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자문 맡은 한국전쟁 연구 권위자 박명림 교수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4.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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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에 충실했다”
<실미도>가 한국 영화 최초로 1천만 관객을 달성한 데 이어 <태극기 휘날리며>가 흥행 가도를 질주하며 한국 영화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태극기 휘날리며>는 6·25 전쟁을 겪은 전쟁 세대(95쪽 기사 참조)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 시작하면서 1천만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1천만 고지의 8부 능선까지 오른 <태극기 휘날리며> 앞에 예기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용공성 논란’이다. 지난 2월1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나라당 김용균 의원은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에게 <태극기 휘날리며>가 용공·좌경 표현물이니 대책을 세우라며 따져 물었다. 몇몇 보수 언론이 이 해묵은 이념 논쟁에 동참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용공성 논란과 관련해 관심을 모으는 것은 연세대 박명림 교수(국제학대학원 정치학)가 자문위원으로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한국 1950년 전쟁과 평화>를 펴낸 박교수는 한국전쟁 연구의 권위자다. 박교수로부터 용공성 논란과 관련한 입장과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들어보았다.

영화에 박명림 교수의 색깔이 너무 많이 배어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내 책을 읽은 독자들도 간혹 그런 얘기를 한다. 그러나 <태극기 휘날리며>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강제규 감독의 영화다. 자문위원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자문위원은 나말고도 여럿 더 있다. 강감독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미 한국전쟁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자문위원으로서 주로 무엇을 주문했나?

인간을 중심에 놓는 휴머니즘적인 시선에서 한국전쟁을 다뤄 달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역사적 리얼리티를 살리되 예술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 달라고 부탁했다.

반영은 잘 되었나?

잘 되었다고 본다. 영화가 화해와 인권, 생명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도 충실한 영화였다. 이런 제작진의 노력에 감동해 전세계를 돌며 어렵게 구한 극비 자료까지 아낌없이 제공했다.

학도병 강제 모집 장면이나 보도연맹 학살 장면 때문에 용공성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 관계라면 이 영화에 틀린 것은 없다. 모든 이야기는 자료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졌다(박교수는 영화에 참고한 자료라며 보자기를 풀고 서류 뭉치를 꺼냈다). 이 자료를 보면 보도연맹에 좌익 경력이 전무한 사람들까지 가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화가 용공·좌경 물이라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시대착오적이다. 누구나 자기 견해를 가질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견해가 부분적인 견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부분적인 견해를 전체적인 견해라고 우기면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감독이 균형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인다.

그렇다. 인민군이 양민을 학살한 장면도 넣었다. 강제적인 학도병 모집 장면이나 보도연맹 학살 장면을 상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은 진보 진영으로부터 욕을 먹는다.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용공 주장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하다.

관객들의 의식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지배적 관점이 소수 이론으로 퇴행할 때 계속 보편이라고 주장하면 어느덧 비정상적인 주장처럼 보이게 된다. 용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왜곡된 시각을 거두고 ‘태극기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를 분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송두율 교수 사건에 대한 반응과 비교해볼 때 이런 반응은 의외다.

이념 공격이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못하고 에피소드가 되어 버렸다. 우리 시민 사회가 이념적 문제를 담은 영화까지 넉넉하게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용공 논쟁을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이면 송교수 문제도 충분히 성숙하게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관객 1천만명이 임박했다.

사건이다. 이런 영화가 등장한 것이 첫 번째 사건이고, 반향을 일으킨 것이 두 번째 사건이다. 이 영화의 성공은 단순히 영화사적 사건이 아니라 문화사적·사회사적 사건이다. 관객 숫자는 시대 정신의 반영이다.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문화 사회적 산물이다. 역사의 폭은 문화의 폭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 역사를 이만큼 폭 넓게 볼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영화는 어땠나?

배급 시사 때 봤는데 대작이 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강제규 감독은 <쉬리>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로 오면서 감독으로서 성숙했다. <쉬리>는 전형적인 영화였다. 분단 상황도 전형적이고 인물의 반응도 전형적이었다. 반면 <태극기 휘날리며>는 전형을 깨뜨리는 영화다. 분단 상황을 전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해석했고, 전형적이지 않은 인간 군상을 보여주었다.
왜 이 영화가 성공했다고 보는가?

‘데자뷰’(기시감)와 ‘데자앙탕트’(기지감)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보는 것이지만 이미 본 것 같은 장면,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이야기여서 감정 이입이 빨리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긴 호흡의 감동은 잘 살려져 있지만 짧은 호흡의 감동이 많이 묻혔다. 이 영화는 두 번 보는 것이 좋다. 한 번 보면 큰 것만 보인다. 다시 봐야 작은 이야기까지 볼 수 있다.

관객이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얻기 바라나?

역사의 광풍 속에서 개인과 집단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값어치 없게 죽게 만드는지를 보면서 역사 이해의 지평을 넓혔으면 좋겠다. 역사 이해의 지평이 넓어지면 역사를 만드는 지평도 넓어진다.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다고 보는가?

우리 정신을 황폐화시켰고 불구로 만들었다. 절반의 진리만을 받아들였던 남과 북은 모든 사회문화적 역량이 이념의 질곡에 갇혀 있었다. 우리는 아직도 전쟁 발발일을 기념한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전쟁 발발일을 기념하는 나라는 없다. 6·25는 아무런 교훈이 없다. 전쟁과 증오를 상징할 뿐이다. 전쟁 발발일보다 종전일인 7·27을 기념해서 평화지향적인 미래를 도모해야 한다.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가?

한국전쟁은 근·현대사에서 우리와 관련된 가장 세계적인 사건이었다. 보통 역사의 크기는 피해의 크기와 비례하는데 한국전쟁은 전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피해가 컸던 전쟁이다. 한국을 세계에 알린 가장 큰 사건으로 세계 시민이 함께 겪은 사건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유일 강국 미국이 이기지 못한 첫 번째 전쟁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었던 미국이 유일하게 비긴 전쟁이고, 최장거리 후퇴를 경험한 전쟁이다. 미국 처지에서는 ‘잊고 싶은 전쟁’일 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서 한국전쟁을 소재로 세계 시민과 대화할 기회를 가진다면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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