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 서명숙 (smsisapress.comkr)
  • 승인 2003.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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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슴에 무지개를 안고 살던 시절 누구나 한번쯤 마음에 품었음직한, 이형기 시인의 <낙화> 첫머리이다. 독자들은 마음 가는 대로 연애시로도, 실존시로도 받아들였다.





언제부터였던가, 내가 이 시를 풍자시로 비틀어 읽기 시작한 것은. 그만하면 되었다 싶고, 차고 넘치는데도 욕심 부리는 사람 앞에 서면 이 시가 절로 떠올랐다. 떠날 때가 충분히 되었고, 주위 사람들이 떠나라고 아우성인데도 자리에 집착하는 높은 분들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들일수록 자신은 그닥 미련이 없지만 오로지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려 한다고 강변했다. 본인말고는 그들의 봉사를 원하는 이들이 없는 것 같은데도. 그들처럼 경륜을 쌓지 않고서는, 그처럼 높은 자리에 가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처신이었다. 하기야 오죽하면 노욕(老慾)이라는 말도 있을까마는.



그런 풍경에 익숙한 우리에게 김중배 문화방송 사장의 사의 표명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다. 노무현 정권 사람들도, 방송가 사람들도, 그가 물러나기를 강요하거나 촉구한 흔적은 없었다. 임기도 2년이나 남겨둔 상황이었다. 언론 개혁 차원에서는 그가 남아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다.



물리적인 탄압과 가혹한 검열을 일삼던 군사 정권에서 풍성한 비유를 동원한 그의 칼럼은 행간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한 시대를 가파르게 감당했던 언론인답게, 그는 떠날 때를 스스로 정하는 절제미를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글로, 나중에는 처신으로 후학에게 본을 보인 대선배께 경의를 표한다. 그의 뒷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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