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네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4.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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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연예 뉴스 방송하는 케이블 TV 곧 개국
D-36.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YTN 미디어(대표 표완수) 제작국 곳곳에는 이런 숫자판이 붙어 있다. 오는 12월15일 ‘YTN 스타’ 개국을 앞두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이다. YTN 스타는, 본격 연예 정보 케이블 채널로 YTN 계열사 채널답게 24시간 연예 뉴스를 제공한다. 두 시간마다 정규 연예 뉴스가 편성되고, 기획물이 그 사이를 채운다. 모토는 ‘퀵 앤드 펀(Quick & Fun). 이제 리모컨 버튼만 누르면 오늘, 이 시간 연예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본격 연예 뉴스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연예·스포츠 뉴스가 24시간 넘쳐나는 현상은 이미 포털 사이트가 연예·스포츠 뉴스를 강화하면서부터 전면화했다. 이들 기사가 ‘미끼 기사’ 노릇을 하면서 포털 사이트의 들머리는 매시간 다른 연예 기사로 대체되곤 했다.

아예 포털용 연예 기사를 생산하는 것이 주요 업무가 된 매체도 많아졌다. 신생 포털 ‘파란’이 스포츠 신문 다섯 곳과 독점 계약을 맺으면서, 다른 포털들이 부랴부랴 새로운 공급선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제 연예·스포츠 기사를 생산하는 곳은 스포츠 신문만이 아니다.

포털 사이트와 온·오프 매체, 연예 기사 전쟁

사태가 불거지기 전부터 CBS 노컷뉴스는 연예 뉴스를 특화한 ‘노컷연예’ 파트를 새로 만들었고 이후 국민일보도 ‘갓 구워낸 바삭한 뉴스, 쿠키뉴스’라는 이름으로 연예 스포츠 기사를 특화해 미디어다음에 공급하고 있다. 지난 9월 온·오프 경제지인 <머니 투데이>는 실시간 연예 뉴스인 ‘스타뉴스’를 오픈했고, 영화·연예 뉴스를 중심으로 하는 인터넷 신문 ‘뉴스네’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포츠 신문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포털의 요구와,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는 매체들의 움직임이 마침 맞아떨어진 것이다.

보수적인 언론사도 가세했다. 정통 통신사인 연합뉴스는 스포츠 신문 기자를 새로 영입해 대중문화팀을 대폭 보강했다. 후발 통신사인 뉴시스는 이미 전지현 결혼설을 터뜨려 기성 스포츠 신문 못지 않은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취재 스타일을 과시했다가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려 있다. 11월에는 정보기술종합지 아이뉴스24가 엔터테인먼트 뉴스를 다루는 조이뉴스24를 분리해 특화했다. 급기야 12월에는 연예 정보 전문 케이블 채널까지 등장하는 것이다.

정통 뉴스 채널인 YTN이 모기업이라는 점에서 특히 YTN 스타의 행보는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대규모 공채를 통해 인력을 보강하고 전문 영상 인력이 결합되는 만큼 YTN 스타의 출현은 연예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던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케이블 채널에서는 m·net과 EtN이 매일 5시와 4시에 연예 정보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이를 하루에 2~3회씩 재방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반면 YTN 스타는 2시간마다 업그레이드된 생방송 뉴스를 진행하겠다고 벼르고 있다(86쪽 인터뷰 기사 참조).
이제 무가지와 인터넷 언론에 밀린 스포츠 신문의 위기는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그 빈자리가 이렇듯 별 아쉬움 없이 채워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스포츠 신문 퇴조와 함께 그 역기능도 함께 사라질까. 빈자리를 채우며 새로 등장하는 연예 뉴스 공급자들은 하나같이 ‘품격 있는 뉴스’를 표방한다. 하지만 가판 비중이 큰 탓에 이른바 ‘제목 장사’라고 불리는, 부풀리기에 의존해온 스포츠 신문 특유의 편집 방식은 인터넷 환경에서 더하면 더했지 나아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제목 장사·홍보성 기사 사라지지 않을 듯

비판 없는 홍보성 기사로 흐르는 경향도 더욱 심해졌다. 매체가 폭증하면서, 이른바 연예계와 연예 저널리즘 사이의 힘의 균형은 일찌감치 깨졌다. 영화계든 가요계든 거대 기획사의 출현은 과거 대중 스타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던 스포츠 신문의 위세를 먼 옛날 일로 만들어 버렸다. 스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온갖 찬사를 늘어놓으며 말 한마디 얻어 듣기에 급급한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기자뿐 아니라 대중 스타들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최근 한 가수는 자신의 앨범을 비판한 한 인터넷 언론에 대해 ‘자격을 갖추고 비판하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말미에 ‘나를 만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는 말을 덧붙여 구설에 올랐다.

이 와중에 불거진 것이 이른바 ‘몸 파는 여기자’ 사건이다. 평소 연예 저널리즘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해온 <브레이크 뉴스>의 변희재 편집장은 ‘저널과 연예계의 역학 관계가 역전된 나머지 일부 여기자들이 일을 진행하면서 매니저에게 몸을 팔기도 한다더라’는 요지의 기사를 작성했다가 여기자 폄하 행위로 몰려 곤욕을 치렀다. 끝내 변씨가 사과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그 파문이 워낙 큰 탓에 원래 제기하려고 했던 문제 의식은 흐지부지 묻히고 말았다.

연예 기사가 인터넷 포털에서 호객꾼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과연 현재 모습 그대로 경쟁력과 채산성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스포츠 신문의 빈자리를 빠르게 대체하는 신생 매체들의 경쟁력은 오로지 저비용에서 말미암는다. 드라마와 함께 한때 시청률 보증 수표였던 지상파 방송의 연예 정보 프로그램 시청률은 10% 이하로 뚝 떨어졌다.

양은경 교수(충남대·신문방송학)는 “매시간 연예 소식을 접하는 환경이어서 주간 뉴스 브리핑 격인 지상파 연예 프로그램의 유인력이 떨어졌고, CF 촬영 현장 탐방 등 홍보 일색의 안이한 구성과 스캔들 위주의 사생활 노출에 대한 염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지금 이대로는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는 것이다. 오히려 나이 지긋한 책임 프로듀서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기획 취재에 치중하는 20년 전통의 연예 프로그램 KBS 2TV <연예가 중계>가 그나마 지상파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시청률이 높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시청자들, 지상파 연예 프로그램에 염증”

<일간 스포츠>는 지난 10월 초 그간의 보도 관행을 반성하는 글을 실어 화제가 되었다. ‘(전략) 감동의 스포츠 세계를 사실 그대로 보도하지 못했고, 연예 기사는 가십·스캔들 위주로 치우친 경향이 많았습니다.’ 인터넷과 무가지 협공에 밀리고, 스포츠 저널리즘의 임무에도 충실하지 못했다고 자성하고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다짐을 한 셈이다.

YTN 스타는 올해 하반기 빅뱅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연예·스포츠 기사가 폭증한 마당에 등장하는 것이다. 그만큼 과연 양질로 바뀌는 계기가 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편 YTN 스타의 채널 유전도 눈길을 끈다. 영화 정보 채널인 ‘무비 플러스’의 전신은 예술 채널인 ‘A&C 코오롱’. 공연과 콘서트 등 이른바 고급 문화에서 영화라는 대중 매체로 초점을 옮겼다가 이제는 일반 연예와 스포츠로 영역을 이동한 것이다. 교육방송 프로듀서 출신으로 A&C 코오롱 시절부터 제작을 지휘해온 한강우 YTN 미디어 상무는 “고급 대 대중 문화라는 구도보다는 현장에 강하다는 장점을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아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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