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만 빛난 할리우드 따라 하기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4.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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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영화제 시상식에 나타난 ‘스타 패션’
스타 산업과 뷰티 산업은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 시대의 미의 척도가 바로 스타를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스타 산업과 뷰티 산업의 ‘환상 결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배우 오드리 헵번과 지방시의 관계다. 영화 <사브리나>에서 오드리 헵번은 지방시가 디자인한 검은색 꽃무늬 자수가 놓인 흰색 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이후 지방시는 ‘헵번 스타일’을 완성하고 패션계를 주름잡았다.

매년 열리는 영화상 시상식은 시대의 미감이 집대성되는 이벤트로 많은 관심을 모은다. 할리우드 스타들도 스타 패션 비평가인 조안 리버스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운다. 양적·질적으로 성장한 한국 영화의 한 해 성과를 가늠하는 청룡영화상과 대한민국영화대상 시상식이 최근 잇달아 열려, 국내 패션 관계자들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올해 영화상 시상식 의상은 유례 없이 화려했다. 배우들은 명품 드레스와 정장을 입고 나와 높아진 자신들의 위상을 과시했다. 시상식 의상의 전체적인 컨셉트는 ‘럭셔리’였다. 여배우들은 화려한 롱 드레스로 여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냈고, 남자 배우들은 유럽 황실의 상징색이던 보라색 의상을 입고 나왔다

그동안 영화상 시상식 의상으로 화제가 되었던 것은 청룡영화상 사회를 보는 김혜수의 의상이었다. 그녀가 입고 나오는 옷의 노출 정도가 매년 관심을 모았다. 올해는 김민정·이은주·김효진·공효진 등 젊은 여배우들이 노출 패션에 동참했다. 특히 아역 배우 출신인 김민정은 가슴이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의상을 입고 나와 김혜수를 압도했다.

올해 나타난 특징 중의 하나는 남자 배우들도 패션 경쟁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쟁은 강동원·조한선·이동건 등 패션 모델 출신 배우들이 주도했는데, 턱시도 차림인 장동건은 갈기머리를 하고 나와 눈길을 모았다. 반면 최민식·설경구·송강호 등 중견 배우들은 노타이 차림의 세미 정장으로 최소한의 예의만 차리고 참석해 묘한 대조를 보였다.

영화상 시상식 시청률은 패션에 민감한 20대 여성층에서 특히 높게 나타난다. 각종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서 스타들이 시상식에 입고 나온 의상에 대한 정보가 쏟아지면서 스타 패션은 확대 재생산된다. 이는 시상식이 끝나고 나면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스타들의 패션을 품평하는 글이 줄지어 올라오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네티즌들은 스타들의 패션에 대해 조금 냉정한 편이다. 스타들이 ‘따라쟁이’들이기 때문이다. 스타들이 시상식에서 입고 나온 옷들은 대부분 해외 명품 브랜드 옷으로, 이미 컬렉션을 통해 발표되었던 옷들이다. 올해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연예인들이 입고 나온 옷은 입생로랑(장진영) 미쏘니(김효진, 문근영) 구치(김혜수, 김정은) 등 주로 해외 명품 브랜드였다. 네티즌들은 의상의 원래 모델 사진과 같은 옷을 입은 스타의 사진을 비교했다.

한복·국내 디자이너 작품은 ‘찬밥’

시상식 패션에서 아쉬운 점은 우리 한복이 배척당한다는 사실이다. 올해는 특히 한국 영화로는 드물게 ‘코스튬 드라마’(영화 의상 전문 디자이너가 참가하는 시대극)에 속하는 <스캔들>이 개봉되어 관심을 모았지만 한복을 차려 입고 나온 배우는 없었다. 단지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신성일·엄앵란 부부와 원로 배우 황정순씨가 함께 한복을 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을 뿐이다.

한복은 배척당했지만 중국풍 의상은 환영받았다. 청룡영화제에서는 장진영이,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는 문소리와 강혜정이 중국풍 의상을 입고 나왔다. 네티즌들은 이를 여배우들의 할리우드 따라 하기라고 해석했다. 199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니콜 키드먼이 존 갈리아노가 디자인한 아시아풍 의상을 입고 나와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복이 배척당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국내 디자이너가 찬밥 신세라는 점이다. 국내 디자이너의 옷은 정구호씨의 옷을 입은 장미희씨를 비롯해 주로 중년 배우들이 선택했다. 삼성패션연구소 김정희 연구원은 “해외 명품 브랜드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밀려 국내 디자이너 의상을 입는 스타가 해마다 줄고 있다. 한국 영화의 성과를 패션계가 이어받지 못해 아쉽다”라고 말했다.

국내 디자이너들이 대부분 부진한 가운데, 뉴욕에서 활약하고 있는 부부 디자이너 윤한희·강진영 씨의 활약이 주목되었다. 배우 손예진과 이나영이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이들이 만든 브랜드 Y&kei의 옷을 입고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Y&kei는 이나영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홍보 효과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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