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먹고 사는 사람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2.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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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마케터·네트워킹 디렉터, ‘틈새 시장’ 개척해 맹활약
스타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요즘 인기 연예인의 CF 출연료는 4억∼5억 원을 호가한다. 스타 한 사람의 매출액이 웬만한 기업 못지 않아서 CF의 여왕으로 불리는 이영애·김남주·김희선 등의 한 해 수입은 수십억원대에 이른다. 올해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장나라의 경우 매출액이 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스타의 몸값이 오르면서 스타를 둘러싼 갖가지 신종 직업이 생겨나고 있다. 스타에 관한 지식, 스타에게 조언할 수 있는 안목, 스타 인맥을 이용한 섭외력 등 스타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든든한 스타 인맥과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을 무기로 이들은 스타 산업의 독특한 틈새 시장을 만들어냈다.



연예 전문 작가 백현락씨는 스타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낸 경우이다. 미국에서 공인회계사를 하던 그는 1995년 자신의 책 <미국분 미국인 미국놈> 출판을 위해 한국에 왔다. 우연한 기회에 방송 작가 생활을 시작한 그는 연예인들을 섭외하면서 연예계 인맥을 구축했다. 이때 형성해 놓은 인맥을 바탕으로 그는 아예 방송 작가에서 연예 작가로 변신해 <조선일보>에 ‘연예가 파일’ 코너를 연재했다.



GOD를 ‘한국의 비틀스’로 변신시켜 성공



그는 연예계 인맥을 활용해 여러 가지 스타 관련 비즈니스도 병행했다. 켄싱턴 호텔에 스타 룸을 만들어 스타 40여 명을 유치했던 그는 유니세프 친선 대사를 맡을 신세대 스타 섭외도 도맡았다. 얼마 전에는 한 스포츠 신문사가 개최한 스타선행대상 행사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행사를 주관하기도 했다. 이런 행사를 주관하며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한 그는 엔터테인먼트 투자회사를 설립해 1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



그에게 가장 든든한 사업 밑천은 바로 연예인 인터뷰 노트이다. 그의 재산목록 1호인 이 노트에는 1주일에 한 사람씩 신인 2백여 명을 만나 정리해둔 인터뷰 내용이 담겨 있다. 한 스타가 어떻게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고, 뜨고 성장하고 잊히는지를 정리해 둔 이 노트는 투자 여부를 판단할 때 중요한 자료가 된다.



연예기획사 싸이더스 유재덕 실장은 탁월한 안목을 무기로 새로운 스타 관련 비즈니스를 개발했다. 그는 스타의 고유한 스타일을 만들고 관리하는 비주얼 마케터이다. 가장 돈벌이가 되는 광고 섭외가 이미지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스타들은 유씨와 같은 비주얼 마케터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팬들이 스타에게 원하는 것은 상호 모순적인 경우가 많다. 검소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요구하기도 하고, 부드러움과 강함을 모두 바라기도 한다. 팬들의 복잡한 요구를 반영해서 최선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단순히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스타 산업의 메카인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오래 거주하고 경영학을 전공한 유씨는 이때 스타에게 가장 적절하면서도 경제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스타일을 제안한다.



유씨는 ‘보이밴드’ 이미지가 강했던 GOD의 이미지를 ‘한국의 비틀스’로 바꾸어 국민 가수로 거듭나게 했다. 배우 정우성에게서는 카리스마를 덜어내고 익살스럽고 어눌한 이미지를 갖게 해 CF계의 황제로 등극시켰다. 반항아 이미지가 강했던 장 혁은 양아치 이미지로 변신시켜 신세대 스타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이외에도 그는 손창민 전지현 조인성 신민아 김선아 주진모의 스타일 관리를 맡고 있다.



네트워킹 디렉터 채한석씨는 연예계 인맥을 바탕으로 섭외 전문가로 활약하며 새로운 틈새 시장을 개척했다. 패션 이벤트나 고가 브랜드 신제품 발표회에는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연예인을 초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방송국 PD들도 인기 연예인을 섭외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제품 이미지에 딱 맞는 연예인을 데려오기는 쉽지 않다. 이때 채씨는 섭외를 거들며 보수를 받는다. 행사당 보통 5백만∼6백만 원을 받는데,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는 경우에는 천만원 이상을 받기도 한다.



채씨가 직접 친하게 지내는 연예인은 15명 안팎. 그러나 그는 연예인을 한 번에 40∼50명 동원할 수 있다. 직접 아는 스타는 물론 그 스타의 동료까지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안나 수이 패션 이벤트에서 그는 행사 시작 2시간 전에 급작스럽게 부탁을 받고도 인기 연예인 5명을 섭외해서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채씨의 연예인 섭외력이 뛰어난 것은 방송 활동을 다양하게 하면서 두루 넓혀놓은 인맥 덕도 있지만, 연예인들의 생각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연예인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그의 영업 비결은 싫어하는 연예인끼리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배려하고, 스타들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절대로 다른 곳에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니저나 코디네이터와 같은 기존 연예계 종사자 외에 연예산업 투자 전문가, 연예계 컨설턴트, 연예인 로비스트들이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스타가 인기를 먹고 산다면 이들은 스타를 먹고 산다고 할 수 있다. 스타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들의 역할도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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