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선물도 있습네다”
  • 평양·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2.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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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 국제친선관람관, 남한관 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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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화보
묘향산에 있는 국제친선전람관(위)은 방북 인사들의 단골 관광 코스다. 왼쪽은 전시실 내부.



묘향산을 찾은 때는 11월2일 토요일이었다. 평양에서 서북쪽으로 150㎞, 자동차로 1시간 반 정도 거리이니 대개 묘향산 관광은 다른 일정을 잡기 힘든 주말에 가는 경우가 많다. 조선국제려행사가 운영하는 2층 관광버스가 묘향산행 단체 관광객을 태우고 가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산세가 수려하면서도 장엄하다는 민족의 명산. 북쪽이 이곳을 남쪽에서 오는 사람들을 꼭 데려가는 ‘단골 코스’로 택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향산호텔에서 약 1.3㎞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국제친선전람관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곳은 세계 각국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내온 선물을 전시한 곳이다.



김일성 초상화가 부각된, 4t에 이른다는 육중한 청동문을 열고 들어갈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전람관을 돌아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총건평 7만여 평에 전시실 수만 해도 1백50여개. 김일성 주석이 1945년 평양에 입성한 이후 1994년 7월 사망 전까지 5대륙 1백70여개국으로부터 받은 선물 16만8천여점과 김정일 위원장이 1백55개국에서 받은 선물 4만5천여점의 일부가 대륙·국가 별로 전시되어 있다. 전시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한 달 가지고도 부족하다고 한다.



김일성·김정일이 받은 선물 20여만 점 전시



여성 안내원은 이곳이 세계 문화 유산의 보고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스탈린 마오쩌둥 주언라이 덩샤오핑 장쩌민 카스트로 카다피 등 사회주의권 지도자들에서부터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빌리 그레이엄 목사 등 서방 인사들까지, 그들이 보내온 선물을 통해 북한 중심의 한반도 역사를 볼 수 있었다.



문득 궁금증이 일어 안내원에게 남쪽에서 온 선물만 따로 진열한 곳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반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왜 없겠습네까. 있습네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전에는 독립된 전시 공간이 없다가 10일 전쯤 전시실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안내를 받아 전람관의 한쪽에 있는 남한관에 발을 들여놓았다. 출입문을 들어서자 한 종교 지도자가 보냈다는 백제금동향로 모조품이 눈에 띄었다. 이어서 남쪽의 각 사회단체와 종교단체가 보내온 선물들과 재계 인사 및 역대 대통령이 보낸 선물들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선물이 다 있는데 유독 김영삼 대통령의 것만 없었다. 안내원에게 물으니 “그이는 수령님 돌아가셨을 때 조문도 못하게 했는데 선물은 무슨 선물…”이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역대 대통령의 선물은 대개 자기 세트나 그릇 따위 소품이었다. 남북관계가 본격화하기 전 대개 ‘밀사’들을 통해 전달해야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동아일보>가 김일성 주석의 보천보전투 소식을 알린 기사를 동판으로 떠서 선물한 것, 삼성의 텔레비전 세트,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의 남대문 모형, 에이스 침대가 기증한 대형 회의용 테이블과 의자 세트, 고 정주영씨가 기증한 다이너스티 골드 자동차와 금으로 된 황소가 눈에 띄었다.
안내원의 마지막 말이 걸작이다. ‘이 분들이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수령님을 깊이 흠모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라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곳에서는 반 세기 남북관계의 굽이굽이 풍경이 눈앞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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