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행 국민통합21 대변인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3.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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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멀찍이 떠나겠다”
지난 12월19일 아침. 국민통합21 김 행 대변인(43)은 지독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몽준 쇼크 때문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통합21에서 자원 봉사를 했던 딸 지수도 비슷한 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모녀는 이틀간 죽을 듯이 아팠다고 한다. 12월21일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김대변인은 짐을 싸서 당에서 나왔다. 김씨는 “그나마 노후보가 당선되어 단일화의 소임은 다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2002년 11월10일 통합21에 합류했다. 당시 정대표 지지율은 조금씩 빠지고 있는 상태였다. 정대표의 앞날이 불투명했기 때문에 잘 나가던 여론조사 전문가인 그녀의 입당은 더욱 세인의 눈길을 끌었다. 통합21 내부에서도 김씨의 입당을 무척 반겼다.


입당하자마자 김씨는 정대표에게 노후보를 만나라고 제의했는데, 노-정 회동은 이틀 후에 성사되었다.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제의한 사람도 그녀였다. 단일화가 타결되었을 때만 해도 정대표는 근소하나마 노후보를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당내에서 ‘역선택’ 문제를 들고 나와 시간을 끌자 여론조사 결과도 바뀌었다. 단일 후보 발표 후 김씨는 “여론조사 전문가로서 역선택이라는 것은 터무니없었다. 하지만 당내 일부에서 역선택을 부추긴 꼴이 되고 말았다”라며 안타까워했다.


11월25일 노후보가 단일 후보로 선출되자 당내에서 김씨를 바라보는 눈은 싸늘했다. 이때부터는 운전기사인 김용완씨가 경호원 노릇을 해야 할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김씨는 단일화 과정에 대한 ‘경위서’를 쓰는 등 수모를 당했다. 또 당내 일부 인사는 대통령 후보 등록 서류와 기탁금을 챙겨가지고 다니며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 결과가 잘못 되었다고 발표하라’며 김씨에게 압력을 가했다.


정대표가 노후보 지지를 철회하던 날. 김씨에게 대변인이라는 직책은 재앙이었다. 그녀는 5층 기자실에 도착해서야 회견문을 전달받아 마이크를 잡았다. 기자회견문을 읽은 후 본인 스스로 당황했는지, 오히려 기자들에게 “정대표 개인의 지지 철회이지 공조 파기는 절대 아니다”라고 했다. 적극적으로 정대표의 지지 철회를 막지 않았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데 대해 김씨는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당직자들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날 밤 당직자들과 함께 정대표 집을 찾아간 김씨는 “공조 파기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수모를 겪고도 견뎌 왔는데…”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12월24일 그녀는 지지 철회에 대해 정대표를 옹호하는 장문의 보고서를 들고 기자들 앞에 나타나 뉴스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당내 일부와 네티즌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다.


올 봄 지방 대학 강단에 선다


정치인으로 외도한 기간은 40일. 김씨는 “자기가 먹던 우물에 침을 뱉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며 당과 정대표에 대해서 극도로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정대표가 카터 전 대통령처럼 훌륭한 지도자로 다시 설 길은 아직 남아 있다고 했다. 그러려면 정대표가 먼저 자신의 행동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행씨는 가능한 한 여의도에서 멀찍이 떠나겠다고 했다. 후보 단일화라는 역사의 중심에 서서 성공과 실패를 한꺼번에 겪은 그녀는 “정치에 관해서는 두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해 합의문을 읽던 순간만을 기억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다음 학기부터 지방의 한 대학에서 정치사회학을 가르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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