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 막막한 사랑의 교감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4.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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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제목을 믿고 보았다가는 배신감을 느끼기 딱 좋다. 하지만 그 배신감은 씁쓸하다기보다는, 기특하다. 번역 제목은 ‘맹맹한 멜러 영화’에 어울림직한데 영화는 원제와 더 잘 맞아떨어진다.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 소통에 문제가 생긴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것이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딸인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다.

빌 해리스(빌 머레이)는 일본의 위스키 광고를 찍기 위해 도쿄에 도착한다. 중년 이상의 일본인들은 그가 출연한 영화의 장면을 줄줄 꿰며 그를 반긴다. 그는 극심한 피로를 느낄 뿐이다. 촬영장에서 일본인 CF 감독은 뭔가 열심히 광고의 설정을 설명한다. 통역자가 전하는 말은 단 두 마디뿐이다. ‘카메라를 보라. 영감을 주는 표정을 지어라.’ 길거리에서도, 병원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한편, 유능한 사진 작가인 남편을 따라 일본에 도착한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홀로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물에 뜬 기름처럼 겉돌던 샬롯은 호텔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해리스를 발견하고 말을 건넨다. 둘은 고작 1주일 사이에 오다가다 부딪치면서 교감을 나눈다. 그것은 농밀한 끌림이라기보다는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다.

두 사람은 단 하룻밤 침실을 함께 쓴다. 하지만 침대에 누운 두 사람이 하는 일이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이다. 중년인 해리스는 옆에 누운 샬롯의 발을, 손도 아닌 발을 만지작거린다. 헤어지는 장면도 심심하다. 급히 차에서 내려 그녀를 붙잡은 빌은 그녀를 포옹한 채 귓속말을 나눈다. 내용은 들리지 않고, 그녀는 ‘알았어요’라며 미소를 짓는다.
영화에서 두 사람의 교감만큼이나 비중이 큰 것이 일본에 대한 묘사이다. 도쿄의 번화한 유흥가 신주쿠 거리를 비롯해, 교토의 고풍스럽고 평화로운 모습을 꼼꼼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문화에 대한 감독의 감정은 그다지 긍정적인 것 같지 않다. 해리스는 난데없이 들이닥쳐 혼자 강간 퍼포먼스를 벌이는 콜 걸에게 당하고, 배우를 데려다 온갖 우스꽝스러운 짓을 따라 하도록 강요하는 연예 프로그램에 나가 진땀을 흘린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일본인 할아버지도 우스꽝스럽다.

그렇지 않아도 주변과 소통이 막힌 두 사람이 낯설디 낯선 곳에서 더욱 곤혹스러워한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다른 나라의 문화를 채집하는 감독의 태도가 고집스럽다는 느낌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저 낯선 곳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 치고는 분량이 너무 많고, 일본 문화에 관심을 보인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태도가 너무 닫혀 있다.

2004년 골든글로브에서 작품상·각본상 등 3개를 휩쓸었고, 아카데미 영화상에도 4개 부문이 노미네이트되어 있다. 빌 머레이의 코믹한 외모는 유머러스한 설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젊은 연기자 스칼렛 요한슨도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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