의 탈정치화한 거부, 개인들의 의로운 슬픔은 여기에 속할 것이다.

문화와 폭력의 배타적 이분법 논리가 이 사회를 중독시켰다. 80년대의 문화는 비문화적 폭력(자해와 분신)으로 치달았고 거꾸로 90년대의 문화는 수다 떠는(채팅) 비폭력으로 치닫는다. 대중 정서의 표출인 음악도 교태의 수준에 머무른다. 근본주의적 환경주의나 생명주의 역시 문화를 무균질로 만들 수 있고, 최근에 뒤늦게 유행하는 기호학적 문화론도 문화를 기호와 종이뭉치로 환원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실 이하이며 이상인 문화에 근거한 삶은, 문화적인 것이 잔혹함과 기꺼이 만난다는 것을 깨닫는다. 현실에서 폭력이 필요하다면, 바로 그 문화적인 것에 근거한 폭력이 의로움을 가진다. 이 점에서 문화도 바른 군인 정신과 상통한다.

삼풍 붕괴 후 부실 공사에 대한 부실한 조사가 반복되었고, 법의 정신을 되새겨본 제헌절 다음 날 5·18 피고에 대한 공소권 포기가 발표되었다. 법에 침을 뱉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일이다. 만일 저 현실 이하이며 이상인 문화에 속한 법이 살아 있다면, 현실의 혓바닥에 집을 짓는 법에 법의 이름으로 설교를 할 것인가? 역설이지만, 법에 호소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길거리를 달리는 차 뒷면에는 한 마디 잘린 손으로 쓴 한 마디 혈서가 복제되고 있다. ‘大韓國人’. 우습게도 뒷사람만 본다. 그래서 의거(義擧)는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문화인이, 문화를 위해 쓴 혈서가 아름답고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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