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북한 현대 미술전>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8.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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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미술관, <북한 현대 미술전> 9월1일 개최
문화 예술인·학자 들의 북한 방문이 러시를 이루는 가운데, 북한 현대 미술의 참모습을 보여줄 대규모 전시회가 ‘남행 열차’를 탔다. 9월1∼15일 서울 일민미술관(02-721-7772)에서 열리는 <북한 현대 미술전>은 북한 미술의 진면목을 제대로 소개하는 첫 번째 전시회라 할 만하다.

90년대 들어 한때 북한 미술품은 중국을 경유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주로 북녘의 산하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 작품들은, 초기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나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모작(模作)이 진품으로 둔갑해 거래되는가 하면, 마치 풍경화가 북한 미술의 전부인 것처럼 오해되기도 했다.

그동안 북한 미술전이 더러 열렸지만, 그것은 미술사적 평가 없이 북한 미술의 한 단면을 소개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북한 당국이 권장해 온 리얼리즘, 곧 풍경을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탓이다.

<북한 현대 미술전>에서 주목되는 것은 북한의 미술 평론가가 이 전시를 기획하고, 여기에 한국 평론가의 비평적 안목이 가미되었다는 점이다. 북한 조선미술가동맹 평론분과위원회 리재현 위원장이 선정하고, 한국의 평론가 윤범모(경원대 교수)·최 열 씨가 작품을 재점검했다. 지난해 6월 리재현씨 기획으로 중국 선양(瀋陽) 로신 미술대학에서 열린 <조선 현대 미술 작품전>이 윤범모·최 열 씨에 의해 새롭게 다듬어져 서울에서 <북한 현대 미술전>으로 소개되는 것이다.
전시회에 나오는 작품들은 모두 1백50 여 점. 50년대 이후 북한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망라했다. 조선화·유화·수채화·판화·연필화·펜화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고 있을 뿐 아니라, 제작 연도도 현대 미술 선구자 세대의 50년대 작품에서부터 90년대 현역 작가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퍼져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작품은 김관호(1890∼1969)의 <꽃>(55년 작)이다. 1910년대 한국 화단의 샛별로 각광받은 김관호는 한국 최초로 유화 개인전을 연 작가로 미술사에 기록되어 있다. 시대보다 너무 앞서간 그의 작품 경향을 용납하지 않았던 사회 분위기에 부딪혀 광복 이전에 절필했던 그는, 고향인 평양에 머물면서 50년대 환갑이 넘은 나이에 붓을 다시 잡아 빼어난 작품을 여럿 남겼다. 소박한 필치로 목련 같은 흰 꽃 한 송이를 푸른 잎들과 함께 그린 <꽃>은 김관호가 재기한 후에 그린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선우담·정관철·림홍은·강 호·박문원 등 이미 작고했거나 현역으로 활동중인 작가들과 더불어, <북한 현대 미술전>에서 각별한 관심을 모으는 것은 월북 작가들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조선화라는 북한 미술 장르의 1세대로 꼽히는 김용준·리석호·정종여를 비롯해, 길진섭·정온녀·강정님·김기만(운보 김기창의 동생) 등 월북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소개된다. 북한에서 펼친 이들의 작품 세계를 이 전시회에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북한에서는 전시회가 흔치 않다 보니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이 우리와 많이 달랐다. 그러나 먹을 대담하게 사용한다든가 하는 기법과 소재 들이 다양해 전시를 조직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최 열씨는 그 다양성을 통해 50년대 이후 북한 미술의 변화 과정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소개되기는 하지만, 그들의 대표작이 빠져 있다는 아쉬움은 있다. 그러나 <북한 현대 미술전>은 남북한 미술 평론가가 함께 기획한 첫 전시회이자, 서울에서 북한 미술의 경향을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한때 ‘이발소 그림’이라고 폄하되기도 했던 북한 미술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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