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작가 장정일<내게 거짓말을 해봐>유죄 판결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0.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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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 유죄 확정… 작가 장정일 “내게 사법부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작가 장정일씨(41)의 유죄가 확정되었다. 대법원 제2부(주심 이용우 대법관)가, 지난 10월27일 음란 문서 제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지은 장정일씨가 제기한 상고를 기각하고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함으로써 4년 동안 끌어온 재판은 장씨의 유죄로 결론이 났다(1996년 기소된 장씨는 1심에서 징역 10개월, 2심에서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장정일씨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작가에게 사법적인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대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유죄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해도 전혀 기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1995년 같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마광수 교수는 이번 판결에 대해, 자기 검열이 많아지고 상상력이 위축되는 등 작가에게 치명적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지난 6월 이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만들어진 영화 <거짓말>이 무혐의 처리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왜 표현이 훨씬 직접적인 영화는 문제가 되지 않고, 소설은 문제가 되었을까. 검찰에 따르면, 장르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수위가 문제였다. 검찰은 “영화가 원작보다 표현과 내용이 완화되어 처벌할 정도의 음란성을 인정할 수 없고, 사회 분위기상 형사 제재보다는 국민 판단에 맡기는 편이 옳다”라고 영화를 무혐의 처리한 이유를 밝혔다.


문화 평론가 이재현 “음란하다는 말 자체가 거대한 덫"

반면 이번 판결문에는 음란성을 판단할 때의 원칙까지 명기했다. ‘작품에 문학성이나 예술성이 있다고 해서 그 작품의 음란성이 당연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중략) 묘사 방법이 노골적이고 아주 구체적인 점, 묘사 부분이 양적 질적으로 소설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사회의 더 개방된 성관념에 비춰 보더라도 음란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음란성’에 대한 사법부의 관점은 1960년대 이래 일관된 것이었다. 예술성과 음란성은 다른 범주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다만 음란성을 판단하는 데 보통 사람들의 성관념을 고려하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허용 폭이 유동적이며, 특정 대목이 아니라 전체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원칙을 따르고 있다. 가장 최근 판례인 <아마티스타>(1997년)에 대한 판결이 좋은 사례다. 법원은 ‘설혹 이 소설이 중남미 에로티시즘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그곳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으며, 예술성 등 사회적 가치로 인해 성적 자극의 정도가 완화되었다고 보이지 않는다’라고 판시했다.

문화 평론가 이재현씨는 법원이 음란성을 판단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다. 장정일씨가 기소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 작품은 (음란해도) 되고, 그렇지 않으면 (음란하면) 안된다’ 혹은 ‘예술 작품에 대한 평가는 독자와 문단이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 따위의 어설픈 논리로 항변하지 말아야 한다. 음란하다는 말, 그 거대한 덫이 문제다.” 오직 음란성이란 말과, 그 말을 가지고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제도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음란성에 관한 질문이 ‘불온’한 것은 이처럼 그 의심이 권력에 대한 의심 즉, ‘누가 너에게 그것을 판단할 권리를 주었으냐’는 질문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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