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첫 직선제 대선 현장 취재
  • 자카르타·정은진 (코비스 사진 기자) ()
  • 승인 2004.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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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 열기 후끈…전세기 타고 유세 나서기도
세계의 이목이 인도네시아로 쏠리고 있다. 인도네시아 역사상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 선거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1950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뒤 수하르토가 지배하던 32년 간의 군부 독재와 3명의 간선제 대통령 체제를 거친 이후 치르는 첫 번째 직선이다. 이번 선거에는 재선을 노리는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현 대통령, 인도네시아의 전 안보 장관이자 장성 출신인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67쪽 인터뷰 기사 참조), 함자 하즈 부통령, 정치학자 아미엔 라이스, 그리고 역시 장성 출신인 위란토 등 총 5명이 후보로 나섰다.

휴양지 발리 섬도 선거 격전장

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1천만명으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1만3천5백여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인도네시아는 또 세계에서 국토의 좌우 길이가 가장 긴 나라(5천km)이며, 동부와 서부의 시간 차가 3시간에 이른다. 동·서부간 시차는 미국과 맞먹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도네시아 대선은 그 자체로 ‘국제 이벤트’가 되었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외국에서 파견된 선거감시단원 수만 해도 6백명에 이른다. 인도네시아 민간 선거 감시 단체들은 인도네시아 전역의 58만여 투표소에 참관인 16만명을 배치했다.

선거에 나선 대통령 후보들은 아예 전세기를 빌려 전국의 섬들을 돌며 유세에 나섰다. 각 후보들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지정한 장소에서만 유세를 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서부의 수마트라 섬으로부터 동부의 파푸아 섬에 이르기까지 전세기 또는 민간 여객기를 타고 수십명의 스태프를 거느리며 유세에 나서야 했다.

직선으로 치르는 첫 선거답게 선거 열기는 인도네시아 전역에 몰아쳐, 세계적으로 유명한 휴양지 발리 섬도 대선 격전장으로 변했다. 6월 하순 어느 날의 발리 섬 한 운동장. 수백명의 인파가 몰려 ‘에스비예이(SBYAY)’를 외치고 있었다. 이윽고 운동장에 마련된 단상에서 키가 180cm가 넘는 건장한 체구의 50대 중반 남성이 마이크를 잡았다. 바로 이날 유세의 주인공,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였다. 에스비예이는 이 후보의 이름 머리 글자 끝에 인도네시아어로 ‘예스’를 의미하는 ‘예이’라는 단어를 합성한 구호.
에스비예이를 외치는 함성이 최고조에 이르자 <무지개>라는 제목의 발라드풍 노래가 흘러나왔고, 후보와 군중은 하나가 되어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유세장은 순식간에 가라오케 무대로 변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에스비와이’라는 애칭으로 많이 불림)는 이번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해 보이는 선두 주자이다. 그의 러닝 메이트는 인도네시아의 유명한 백만장자 무함마드 유수프 칼라이다. 이 덕분에 에스비와이는 선거 비용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방방 곡곡을 부통령 후보의 전용기로 날아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에스비와이는 비행기 안에서 최측근 선거 참모 루트피와 함께 일정을 점검하거나, 그날 그날의 선거 전략을 논의했다. 때때로 취재 기자들이 동승해 그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일단 목적지에 도착하면 대통령 후보는 현지인들로부터 따뜻한 환영 인사를 받는다. 각 지역의 공항 환영식은 흥미로운 볼거리 중 하나다. 수많은 종족으로 구성된 나라답게, 환영식에는 현지 부족들이 마련한 특유의 민속 춤 공연이 빠지지 않는다.

에스비와이의 발리 유세 때도 그랬다. 공항에 도착한 그는 민속 춤 공연을 비롯해 현지인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은 뒤 리무진에 올라 유세장으로 향했다. 유세장에 도착한 그는 간단한 답례 인사와 함께 공약을 밝히는 연설을 시작했다. 연설이 끝난 뒤에는 지지자들과 함께 자신의 로고 송 <무지개>를 합창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는 발라드풍 노래인 <무지개>를 로고 송으로 정했을까. 이는 선거 전략상 ‘부드러운 이미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에스비와이는 퇴역 장성이다. 군부 출신이라는 딱딱한 이미지를 최대한 씻어버리기 위한 고육책인 것이다.

위란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위란토는 인도네시아 아체 지방의 록사마위와 수마트라 메단을 유세할 때에도 자신의 애창곡으로서 가라오케 스타일 노래인 <흥망성쇠>를 불렀다. 이에 더해 위란토는 인도 리듬이 결합된 대중음악 ‘당둣’ 풍의 노래도 두어 개 더 불렀다.

‘가라오케’ 스타일 로고송 부르며 지지 호소

위란토에게 아체 지역의 유세는 모험이었다. 현역 장성 시절 위란토는 인도네시아 정부에 대해 끊임없이 분리·독립을 외쳐온 아체 지방 사람들과는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위란토가 전세기 편으로 아체에 도착했을 때 줄곧 무장 군인의 보호를 받아야 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취재진을 태운 버스와 위란토를 태운 리무진은 유세장에서부터 공항까지 논스톱으로 달려야 했다. 특히 아체 지방의 록사마위는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분류된, 이른바 ‘레드 존’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록사마위를 방문한 후보로는 위란토가 유일하다고 한다.

이처럼 신변 위험까지 무릅쓴 공격적인 유세 활동 덕분일까. 에스비와이와 위란토 두 퇴역 장성 출신 대선 후보들은 민간인 출신이자 ‘건국의 아버지’ 수카르노의 딸이기도 한 메가와티 현 대통령을 위협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 7월5일 실시된 1차 투표의 개표 결과, 에스비와이는 33.8% 득표율을 얻어 선두를 질주했다. 메가와티 대통령의 득표율은 24%, 위란토는 22%. 어느 후보도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이번 대선은 ‘결선 투표’까지 갈 것으로 보인다. 2차 결선 투표일은 오는 9월20일이다. 유세장이 많은 것만큼이나 선거 여정 또한 참으로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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