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근무 지침은 포르노를 보라?
  • 이문재 기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4.01.2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설연휴를 마치고 오랜만에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한 가지 걱정이 떠올랐습니다. 1주일(시사 주간지는 설에 합병호를 내기 때문에 1주일 가량 쉽니다) 동안 쌓여 있을 스팸 메일 생각을 하니, 한심하기만 했습니다.

컴퓨터를 켰더니, 아니나 다를까 새카맸습니다. 5백여 통의 메일 가운데, 필요한 것은 다섯 통을 넘지 않았습니다. 오전 9시가 갓 넘었을까요, 편집국에서는 작은 소동이 일었습니다. 편집국 기자 대부분이 ‘04년 한해 근무 지침’을 받았던 것입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포르노 메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매일 아침, 모니터 앞에서 난감해지곤 합니다.

인터넷 사용자 천만 명 시대. IT 강국 국민 4명 중 한 사람이 매일 아침, 혹은 1주일에 한두 번씩 난감한 메일을 지우는 데 시간을 허비합니다. 새로운 사회적 비용입니다. 유엔국제무역개발기구(UNCTAD)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에서 발생한 스팸 메일 피해액은 무려 24조6천억원에 달합니다.

한국의 경제 활동 인구 100%가 갖고 있다는 휴대전화도 예외가 아닙니다. 각종 홍보성 전화가 걸려오고, 난데없는 문자 메시지가 수시로 뜹니다. 온라인에서 자행되는 이 ‘무단 주거 침입’ 혹은 ‘쓰레기 투기’를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오프라인에서 과정과 절차가 존중되지 않는 한, 인간에 대한 예의가 갖추어지지 않는 한 스팸 메일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매일 아침, 모니터에서 쓰레기를 치우며 중얼거립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점심(무료 인터넷) 얻어먹고 난 뒤 설거지하는 셈치자, 라고 말입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