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대책 ‘힘’ 빠진다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4.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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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투기지역 해제…규제 완화 주장하는 실무 부처 입김 세져
‘10·29 부동산 종합대책’이 실효를 잃어가고 있다. 아파트값 급등과 부동산 투기를 막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10월29일 재정경제부와 건설교통부가 마련한 부동산 종합대책이 부동산 경기를 ‘과잉침체(overkill)’시켰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정책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재경부와 건교부가 종합대책을 마련했지만, 사실상 주도한 곳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였다. 정책기획위는 부동산 투기가 계층 갈등을 심하게 하고 소득 불균형을 일으키는 주요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부동산 경기 ‘진압’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종합대책은 지나치게 위력적이었다. 건설 경기가 위축되었고 전세값·집값이 떨어졌으며 내수 침체 심화와 성장률 둔화 징후까지 뚜렷해졌다. 일부에서는 부동산값이 빠르게 하락하면 일본처럼 자산 가치가 떨어지고 내수 침체가 더 심해져 장기 복합 불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당시 종합대책에 반대해 ‘왕따’ 당했던 재경부 고위 인사는 성장우선론자로 분류되는 이헌재 부총리 취임 이후, 이부총리와 함께 권토중래했다. 주요 정책 기획 업무에서 주도권을 회복한 이 인사는 이부총리의 신임을 등에 입고 종합대책을 손보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이 인사는 “부동산 종합대책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부동산 경기를 경착륙시킬 독소가 가득하다”라고 말했다. 부동산 종합대책에 반대하는 정부 인사들은 우선 거부감이 적은 부문부터 풀기 시작해 차츰 핵심 조항까지 손보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10·29 부동산 대책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가장 먼저 손을 본 것은 투기과열지구와 주택거래신고제다. 8월25일부터 부산광역시 북구를 비롯해 지방 7개 시·군·구를 주택투기지역에서 해제키로 했다. 건교부는 주택거래신고 대상 지역을 손질한다. 지금처럼 구 단위가 아니라 동 단위로 주택거래신고 대상을 지정키로 하고 집값이 안정된 곳은 신고 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규제완화책이 잇달아 쏟아지자 경직되었던 시장 분위기가 다소 풀리는 듯하다. 또 지방 4개 광역시가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되면 이 지역에서 부동산 경기가 연착륙을 시도할 만한 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부동산 규제 완화책이 ‘알맹이’가 없다고 지적한다. 허문욱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규제 완화책이 10·29 부동산 종합대책의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평가되는 한편, 내년부터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제와 주택거래신고제가 시행되면 주택건설 경기가 회복되는 시점은 늦춰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오히려 종합부동산세와 재건축 개발이익환수제가 시행되면 부동산 시장은 헤어 나오기 힘든 침체의 늪에 빠질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 “알맹이 없는 완화책”

부동산 경기는 정책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는 10·29 종합대책이 기조를 이루고 있지만 실무 선에서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탄력적으로 적용하며 독소 조항들을 무력화하려는 분위기이다. 재경부와 건교부 실무 부서가 ‘꼬리가 몸체를 흔들 만큼’ 시행하는 과정에서 종합대책의 기조를 바꿀 수 있다면 주택건설 경기는 살아날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의 정책 의지가 실무 부서의 규제 완화책을 압도한다면 부동산 경기가 경착륙할 여지가 없지 않다.

지금은 이헌재 경제 부총리가 경제 정책 운용의 주도권을 쥐고 있으므로 실무 부처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세력 판도에 변화가 없는 한 하반기 종합부동산세와 재건축 개발이익환수제 과세 대상과 범위에서 완화책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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