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상큼하지만 심심한 독신남녀 사랑 찾기
  • 김봉석 (영화 평론가) ()
  • 승인 2003.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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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즈>의 원작은 기마타 도시오의 <29세의 크리스마스>, 1994년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드라마를 소설로 옮긴 작품이다. 원작의 제목이 말해주듯, <싱글즈>는 29세의 이야기다. 더 이상은 청춘이라고 부르기 힘든, 어쩐지 사회 체제 안으로 완벽하게 편입되어야 안심할 것만 같은, 서른이 코앞에 닥친 나이. 특히 여자라면, 일과 사랑 사이에서 마구 흔들리는 나이. 스물아홉 살, 청춘에 관한 보고서다.

나난(장진영)은 말한다. 스무 살 시절에는 서른이 되면 일과 사랑에서 무언가를 이루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고. 그러나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서른은 무엇인가 완성되는 나이가 아니라 여전히 진흙탕에서 구르는 시절인 것이다.

나난은 애인에게 버림받고, 다음날 패션 디자이너에서 레스토랑 매니저로 좌천된다.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친구인 동미(엄정화)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한다. 열심히 나난을 위로했던 동미는 직장내 성추행을 감행하는 팀장에게 개망신을 주고 회사를 나온다. 나난과 동미는 어릴 때부터 절친한 친구였던 정준(이범수)과 함께 술을 마시며 탄식한다. 스물아홉 살의 인생은 너무나 피곤해!!

매니저로 일하는 나난에게 한 남자가 접근한다. 꽤 잘 나가는 증권사 직원 수헌(김주혁). 나난은 아직 자신이 가치가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하지만, 언제나 내숭으로 일관한다. 정준은 연애와 결혼이 별개라는 젊은 여자에게 휘둘리고, 그런 정준을 타박하는 동미와 한판 싸움을 벌인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얼렁뚱땅 하룻밤을 지내게 되고, 기로에 서 있는 그들의 인생은 이리저리 줄달음친다.


스물아홉 살의 네 남녀. 그들의 다리는 아직 튼튼하지 않다. 때로는 사랑 때문에, 때로는 일 때문에 심하게 비틀거리거나 나동그라진다. <싱글즈>의 장점은 그렇게 불안하고 대책 없는 젊은 날의 모습을 가볍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의 어법을 그대로 살린 대사는 절실하면서도 상큼하게 재미있다. 내숭 떠는 장진영과 활달 솔직 그 자체인 엄정화, 순진하고 꽁한 성격인 이범수가 생생하게 드러내는 연기를 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그런데 <싱글즈>는 역시 드라마가 더 어울린다. 네 남녀의 파란만장한 스물아홉 살이 눈에 탁 들어오기에는, 사건들이 너무 심심하고 반복이 많다. 편하게 앉아서 싱글들의 다사다난한 소동을 보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임팩트가 없다. 모든 것은 예상대로 흘러가고, 적당한 정도에서 멈춘다.

스물아홉 살이라면 좀더 세게 부딪치고, 좀더 진하게 파고들어도 되지 않았을까? <싱글즈>는 가벼운 대사처럼 가볍게 흐르고, 모든 것이 즐겁게 막을 내린다. 그것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싱글즈>가 그리는 세계가 지금 한국의 스물아홉 살이 처한 상황을 반영하거나 함축하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그다지 리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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