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와의 전쟁=권력 투쟁
  • 베이징·주장환 통신원 (jjhlmc@sisapress.com)
  • 승인 2002.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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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리 펑·주룽지, 추문 들추며 ‘난타전’…측근들 추풍낙엽



중국 공산당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부패와의 싸움’을 지상 최대 과업으로 삼았다. 그러나 중국 정치 분석가들은 굵직굵직한 부패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배경에 깔린 정치적 함수 관계를 잘 살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부패와의 싸움 형식을 빌려 사실은 권력 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번 중국 최고 지도부 교체 과정도 예외가 아니었다.



최근 터진 각종 부패 추문에는 기존 중국 공산당 서열 1·2·3위인 장쩌민 주석·리펑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주룽지 총리가 모두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말 그대로 사상 최대 규모의 ‘난타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각 파벌의 수족들은 추풍낙엽이 되었다.



장 주석의 경우, 그의 심복 쩡칭훙(曾慶紅) 전 공산당 조직부장의 최측근인 CCTV 문예부 주임 자오안(趙安)이 뇌물 수수 혐의로 지난 9월 체포됨으로써 타격을 입었다. 중국 문화·연예계의 대부로 알려진 자오안이 체포된 것은 쩡 부장이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출하는 것을 막아 후계 권력 구도에서 장 주석 파벌의 독주를 막으려는 포석으로 진행되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리 펑 위원장, 권력 기반 송두리째 빼앗겨



리 펑 상무위원장은 이번 부패 청산 캠페인 과정에서 자신의 권력 기반인 전력 분야를 송두리째 잃었다. 그는 옛 소련에 유학했다가 돌아온 1955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줄곧 전력 분야에서 일하며 권력 기반을 다져왔다.
최근까지 국가전력공사 총경리로 활동하던 가오옌(高嚴)은 리 위원장의 심복. 그가 지난 8월부터 부패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아예 소식까지 묘연해졌다. 일각에서는 미국 망명설이 나오고 있다. 리 위원장의 또 다른 심복인 라오더룽(勞德龍) 선전에너지그룹 회장도 지난 9월부터 당국의 조사를 받았으며 다른 주요 간부들도 줄줄이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들은 리 위원장이 이번에 본 피해가 워낙 심해 재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베이징 정가 일각에서는 이제껏 바람막이가 되어주던 장 주석 진영이 리 위원장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리 위원장은 민간 기업가들에게 공산당 입당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3개 대표론’을 고집하는 장 주석을 강도 높게 비판해온 좌파 진영과 관계가 돈독했다.



최근 난타전에서 가장 의외인 것은 주룽지 총리 계열 경제권 인사들이 줄줄이 피해를 보았다는 점이다. 주 총리는 사심 없이 국정을 운영해 주변이 누구보다 깨끗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국무원 안팎에서 그의 측근으로 꼽히는 인물도 극소수이다. 있다면 런민(人民)은행 부행장을 지내고 홍콩 내 중국계 자본의 대명사인 광다(廣大) 그룹 회장을 지낸 저우싸오화(朱小華) 정도이다. 바로 그가 최근 부패 및 자금 관리 부실 혐의로 징역 15년형의 중형을 선고받고 중국 공산당에서 쫓겨난 것이다. 주 총리의 측근이던 왕쉬에빙 전 중국건설은행장도 횡령 사건에 연루되어 경질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난타전을 통해 차기 후계 구도가 확실하게 정비되었다는 점이다. 한 소식통은, 이번 난타전이 장 주석이 어느 정도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즉 국가 주석 직과 당 총서기 직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부주석에게 넘겨주기로 결심해 권력 승계가 순조로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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