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 로또 복권 그리고 금메달
  • 이문재 기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4.08.1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추 수확이 한창이었습니다. 살인적인 무더위를 피해 농부들은 아침 일찍 밭으로 향했습니다.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경운기에 일꾼 몇을 태우고 고추 따러 가던 한 농부는 “날씨가 너무 더워 올 고추농사 다 망쳤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어떡할 참이냐고 물었더니 “산삼이나 캐러 가야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그는 산삼 열댓 뿌리를 캐 빚을 갚았다고 합니다.

 
지난 8월 초, 청송에 있는 한옥체험관에서 휴가를 보내고 서울로 돌아왔더니 연일 산삼이 화제였습니다. 심마니가 보관해 놓은 산삼을 몰래 먹었다가 2천5백만원을 물어주기로 한 남자 얘기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광주 인근 산에서 더덕인 줄 알고 캐먹고 남은 것이 50년 넘은 산삼이었다는 뉴스가 이어졌습니다.

산삼을 캐 횡재했다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간밤에 무슨 꿈을 꾸었느냐? 이 대목에서 산삼과 로또 복권이 만납니다. 극소수 심마니들이 아니라면, 산삼은 길몽을 꾸지 않으면 만나기 힘든 ‘꿈’입니다. 로또 복권도 돼지꿈을 꾸지 않는 한, 당첨을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건강한 사회는 앞날을 예측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앞이 캄캄한 사회’에서는 꿈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꿀 수 있는 꿈은 횡재밖에 없습니다. 횡재는 인간의 판단이나 의지 바깥에 존재합니다.

산삼 얘기가 아테네올림픽 소식에 묻혀가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며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까닭은 꿈을 성취하는 선수들의 드라마 때문일 것입니다. 스포츠의 세계는 예측 가능한 세계입니다. 스스로 꿈을 세우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비인기 종목이 특히 감동적인 까닭은 거기에 횡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몇몇 인기 종목의 금메달은 횡재를 가져다 주지만, 횡재가 금메달을 따게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