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엽기는 한물 갔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2.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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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영화제 폐막작 <폰> 만든 안병기 감독


"<가위>보다 좀 잘 만들 수는 없겠니?” 어머니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순간 안병기 감독(36)은 정신이 아찔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2년.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색깔의 공포 영화를 들고 그가 다시 관객을 찾아왔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폰>이 그것이다. 휴대 전화를 매개로 원귀의 저주에 말려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영화제 기간 내내 ‘반전(反轉)이 기막히다’는 입소문을 몰고 다녔다.



피가 튀지 않는 공포 영화라니, 의외다


<가위>만 해도 10∼20대를 겨냥한 슬래셔 무비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그 뒤 그런 식의 가벼움 내지는 엽기 문화가 급속도로 싫어졌다. 그것은 한국식 공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영화는 정말 진지하게 만들었다. 장난기 있는 대사나 카메라 워크· 사운드가 전혀 없다. 그렇다고 재미없게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늘 ‘작가’보다 ‘쟁이’를 지향하는 사람이다(웃음).


한국식 공포라면?


살인마가 난도질을 할 때마다 팝콘을 던지며 열광하는 미국인들과 달리 한국인들은 공포 영화에 진지하게 접근한다. 코미디나 잔혹한 액션을 뒤섞은 공포 영화는 한국에서 흥행이 안된다. 그보다는 한밤중에 촛불 켜놓고 괴담을 나눌 때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선호한다고나 할까. 일본·홍콩 공포 영화에 비해 인과(因果)를 중시하는 것도 한국적 특성이다. “쟤가 왜 죽어야 하는데?” 이걸 심리적으로 설득해 내지 못하면 그 영화는 끝이다.


휴대 전화를 통해 원귀를 접하게 된다는 설정이 일본 영화 <링>을 연상케 한다.


<폰>은 문명 비판적인 영화는 아니다. 비디오테이프나 전화 같은 일상의 필수품이 어느 순간 섬뜩한 존재로 다가온다는 것은 매력적인 발상이다. 그렇지만 <폰>이 초점을 맞춘 것은 인간의 내면이다. 사랑스럽고 연약해 보이는 여자가 때로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는 것이다. <폰>이 원전으로 삼은 것은 다른 나라 공포 영화가 아닌 정통 문학 작품이었다(그는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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