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 취급받는 그들은 비참했다
  • 카슈가르·글 박현숙/사진 노순택 ()
  • 승인 2002.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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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경 지역 카슈가르 ‘위구르족의 삶’ 르포/빈곤·차별·억압에 피눈물
"중국은 현재 ‘동투 테러 분자’들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10일, 중국외교부 탕자쉬안 부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례적인 ‘반테러 선언’을 하고 나섰다. 뉴욕에서 9·11 참사가 발생한 이후 꼭 한 달 만이다. 그리고 다시 1주일 뒤, 중국 신장 지역의 ‘이리’에서 ‘동투분자’ 2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들의 죄목은 ‘국가의 기본적인 이익을 해쳤다’는 것이다. 2명의 사형수는 1997년 2월5일 신장 지역 이리에서 발생한 ‘동투르키스탄 분리독립 테러 사건’을 주도했던 핵심 인물들로 알려졌다.




9·11 사태 이후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어떤 ‘묵계’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그동안 제3세계의 인권 문제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참견해 왔으며, 특히 주도권 경쟁자인 중국의 인권 문제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왔다. 그럴 때마다 중국이 ‘너희나 잘하라’는 식의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인권 문제로 미국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던 중국 정부가 9·11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을 ‘응원’했을 때 사람들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응원에는 ‘9·11 사건을 계기로 우리도 테러와의 전쟁을 벌일 테니, 이 문제에 시비를 걸지 말라’는 뜻이 숨어 있었다.



중국 정부의 반테러 성명 이후 신장 위구르 자치주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특히 ‘동투 세력’의 암약지로 지목된 카슈가르 등 변방 국경 도시에서는 위구르족 3명만 모여도 잡혀간다는 풍문이 나돌 정도였다. ‘곳곳에 총을 든 테러 분자들이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들려왔다.



중국 내 위구르족의 최대 밀집 지역이자, 아프가니스탄 및 옛 소련 영토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국경 지역인 카슈가르. 1930년대 초반 ‘동투르키스탄 회교공화국’이라는 독립 국가의 깃발을 세우기도 했던 까닭에 민족적 자긍심이 남아 있지만, 반대로 중국 정부에는 가장 위험한 소수민족 자치 지역이자 테러 분자들의 온상지로 지목되고 있는 이곳의 실상을 알아 보기 위해 80여 시간의 기차 행로에 올랐다.



“하나의 중국에 4개의 세계가 있다”



카슈가르는 ‘개발 대상’이다. 이곳은 낙후한 서부 지역의 소수민족 자치 지역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변방 도시이다. 이들 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중국판 뉴프론티어’정책인 서부 대개발 사업은 주로 신장 지역의 막대한 석유와 지하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자, 지역간 불균등 발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 개방 정책의 새로운 ‘대장정’이다. 개혁 개방 초기에는 주로 동부 연해 지역에 투자가 집중되었고,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룬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주로 내륙의 서부 지역이 개발 대상이 되었다.





중국과학원 후안강(胡鞍鋼) 교수는 최근 자신의 책 <지역과 발전:서부 개발 신전략>에서 중국 내 지역간 불평등 발전 문제를 ‘하나의 중국, 4개의 세계’라는 말로 요약했다. 중국 인구의 2.2%를 점하는 상하이·베이징·선전이 GDP 면에서 중국의 제1 세계라고 한다면, 나머지 지역은 각각 제2, 3, 4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절반 이상의 지역과 인구가 ‘제4 세계’(그 대부분이 서부 지역임)에 속하며 4세계와 1세계 지역 주민의 평균 GDP 차이가 10배를 넘는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서부 대개발 정책에는 동서 지역간 불균형을 해소하고 경제 발전이라는 ‘당근 정책’을 통해 정치·사회적 불만과 모순을 해결하려는 전략적인 의미도 담겨 있다. 1990년대 들어 끊임없이 발생하는 신장 지역의 분리독립 운동 등과 같은 정치·사회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발전을 통한 통합’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곳 카슈가르에서 발전과 통합의 문제는 접점이 없는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현대식으로 지은 병원과 대형 호텔, 반듯하게 닦은 아스팔트는 카슈가르가 개발되고 있음을 한눈에 보여주지만, 이러한 개발의 단물이 다수의 위구르 주민에게도 공급되고 있는지는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부의 이주 정책에 따라 몰려온 소수의 한족(漢族)이 개발에 따른 부와 권력을 독차지해 상대적 박탈감만 가중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카슈가르 시내에서 만난 대다수 한족은 위구르족에 대한 우월감이 대단했다. “만약 이곳에 여전히 위구르족만 살고 있다면 오늘날의 발전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카슈가르는 온통 위구르족의 낡아빠진 집들로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전염병까지 창궐했다. 우리 한족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런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단 말인가.” 시내에서 택시를 모는 한 택시기사는 위구르족들에 대한 ‘언짢은 감정’을 이렇게 드러냈다. 그는 아예 “위구르족들이 원하는 대로 독립을 시켜줘도 무방하다. 그러면 오히려 위구르족들만 손해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 지역에 매장되어 있는 막대한 광물 자원과 석유가 중국 경제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주도권을 쥔 소수의 한족들이 위구르족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데 반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위구르족은 대부분 언급을 꺼렸다. “마음으로는 알고 있으나 입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심정을 당신들은 모른다”라는 것이다.



카슈가르의 위구르족이 직면한 결정적인 고민은 두말할 나위 없이 가난이다. 위구르족 가운데 한달 평균 1천 위안(약 15만원) 이상을 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대부분 4백∼5백 위안 정도의 수입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한족들과는 큰 차이가 난다.





의대 졸업한 엘리트 “경비직 구해 다행”



심각한 것은 이러한 가난을 벗어날 통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적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직종에 진출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없는 것이다. 위구르족의 운명을 짊어진 젊은이들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있으며, 설령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직업을 구할 길이 없다.



카슈가르 시내의 이슬람 성전인 아티카 사원 앞 지하상가에서 일하는 위구르족 청년 알리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이다. 그러나 그는 한달에 4백 위안을 받고 상가에서 경비를 보고 있다. “그나마 경비 직이라도 구했으니 운이 좋은 편이다”라고 말하는 알리의 얼굴에는 열패감이 가득했다. 그는 “카슈가르에 있는 정식 병원에서 위구르족 의대 출신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족이 아닌 이상 돈을 모아 개업을 할 수 없어 허가증 없는 불법 병원에서 일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도 자리가 한정되어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라고 토로했다.



알리의 푸념을 듣고 있던 소꿉친구 알리나 누리비야도 한마디 거든다. 그녀는 올해 의과대학 졸업반이다. 취직할 길이 막막한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 남자가 아닌 탓에 경비 자리조차 찾을 수도 없는 누리비야의 신세는 더욱 처량하다. 누리비야가 가진 고민은 카슈가르의 젊은 인재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제법 성공한 축에 속한다는 사람들도 은행이나 호텔 등 한정된 직종에 종사할 따름이다. 카슈가르에서는 고급 호텔로 통하는 지니와커에서 일하는 타지르 역시 명문 란저우 대학을 졸업했지만 원하는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돈을 벌어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어한다. 그것만이 가장 확실한 안전판이지만 사업 자금을 마련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은행원 알리프의 꿈은 ‘성공한 위구르족 유태인’이 되는 것이다. 알리프는 안정적인 수입원을 가진 은행원이다. 그의 부인은 위구르족 초등학교 부교장이다. 알리프 부부는 카슈가르에서는 보기 드문 ‘행운아’다. 알리프는 위구르족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못 배운 탓’으로 돌린다. “중앙 정부의 정책을 탓하고 소수민족으로서의 서러움 그리고 일부에서 제기하는 분리독립을 외치기 전에 위구르인 모두가 배워야 한다”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러나 그 역시 위구르족은 배우고자 해도 한족과 똑같은 기회를 가질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게다가 그는 비록 은행원이라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족과 똑같이 승진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도 돈만 마련되면 장사를 하고 싶어한다.





공산당은 ‘만인 평등’ 정신 저버렸다



어떤 위구르인도 불평등에 대한 불만과 분리독립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지만, 그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옛 독립 국가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조심스럽게 내비치고 있었다.



중국에서도 신장은 해가 가장 늦게 지는 지방이다. 오후 7시, 베이징에서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시간이지만 신장은 환한 대낮이다. 신장에서도 가장 서쪽에 위치한 카슈가르에 여름이 오면 자정 무렵에야 겨우 땅거미가 질 정도다. 이렇듯 베이징과 카슈가르 사이에는 자연적 시차가 존재하지만, 정치적 시차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모든 시간은 베이징의 통솔 아래 있다. 이 통제를 받으며 위구르족 사람들은 카슈가르가 점령되었음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카슈가르의 인민공원 앞. 인민공원은 중국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곳으로, 인민의 휴식처로 사랑받는다. 그곳에는 만인을 평등하게 하려고 했던 중국 공산당의 정신이 담겨 있다. 그러나 카슈가르의 인민은 인민공원을 자주 찾지 않는다. 인민을 해방시켜주었던 마오쩌둥 주석의 웅장한 석상 앞에서 그들은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지난 6월29일 중앙아시아의 옛 소련 영토인 키르기스탄에 주재하던 중국 영사와 그와 동행했던 위구르족 상인이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중국 정부는 심증적으로 ‘동투 분자’들의 소행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다시 중국의 신장 지역을 중심으로 정부의 반테러활동이 개시될 조짐이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80여 시간에 걸쳐 카슈가르를 돌아보면서 사나운 눈초리를 가진 ‘테러분자’들을 보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3명만 모여도 잡아간다는 무서운 국경 관할 인민해방군들의 활약상을 본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로 만들기에 충분한 남루한 일상과 소수민족의 설움을 보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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