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제작자로 변신한 신상옥 · 최은희 부부 인터뷰
  • 고재열 기자 (scoop@e-sisa.co.kr)
  • 승인 2001.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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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제작/
"검열 완화되어 한국 영화 부흥"
신상옥 감독(76)은 한국 영화사에서 작품성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몇 안 되는 감독으로 꼽힌다. 〈연산군〉 같은 사극에서 〈불가사리〉 같은 SF영화에 이르기까지 온갖 장르를 섭렵한 그를 재평가하는 작업이 요즘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오는 11월 부산국제영화제와 내년 3월 뉴욕 근대미술관에서는 '신상옥 회고전'이 열린다.


국내외에서 그의 영화 세계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신감독은 지난 10월18일 뮤지컬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제작 발표회를 열었다. 76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그를 만나 보았다. 이 자리에는 이번 뮤지컬을 공연하는 극단 신협 대표인 부인 최은희씨(72)도 함께했다.




영화가 아니라 뮤지컬 제작 발표회여서 의외였다. 영화 계획은 없는가?


신상옥 내년에 영화제에 출품할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최은희 칭기즈칸을 소재로 영화도 만들 예정이다. 두 번이나 영화화되기는 했지만 서양의 시각에서 본 것이어서 마음에 차지 않는다며 본인이 직접 만들어 보겠다고 한다. 북한에 있을 때부터 구상했던 작품인데, 요새도 새벽마다 시나리오를 꺼내서 고치고 또 고친다.


신감독이 원래 부지런한가?


눈썹이 짧아서 그런지 잠이 없다. 하루 2∼3 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나는 눈썹이 길어서 잠이 많은데(웃음). 정말 부지런하다. 완전 일인다역 인간이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뭔가를 부지런히 읽는다(신감독은 인터뷰 도중에도 흘끗흘끗 보기 시작한 신문을 짬짬이 읽어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에는 신문 6부를 모두 읽었다).


한국 영화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지켜 보면서 느낀 점은?


영화에 돈이 많이 투자되면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검열이 완화되었다는 점이다. 영화는 돈이 아니라 자유가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성과 오락성을 적절히 결합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아서 아쉽다. 영화는 주제 의식이 있어야 한다.


신감독은 요즘도 후배들을 만나면 '화장실에서도 영화 생각만 하라'고 말한다.


눈여겨보는 감독이 있는가?


〈주유소 습격 사건〉의 김상진 감독,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찬욱 감독, 〈섬〉의 김기덕 감독을 주목하고 있다.


뮤지컬 준비는 잘 되어 가나?


나도 출연하는데, 이 참에 한 번 이미지 변신을 해보려고 한다. 영화에 출연할 때는 이 양반이 당신은 한복이 잘 어울린다며 매번 한복만 입혔다. 그래서 내 이미지가 올드 팬들에게는 현모양처로 박혀 있다. 이번에 내가 맡은 빌라 역은 새로운 캐릭터인데, 악역이다. 40년 만에 이미지 변신을 해보려고 하는데 이 양반이 산통을 다 깨고 있다.


무슨 얘기인가?


신감독이 〈월간 조선〉 10월호에 쓴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 때문에 스폰서가 한 명 떨어져 나갔다.


'대통령이 노벨상 잘못 탔다. 북한을 제대로 알아라. 김정일은 절대로 안 변한다. 남쪽 하늘에 침을 뱉으마'라고 썼다. 영화감독 나부랭이가 대통령 훈수 한 번 해봤다(웃음).


미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읽었는데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일전에 뭘 저렇게 열심히 쓰나 했는데 바로 그 글이었다.


운명이야. 다 하느님의 뜻이야. 나니까 북한에서 탈출했고, 나니까 그런 잡지에 그런 글 쓰는 거야.




〈김정일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책도 썼는데,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집사람이랑 재결합시켜 줬으니깐 고맙기는 하지만 악연이지 뭐(이혼했던 신감독과 최씨는 북한에서 만나 다시 결합했다). 그 사람은 날 좋아하는데 난 그 사람 싫다. 자기를 좋아하도록 날 세뇌하려고 했는데 세뇌가 덜 됐지. 아니 아예 안 됐지(웃음).


그래도 영화인에게는 든든한 후원자 아니었나?


그건 맞다. 돈 걱정 안 하고 영화 찍었던 때는 그 때가 유일했다. 〈탈출기〉 같은 좋은 작품도 많이 찍었다. 여기 오니까 돈이 없어서 영화를 못 찍고 있다. 그때가 좋았는데. 한 2년 정도 더 있다 올 걸 그랬나.


마음에 없는 얘기이다. 5년 동안 구류소에 들어갔다 나온 꼴은 정말 비참해서 못 봐줄 지경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들어간 감옥은 내가 들어간 북한의 감옥에 비하면 천국이다. 그런 데 가두면 박정희를 데려다 놔도 다 불 거야.


김형욱 실종 사건을 다룬 〈증발〉이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도 부정적으로 평가하나?


이 얘기 들으면 박근혜가 섭섭할 텐데(웃음). 무슨 박정희가 국가 재건을 했나, 민주당 정책 그대로 베낀 것이지. 경제 발전은 국민 모두의 공인데 그 사람이 가로챘어. 집사람은 좀 다르게 생각하는 것도 같지만.


난 잘했다고 본다. 새마을운동으로 시골에 반듯반듯한 시멘트 도로도 깔고.


지금은 정치적 견해가 일치하는가? 이회창 총재 부인을 비롯해 제작 발표회에 한나라당 의원이 많이 왔던데.


우연이다. 신영균 의원이나 강신성일 의원은 영화계의 오랜 동료여서 온 것이고, 임진출 의원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깊다. 민주당 정대철 의원도 오지 않았나.


그런데 정대철한테는 마이크 안 줬잖아. 그러니까 정치적 의도가 있는 거지(웃음).


산통 그만 깨세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뮤지컬을 만드는 이유는?


남의 나라 문제도 제 일처럼 생각하고 돕는 세계 시민주의를 다루고 싶어서 만들었다. 테러 이후에 더 필요한 자세인 것도 같다는 생각에.


이번 뮤지컬의 특징은?


나름으로 꼼꼼하게 만들려고 드라마적인 요소를 강화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서 주연을 맡았던 이소정씨도 스카우트했고,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서 능력 있는 뮤지컬 전문 배우도 발굴했다. 영화적인 스펙터클도 도입할 예정이다. 기대해 달라.


인터뷰를 마치고 악수를 청한 사람은 최은희씨였다. 인터뷰 내내 진지했던 최씨와 달리 신상옥 감독은 최씨의 말에 계속 딴죽을 걸며 장난을 쳤다. '새로운 권력자'에게 소극적인 저항을 하며 인터뷰를 즐긴 그는 기자에게 "아첨을 많이 해야 해. 거짓말도 잘 해야지"라고 부부 금실의 비법을 소개했다.코미디로 예언한 독재 권력의 광기-김소희



만들어진 지 62년 만에 한국에서 개봉되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환갑이 지나 찾아온 걸작의 뒤늦은 발걸음을 탄식할 것인가, 아직도 채플린이 유효하다고 믿는 배급사가 호기롭다고 말해야 할까.



내 생각을 정직하게 말하자면 채플린은 위대했지만 더 이상 채플린의 시대는 아닌 것 같다. 고독한 방랑자의 모든 것은 너무나 널리 알려진 나머지 이제는 어느 것도 새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를 보며 배꼽 잡고 웃지 않는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여전한 것이 하나 있다. 채플린의 영화를 보면 아직도 감탄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개봉하는 <위대한 독재자>(1940년)는 채플린의 최대 걸작이라고 불리는 <모던 타임스>(1936년)에 비해 영화적으로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와 전형적인 채플린 코드를 결합한 이 영화는 채플린의 영화 이력에서뿐만 아니라 코미디 장르의 역사를 통틀어, 아니 어쩌면 영화사 전체에 걸쳐 매우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제작된 1940년은 히틀러의 위세가 여전히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그가 독일 안팎에서, 특히 유태인들에게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시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채플린은 게토 지역의 유태인에게 다가오는 어두움, 절대 권력의 어처구니없는 자기 기만과 어린애 같은 소동, 히틀러라는 인간의 내면적인 취약함을 두루 꿰뚫어 본다.



유머와 함께 사회적 약자가 겪는 생의 비애를 풍자하는 것이 채플린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위대한 독재자>에서는 어떤 예술가나 학자, 정치가들보다 인류사의 위험을 더 빠르게 감지하는 통찰력과 과감하게 풍자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평화와 공존을 호소하는 절실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한 코미디의 대가가 선지자로 돌변하는 순간을 목격한다. 그래서 <위대한 독재자>를 둘러싼 영화적 평판, 예컨대 마지막 장면에서 그렇게 긴 설교를 늘어놓는 것은 영화답지 못하다거나 구조가 느슨하고 지나치게 길다는 말 정도는 너끈히 넘어선다.



디지털로 소리와 화면을 다시 매만진 이 영화는 올해 2월에 열린 베를린 영화제에서 채플린의 딸이 참석한 가운데 재공개되었다. 채플린 최초의 유성 영화이지만 무성 영화적인 장면이 상당히 많은 것이 특징이다.









조롱과 풍자 속 히틀러 까발리기-김봉석



채플린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대한 독재자>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서른이 넘은 사람이라면 지구본 앞에서 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채플린의 얼굴을 기억할 것이다.


치고 맞고, 달리고 넘어지며 스크린을 누비던 채플린의 무성 영화는 김 일의 프로 레슬링이나 홍수환의 4전5기 역전 KO승처럼 우리들 모두의, 공통된 추억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위대한 독재자>를 보는 것은, 과거의 영화(映畵)를 보고 배운다거나 과거의 영화(榮華)를 재현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냥 즐기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시공을 초월해 여전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위대한 독재자>를 보는 이유다. 전쟁터에서 거대한 대포와 비행기를 가지고 벌이는 채플린의 익살극은 여전히 폭소를 자아내고, 한나와의 사랑은 여전히 가슴을 울릴 만큼 감동적이다. 그리고 정확하다. 아직 히틀러의 광기에 전세계가 두려워하기 전에, 이미 채플린은 느끼고 있었다.



채플린은 자신이 본 히틀러를 그대로 <위대한 독재자>에 옮겼다. 코미디언만이 가지고 있는 조롱과 풍자라는 무기를 이용해, 히틀러의 본질을 예리하고 정확하게 까발렸다. <위대한 독재자>는 단지 히틀러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라, 채플린 자신이 미래에 당할 일까지도 예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하게 ‘독재자’를 꿰뚫어보는 예술가는 결국 추방당할 운명인 것이다.



생일까지도 비슷한 채플린이 히틀러를 꿰뚫어볼 수 있었던 것은, 본질적으로 그들이 같은 유형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독재자> 조감독 댄 제임스가 말하듯 “채플린은 자신의 세계를 장악하고 있었다. 또한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했다. 그것은 히틀러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민주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찰리는 그 모든 일에서 독재자로 군림했다.” 히틀러 역시 위대한 연기로 독일인과 세계를 속여넘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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