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채만식은 자발적 친일 작가였다”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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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평론가 김재용씨 주장/“1회성 단순 친일과 구별되는 확신범”
일제 말, 소설가 김사량은 <천마> <태백산맥> 등 주요 작품을 일본어로 썼다. 시인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위한 도항증을 얻으려고 ‘히라누마(平沼)’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친일 문학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김사량이 일본어 소설 속에서 친일파와 일제를 비판했거나, 윤동주가 당시의 고뇌를 <참회록>이라는 시를 통해 드러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내면적으로 친일파와 거리가 멀었다. 반면 우리말로 글을 쓰거나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더라도 친일 문학을 했던 이들은 많다.

작가들 내면 분석 통해 친일 지형도 그려

친일 문학 연구자인 문학 평론가 김재용 교수(원광대·한국어문학부)가 최근 펴낸 <협력과 저항>(소명출판 펴냄)에서 일제하 작가들의 내면 분석을 시도한 이유는 분명하다. 피상적인 인식을 넘어 내재적으로 접근해야만 친일 지형도를 정확히 가려낼 수 있을 뿐더러, 편가르기식 서술을 넘어선 우리 문학사의 온전한 복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친일 작가라고 하면 일본어로 글을 쓰고 창씨개명을 하고 친일 단체에 가입하거나, 회유와 협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다고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정주는 광복 이후 <나의 문학인생 7장>이라는 글에서 ‘내 어느 시집에도 넣지 않고 내던져 버린 소위 ‘친일적’이라는 시 몇 편이 있지만 그것은 조선총독부의 강제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쓴 것들이니 이 점은 이해해 주셨으면 고맙겠다’고 썼다.

그러나 김교수의 진단은 다르다. 그가 분석 대상으로 삼은 시기는 1938년 10월부터 1945년 광복까지. 당시는 ‘동방의 마드리드’로 불리던 중국의 무한 삼진이 일본군에 점령당하고, 일본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정면 대결을 벌였던 시기다. 이때에 나온 대부분의 친일 문학은 자발적으로, 확신에 차서 집필되었다는 것이 김교수의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작가들은 친일에 대한 내면적인 논리를 갖추고 있었다.

가령 채만식은 일본이 중국을 이기는 것을 보며 일본인처럼 되어 차별을 극복하는 것만이 2천만 민중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었다. 또 서정주는 미국과 대등하게 겨루는 일본을 보며 근대 서구식 자유주의의 몰락과 동양적 세계관에 따른 신세계를 꿈꾸었다. 그런 내면 탐색을 통해 김교수는 채만식·서정주·최정희·송 영 등이 쓴 이 시절 작품에 ‘친일 파시즘 문학’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정지용이나 김정한 등 1회성 단순 친일 작가들과 이들 ‘확신범’들이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동인문학상·팔봉문학상에 이어 미당문학상까지 제정되는 등 최근 우리 문학계 전반에서 일어나는 친일과 관련한 지독한 망각을 경계하기 위해서도 친일 문학에 대한 정확한 성격 규명이 필요하다”라고 김교수는 말했다.

망각을 경계하는 것 못지 않게 저항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할 터. 책 제목에서 보듯, ‘협력’은 ‘저항’이라는 대칭 개념을 통해서 그 의미가 더욱 명징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김기림·한설야·김사량 등 우회적 글쓰기나 망명을 통해 일제에 저항했던 작가들의 행적 또한 찬찬히 기록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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