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세대여 힘을 내라
  • 이성욱 (<문화과학> 편집위원) ()
  • 승인 1995.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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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과 열혈의 시대 80년대를 온몸으로 건너온 30대는 지금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당당했던 20대 시절의 정체성을 ‘향수’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30대의 자신감으로 다시 길어 올려야 한다.”
벌써 회고거리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우리에게 지난 80년대는 분명히 한국 현대사에서 격동과 열혈이 가장 충만했던 연대로 기억될 터이다. 사람의 인생에 비유하자면 그 80년대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사춘기나 청년기로 간주될 만하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가 온전한 근대 사회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는 데에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통과 제의의 한 형태로 80년대의 사춘기·청년기적 성격이 드라마틱하게 융기했었던 셈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이른바 ‘모래시계 세대’라고 하는 지금의 30대일 것이다.

80년대 격동의 주인공들인 30대는, ‘정상대로’라면 80년대의 정치적·사회적 연단에서 얻은 경험을 주요한 미덕으로 삼아 이 사회 곳곳에서 제 몫을 하고 있어야 할 터이다. 그 몫 중의 하나는 풋내 나는 청년과 쉰내 나는 장년 사이에서 양 세대가 세대적 한계 때문에 하지 못하는 역할을 탄탄하게 수행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80년대의 고유한 경험에 대한 자긍을 21세기의 새로운 조건에 맞추는 모양으로 현재화하는 능력과 희망이다. 때문에 그들에게 20대의 약동과 역사 의식과는 또 다른 의미의 성숙된 약동과 당대적인 책임의식이 여전히 필요하다.

30대 작가 문학 작품들은 ‘조로 증상’의 한 단편

하지만 그 30대는 지금 다른 어떤 세대보다 갈등과 분열, 피해의식이나 무기력에 시달리는 문제 세대로 존재하는 형편이다. 다른 분야는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적어도 공지영·김인숙·김형경·최영미 등 30대 작가들이 80년대를 그린 작품들을 보면 이런 면은 금방 눈에 띈다.

그런 작품들의 눈길은 대개 과거에 가 있고 또 대개 과거에 고착되어 버린다. 벌써 80년대를 추억이나 향수의 대상으로 삼아 그 안에서 뭉그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런 작품에서 80년대의 열혈은 대개 울혈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그 작품들에는 당대가 보이지 않는다. 80년대에 가장 당대적이었던 그들에게서 이제 당대는 종적을 감추었다는 말이다. 물론 눈길을 앞으로 두기 위해서는 뒤를 먼저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해서 그런 작품들이 예전처럼 ‘중단 없는 전진’ ‘앞으로! 앞으로!’라는 슬로건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의 작품들을 비롯해 과거 지향에 발목 잡혀 있는 30대 작가들의 작품을 지배하는 정조는 너무 일찍 늙어 버린, 그래서 세상의 모든 감정과 겪음을 다 안다는 듯한 조로 증상이라는 점이다.

이런 조로 증상은 한편으로 당대에 대한 자신감 부실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되돌아보면 지금 30대들은 우리 역사에서 음습한 음지 속에 유배 혹은 봉쇄되고 억압돼 왔던, 그래서 기어이 넘어서야 했던 문제와 모순들을 광장의 햇발 아래 끄집어 내놓은 세대이다. 정치 민주화, 분배의 평등, 가부장 이데올로기 극복, 성모순에서 출발하는 여성해방에의 지향을 그들은 외쳤다. 또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순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신과 각고를 마다지 않았으며, 이를 위한 자신감 또한 팽팽했었다.

당대의 문제의식 그 끈은 놓지 말아야

일의 순서를 따지자면 자기들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서 이제는 하나하나 생각을 익히고 해결의 방책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하지만 지금 30대는 자기들이 제기했던 문제에 오히려 치이고 있는 듯하다. 성모순을 본질로 하는 세칭 ‘간 큰 남자 시리즈’라는 우스갯소리의 주인공이나 되고 있고, 자기들이 개봉한 80년대적 화두들을 더욱 발본적으로 치고 올라오는 신세대의 문제 제기에 제대로 화답조차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사회를 현실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장년층에 대해 예전처럼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장년의 질서에 편입되어 가기를 즐기는 듯하다. 30대를 ‘주요 고객’으로 삼겠다는 신당의 어처구니없는 발상도 어찌 보면 봉건적 영주 정치 하나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현재 30대의 초상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한 것인지 모른다. 30대는 점점 자신감 없음에 시달리고 있다.

더욱 중층화하고, 더욱 촘촘하게 짜이는 사회에서 각 세대에 고유한 문화의 정체성과 역할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다른 세대 문화와의 길항을 통해 사회는 더욱 다양하고 탄력적인 생산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신세대 문화와, 3김이 대표하는 구세대 문화의 정체성은 가열하되 정작 ‘모래시계 세대’의 문화는 휘발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제 30대는 그토록 선명하고 자신감 넘쳤던 자신들의 20대 시절의 정체성을 ‘향수’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30대의 자신감으로 다시 길어 올려야 한다. 그들은 여전히 “익명의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등푸른 생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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