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1천5백리 탁발순례 참가기
  • 이원규 (시인·생명평화탁발순례단 총괄진행) ()
  • 승인 2004.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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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할 그곳 향해 걷고 또 걸어
마침내 45일간 1천5백리를 걸었다. 지리산권 5개 시·군의 면 단위 마을 마을을 세상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걷고 걸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봄빛 충만한 생명들을 만났다. ‘걷자, 만나자, 만나서 생명 평화를 얘기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도법·수경 스님과 함께 하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일단 4월17일 전북 남원에서 지리산권 보고대회를 마치고, 4월22일 배를 타고 제주도로 건너가 한 달 정도 순례하고, 다시 뭍으로 나와 한반도 구석구석을 걸을 계획이니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대장정이 될 것이다.

그동안 눈보라와 봄비를 맞으며, 꽃샘추위와 까맣게 살갗을 태우는 봄 햇살을 맞으며 걸었다.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뒤 집행을 기다리는 농촌의 절망적인 현실을 직면하며 감기와 몸살의 날들이 이어졌다.

주민이 3천명이 넘지 않는 면 단위 초등학교의 신입생은 겨우 4명에서 30명 정도였다. 1개면 1학교 정책의 배수진마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구례군 용방면에서 만난 한 교회 목사는 “농촌 인구 고령화로 인해 10년 이내에 교회가 문을 닫게 될 것이며, 학교와 농협과 면사무소도 문을 닫고 그 역할이 군 소재지로 넘어갈 것이다. 머지 않아 면 소재지는 사막화할 것이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지만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제2의 화살’이었다.
‘제1의 화살’이 이미 어찌할 수 없는 업보이자 과오인 20세기의 전쟁과 천민자본주의식 난개발 광풍이었다면, 제2의 화살은 반생명·반평화·반환경의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뼈아픈 참회와 실천 없이 마침내 자멸할 수밖에 없는 공멸의 위기가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탁발순례는 제2의 화살을 맞지 않기 위해 가고 또 가는 생명평화의 길, 참회의 길, 실천의 길이다. 한반도의 전쟁을 막기 위해 ‘인간 방패’에 준하는 ‘10만 지리산 생명평화결사대’의 서약서를 받고, 종교와 종교 간의 벽을 허물고, 온통 경제와 경쟁 논리의 그물에 걸려 죽어가는 농촌·농업의 생명공동체적인 부활을 꿈꾸며 정부와 온 국민을 설득하고, 개발의 광풍에 파헤쳐지는 온 국토의 ‘청정국토 1번지’를 꿈꾸며 이미 한 걸음 한 걸음 가야 할 그곳에 도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길은 길이 아니라 벽이었다. 야생 동물의 길은 사람의 길에 막히고, 사람의 길은 자동차 도로에 막히고, 동물이나 사람이나 자동차 모두 먼저 목숨을 내놓지 않고서는 그 어디로도 갈 수 없는 거대한 죽음의 벽이었다.
걸어서 가는 사람의 길은 시속 60km 이상의 질주 도로에 형식적으로 붙어 있는 70cm 정도의 갓길뿐이어서 언제라도 몸의 반쪽이 잘릴 수 있는 위험천만한 길이었으며, 농촌과 농업은 잘못된 농정의 길에 막혀 아이들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인 ‘유령 마을’로 가는 길이었다. 전국 도처의 아름다운 풍광은 환경친화적이라는 허울 좋은 관광 개발의 굴착기에 의해 내장이 드러나는 죽임의 길이었다.

이념과 이념, 지역과 지역, 종교와 종교, 그리고 관과 민의 소통의 길은 길이 아니라 분단의 장벽보다 더 높은 벽이었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울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도리질을 하며 순례단은 아침 저녁으로 ‘생명평화의 경’을 읽고 또 읽었다.

마을회관에 들어가 하룻밤을 청하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거친 손을 잡고 울고 울면서, 절망에 빠진 어르신들이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요, 우리 시대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님이자 고행의 부처님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길·물길이라는 하동군 섬진강변 19번 국도가 4차선 확장 공사 계획으로 파괴될 위기에 처한 것을 외면할 수도 없었고, 케이블카나 골프장 건설 등 지리산권 7개 시 ·군과 문화관광부가 추진하는 ‘지리산권 통합문화권’ 조성 계획이 아무리 환경친화적이라고 하지만 행여 관행대로 잘못 추진될 소지가 많으므로 그것 또한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관광 개발이 생태계 복원은 고사하고 오히려 파괴 위주로 진행되고 결과적으로 원주민들을 몰아내는 것이라면 그 어떤 명목의 환경친화적인 개발도 용납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다만 문제 해결의 방식과 태도가 문제였다. 그리하여 군수·시장·경찰서장과 면장·농협조합장을 만나 설득하고, 절박한 곳의 대안 도출과 문제 해결을 위해 쉬는 날 쉬지도 못한 채 문화관광부장관과 건설교통부장관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하고, 정부 정책의 발상 전환을 요구하며 떼를 쓰거나 아름다운 협박(?)까지 했다.

민·관이 머리를 맞대고 대안과 중지를 찾은 뒤에 시행하는 것은 아무리 늦어도 그것은 절대로 늦은 것이 아니다. 이미 시행한 뒤에 뒤늦게 상처의 골이 쌓이고 반대와 대립의 불이 당겨진다면 그것은 제아무리 빨라도 절대로 빠른 것이 아니지 않은가.

특히 대립과 투쟁의 상처가 깊은 지리산권만이라도 그 상처를 반면교사로 삼아 한국 사회의 대안을 모색하는 베이스 캠프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탁발순례단은 지금도 전쟁의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은 지리산 산청군 외공마을·방곡마을과 함양군 서주마을의 민간인 학살 현장을 찾아가 위령제를 올렸다. 또한 종교의 벽이 제아무리 높다지만 걷다가 아무 절에나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교회가 보이면 예수님께 예를 올렸다.

경남 함양군 옥동교회(엄용식 목사)와 함양제일교회(양재성 목사) 두 목사님께 두 끼 밥을 얻어먹으며 하룻밤을 청했다. 순례단 모두가 함양성당의 일요 미사에 참가해 도법 스님이 강론하자, 배진구 신부님은 보리비빔밥을 내놓고 헌금의 절반을 탁발해 주었다.

이 얼마나 살맛 나는 풍경인가. 현실의 길은 곧 벽이지만 그 벽을 허물면 그대로 온 생명의 삶터이자 광장이 된다. 길을 막던 벽이 어느새 길이 되고 광장이 되는 그 날까지, 아니 날마다 길을 만들고 광장을 만들며 생명평화의 탁발순례는 계속되리라.

※ 생명평화 탁발순례 일지와 사진 등은 시사저널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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