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악마는 미래의 주체”
  • 이문재 편집위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3.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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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이어령 교수, 새로운 분석 내놓아인류 문명 이끌 역동적 가능성에 주목
그날, 우연찮게도 시인 김지하씨는 광화문에 있는 관광공사 지하실에서 강연하고 있었다. 강연을 마치고 길거리로 나오자 온통 붉은 물결이었다. 옆에 있던 관료 출신 인사가 “아주 이례적인 현상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건 일과성이 아니다. 붉은악마는 또 온다. 형태를 달리 해서 다시 온다”라고 말했다. 지난 해 6월 초순, 김씨는 후배들을 불러 태극기 공부 모임을 결성하자고 제안했다.





지난 1월21일,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오랜만에 기자들과 만난 김지하 시인은 커다란 화두를 내놓았다. ‘붉은악마와 촛불 세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는 지난해 하반기 내내 위와 같은 화두를 붙들고 있었다. 최근에 내놓은 <김지하의 화두>(화남)가 그 성과 가운데 하나다. 그는 붉은악마와 촛불 세대가 한민족을 대표해 ‘성배(聖杯)’를 부여받을 주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보다 앞선 지난 연말,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교수(문학 평론가)는 <붉은악마의 문화코드로 읽는 21세기>(중앙M&B)를 펴내며, 붉은악마 현상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21세기에 세계의 문화 코드를 바꾸는 발화점일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길거리 응원은 ‘세계를 바꾸는 무혈 혁명이자 문화 혁명’이라는 것이다. 문학과 사상의 경계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문명사의 패러다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두 ‘사상가적 문인’의 메시지는, 대통령 선거 이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세대갈등론(혹은 네티즌 담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더욱 주목되고 있다.



“동아시아가 인류를 구한다”



김지하 시인은 월드컵 기간에 일어난 붉은악마의 물결을 ‘6월 개벽’이라고 명명하면서 지식인 사회의 행태를 비판한다. 붉은악마 현상을 1회적 사건이라고 폄하하는 시각은 지식인의 직무 유기라는 것이다. 김시인은 7백만이 참여한 길거리 응원에서 파시즘의 가능성을 보았다는 비판에 동의하지 않을 뿐더러, 붉은악마가 광장 문화를 부활시켰다는 소극적 긍정론에도 등을 돌린다.



그에 따르면, 붉은악마는 어느 날 갑자기 땅 속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다. 붉은악마는 한민족 민중사에 면면히 흐르는 자발적 역동성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임금이 압록강으로 도망갔는데도 죽창을 들고 나선 임진왜란 당시의 백성들을 비롯해, 동학혁명에 가담한 농민들, 3·1 만세운동에 나선 장삼이사들, 그리고 4·19에서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의 엔진이었던 학생과 넥타이 부대. 이들이 바로 붉은악마의 선배들이었다.






이어령 교수는 붉은악마의 붉은색과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분석하면서, 붉은악마가 모든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인터넷과 휴대 전화, 전광판과 결합한 디지털형 인간이라고 의미화한다. 이 디지털형 인간이 오프라인에서 한국인의 고유한 특질인 ‘신바람’과 융합하면서 축제를 만들었고, 이 축제가 벨벳 혁명을 일구었다는 것이다.



김씨의 자발적 역동성의 역사는 이교수의 신바람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붉은악마는 한국 역사와 민족적 기질과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분명한 단절을 보인다. 무엇보다 국기와 국호가 갖고 있던 금기와 권위를 일거에 탈색시켰다. 두 사람은 ‘대~한민국’이라는 구호와 손뼉 ‘짜작∼짝 짝짝’으로 이루어진 ‘엇박자’와 태극기를 분석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김씨는 붉은악마들이 태극기를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어 있다. 태극기는 의미심장한 철학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주역 사상을 창조적으로 변용해 함축한 태극기에는 정의·풍요·광명·지혜의 철학, 즉 전세계가 원하는 ‘서로 구별되면서 서로 조화하고 일치하는 철학’이 바탕색인 흰색이 상징하는 평화 위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국기·군기·교기 등에 담겨 있는 권력의 코드가 붉은악마에 의해 축제 코드로 전환되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태극기를 높은 게양대에서 끌어내려 손에 들고 흔드는 과정에서 존엄성은 친숙성으로, 권위는 애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태극기가 갖고 있던 권위의 ‘급전 직하’는 유독 한국 문화에만 존재하는 엇박자 원리와 무관하지 않다. 김지하 시인은 엇박을 ‘3박 플러스 2박’이라는 모형으로 설명한다. 즉 3박이 역동·변화·혼동 등 양인 데 반해 2박은 안정·균형·평화와 같은 음이다. 이 3박과 2박이 결합할 때 엇박이 나온다. 길었다가 짧아지고, 빨랐다가 느려지며, 어울렸다 흩어지는가 하면 대립했다가 통일되는 이른바 ‘혼란스러운 균형’이 한민족 문화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 엇박에서 김씨는 역동적 균형, 즉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합성어 ‘카오스모스’를 추출한다. 붉은악마는 원래 2박 또는 4박인 ‘대한민국’에서 ‘민국’의 2박은 그대로 두되, ‘대한’을 ‘대~한’으로 길게 늘여 3박으로 만들었다. ‘짜작∼짝 짝짝’도 마찬가지다. 김씨에 따르면, 이 엇박의 문화가 태극과 음양오행에 바탕을 두고 있다. 김시인은 ‘엇박, 즉 카오스모스가 서양의 모순 어법과 변증법의 한계를 동시에 극복한다’고 강조한다.



이어령 교수가 붉은악마 현상만을 대상으로 했다면 김지하 시인은 촛불 시위에까지 해석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김시인은 지난해 6월의 ‘들끓는 불’이 연말의 ‘고요한 물’로 변화한 사실을 지켜보며 ‘아무래도 이 세대가 무엇인가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촛불을 밝혀든 붉은악마들에게서 새로운 문명을 견인할 ‘성배 민족’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이어령 교수도 남쪽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북쪽에서 아리랑 축제가 열렸다는 점을 환기하면서, ‘이상하고 이상한 분단의 나라에서 지금 세계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결정짓는 벨벳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붉은악마 현상이 시인의 ‘화두’와 문학 평론가의 ‘코드’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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