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근원 수필의 '근원'을 찾았다
  • 이문재 기자 (moon@e-sisa.co.kr)
  • 승인 2001.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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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철' 겸비한 해방공간 지식인 김용준 전집 출간

사진설명 저자를 닮은 책 : <근원 김용준 전집>은 표지 장정은 물론 본문 편집까지 품격을 갖추었다.

금박(金箔)에다 양장본. 이른바 호화 장정이다. 하지만 호화 장정이 아깝거나 넘치지 않는다. 표지뿐만 아니라 본문 편집까지 품격이 있다. 저자를 닮은 책이다. 책을 닮는 저자도 있지만 이 경우는 책이나 저자 모두 불우할 때가 많다. 사후에도 자신의 저서를 장악하고 있는 저자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책 속에서, 독자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는 저자, 그 저자가 고전의 저자이다.

여기 저자가 있다.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는 1권 표지 그림이 예술가의 초상이라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2권의 표지 그림은 식민지와 해방 공간을 통과한 지식인의 표정이다. 전혀 닮지 않은 이 두 그림은 그러나 분열증적이지 않다. 저자가 문·사·철을 두루 갖춘, 르네상스적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예술 출판의 명가 열화당이 최근 '우리 문화예술론의 선구자들' 시리즈 첫 번째로 <근원(近園) 김용준 전집>(전 5권)을 펴내기 시작했다. 먼저 두 권이 나왔다. <새 근원수필>과 <조선미술대요>. 앞의 책은 범우문고로 널리 알려진 <근원수필>(1948년 초판)을 바탕으로 새로 발굴한 수필 23편과 근원의 스케치를 몇 점 보탠 증보 복간판이다. 뒤의 책은 한국 미술사의 토대이자, 전형이다. 일제의 조선 문화 쇠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조선 미술사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놓은 것이다.

근원 김용준은 동양화가이자 미술 평론가였고, 미술사학자였다. 1904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도쿄 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고, 광복 직후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를 거쳐 동국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1950년 9월 월북해 평양미술대 교수·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위원장·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동양화가이자 미술 평론가, 미술사학자

1967년 세상을 떠난 근원은 <근원수필> <조선미술대요> 외에도 북한에서 펴낸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를 비롯한 다수의 논문과 비평문을 썼다. 그림으로는 수묵 채색화 <춤>을 남겼다. 미술 평론가 최 열씨에 따르면, 근원의 사상 편력은 다채로웠다. 무정부주의에서 출발해 신비주의·상고주의를 지나 민족주의자로서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을 가로질렀다.

근원은 수필을 일컬어 '다방면의 책을 읽고 인생으로서 쓴맛 단맛을 다 맛본 뒤에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글'이라고 했다. 근원의 수필은 이태준의 글과 함께 한국 현대 수필의 근원으로 일컬어진다. 근대적 자아에게 식민지 시절과 해방 공간을 견뎌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황폐한 시절을 통과하는 근원의 내면은 단아했다. 올곧게 자기 자신을 지키되, 인간과 세계에 대한 유연한 감수성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원은 근원(根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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