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빅토르 최>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5.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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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작가 유익서씨가 장편소설 <빅토르 최>(2권·예음)를 펴냈다. 실명 소설이며, 그래서 전기 소설 성격을 띤 이 소설은 62년 6월 카자흐스탄 공화국에서 태어나 90년 8월 라트비아 공화국 리가에서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난 옛 소련의 록 가수 빅토르 최의 생애와 음악을 한국어로 복원하고 있다.

빅토르 최가 죽던 90년 8월, 그의 죽음을 견디지 못한 젊은 팬 5명이 차례로 따라 죽었으리만큼 빅토르 최는 러시아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빅토르 최에 대한 평가에는 ‘고르바초프를 움직인 인물’ ‘페레스트로이카의 전사’ ‘쓰러져 가는 러시아 사회를 일으킨 대중의 스타’ ‘영원한 혁명아’라는 표현도 들어 있다.

그러나, 저와 같은 평판이 빅토르 최를 한국 소설 속으로 들어오게 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한인 3세가 아니었다면 그는 일부 록 마니아들에게만 기억되었을 것이다. “당초에는 한인 수난사에 관심을 갖고 중앙아시아와 연해주 일대를 취재했다”는 작가 유익서씨는 “러시아 젊은이들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 한인 3세이며, 그가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 소설의 방향을 틀어버렸다”고 말했다.

주인공이 다니던 미술학교 교실에서 음악 공연을 벌인 것이 빌미가 되어 퇴학 당하는 데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빅토르 최 개인의 성년식은 물론 러시아 한인 1세들(빅토르의 할아버지)의 피어린 유랑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을 자각하고 나아가 동양 사상의 넓이와 깊이를 만나는 과정까지 확대된다. 또한 러시아 현대사를 곳곳에 배치해, 빅토르 최가 살았던 80년대 옛 소련의 정치·사회 분위기를 전달한다.

미술·목각·영화·시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던 빅토르 최의 음악 세계는 자유를 향한 치열한 도전으로 압축된다. 구미의 록 형식을 빌려왔지만, 거기에다, 당시 소련 젊은이들을 옥죄고 있던 체제·제도·관습·가치관 등을 정면에서 공격했다. 거기에다 러시아 특유의 우울한 정조를 밑바탕에 깔아 많은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어머니 나는 건달입니다’ ‘운명은 다른 법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더 사랑한다’‘문에 열쇠가 맞지 않으면 어깨로 문을 부숴라’‘나는 밤이고 너는 아침의 주제다’와 같은 노랫말들은 러시아 젊은이들을 ‘선동’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석연찮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빅토르 최의 묘지는 5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팬들이 지키고 있다.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에는 ‘빅토르의 벽’이 있고, 러시아 곳곳의 도시에는 빅토르 거리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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