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애의 구도자’가 길에서 쉬랴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5.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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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 미술전 열고 창작집도 준비…“야한 소설 계속 내겠다”
지난 1월27일 오후, 서울 동부이촌동 마광수 교수(54·연세대 국문학)의 낡은 아파트를 방문했다. 문이 열리자 담배 냄새가 확 끼쳤다. 반백의 머리카락이 절반은 빠져나간 듯한 그의 얼굴은 몇 년 전보다 훨씬 수척해 보였다.

마교수를 만나기로 한 것은 그의 그림 전시회 소식을 듣고서다. 그는 요즘 20년 지기인 서양화가 이목일씨와 함께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 2인전을 열고 있다. 신문에 소설을 연재할 때나 책을 출판할 때 그는 자기 그림으로 삽화나 책 표지를 장식하곤 했으니까 그의 그림이 낯선 것은 아니다. 그는 1991년과 1994년에 전시회를 연 ‘화가’다.

당시는 이른바 그의 전성기였다.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와 에세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로 한창 필명을 날렸다. 그 즈음 <즐거운 사라> 사건이 터졌다. 1992년 그는 음란물제조혐의로 구속되었다. 그후 10여 년 동안 직위 해제와 시간 강사 생활, 복직, 재임용 탈락 위기, 휴직을 반복해 겪으면서 그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때마다 그림으로 마음을 달래곤 했다.

“손으로 비비고 문지르고 칼로 긁어서 그림을 그리는데, 그게 글보다 훨씬 재미있다. 글은 문법 싸움이다. 기승전결을 따져야 하는데 그림은 즉흥성이 있다. 따로 화실은 없다. 방 한쪽에서 책 읽다, 글 쓰다, 그림 그리다 한다.”

남성 성기를 상징하는 듯한 나무와 야하게 색칠한 손톱을 그린 듯한 단풍 숲이 그의 단골 소재. 마치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듯한 느낌을 주는 그림은 일종의 ‘치졸미’를 풍긴다. 미술 평론가 정목일씨는 ‘아픈 세계와 상통하고 해소하는 통로를 열어 공감과 치유의 장을 마련해준다’고 그의 그림을 평가했다.

야한 귀신 이야기 담은 소설 <광마잡담> 집필

사변을 겪고 몸이 망가질수록 그의 ‘야한 기질’은 더 벼려진 듯하다. 그가 한동안 창작보다 <성애론> <문학과 성>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같은 문학 이론서를 많이 쓴 것도 자기 작업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소설 세 편을 연재하면서 간행물윤리위원회와 검찰로부터 전화를 여러 번 받았다. “당신, 대학 교수가 그러면 되느냐고 훈계한다. 소설 화자가 대개 ‘나’이고 직업이 대학 교수로 설정된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소설은 허구다. 그걸 구분 못한다. 코미디 같은 이야기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씨 식으로 말하자면, 겉은 야하지 않고 속만 야한 그를 향한 모럴 테러리스트들의 습격이 아직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올해 안으로 소설·시집·문화비평집을 각각 한 권씩 펴낼 생각이다. 거의 마무리되고 있는 소설 <광마잡담>은 야한 여자 귀신 이야기다. 동양의 전통 설화를 패러디한 전기(傳奇) 소설이다.

“요즘 몸 담론이 유행인데 나는 20년 전부터 육체주의 미학을 주장해왔다. 성애론이나 카타르시스론 같은 내 문학관은 동양 철학에 바탕을 둔 것이다. <주역>의 음양론은 상징의 보고이고, 노장이나 열자 등 동양에는 쾌락주의, 육체중심주의 사상이 있었다.”

그는 재작년 가을 학교에 복귀했으나 아직 정을 붙이지 못한 듯했다. 아파트 거실과 방 곳곳에는 해직되면서 학교 연구실에서 옮겨온 책들이 그대로 꽂혀 있었다. “집이 편하다. 학교에는 강의하러만 간다”라고 그가 담배에 또다시 불을 붙이며 말했다. 하루 두 갑씩 피운다고 했다. 최근 위장병과 당뇨가 찾아들면서 술은 자연히 줄었다고. 오래 전 이혼한 그는 85세 노모와 단둘이 산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젊은 제자들과 어울려 놀곤 했는데 이젠 늙어버렸다. 외로워도 연애할 생각도 못한다.” 그가 쓸쓸히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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