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탄핵은 하늘의 별 따기
  • 워싱턴/변창섭 (cspyon@sisapress.com)
  • 승인 200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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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개·양심 투표에 절차도 까다로워…정쟁·보복성 탄핵 불가능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발의된 지 며칠 뒤, 찬반 토론 절차 없이 대통령을 탄핵한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탄핵과 관련한 일련의 절차는 물론 가결이 실현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미국 역사상 지금까지 앤드루 존슨(17대), 리처드 닉슨(37대), 빌 클린턴(42 ·43대) 3명이 탄핵 대상에 올랐지만 탄핵된 사람은 없다.

미국 헌법은 제1조 2항과 3항에 공무원에 대한 의회의 탄핵권을, 2조 4항에 탄핵 대상과 그 사유를 명시하고 있다. 탄핵 대상에는 대통령·부통령을 비롯해 모든 연방 공직자가 포함되지만 하원의원이나 상원의원은 대상이 아니다. 탄핵 사유로 헌법은 ‘반역, 뇌물 수수 또는 기타 중범죄와 비행’을 적시하고 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헌법이 발효된 1789년 이래 지금까지 모두 14명이 탄핵 심판을 받았고, 탄핵된 사람은 7명으로 모두 연방 판사였다.

탄핵 대상자 중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단연 대통령이다. 미국 헌법은 탄핵 발의의 고유 권한을 하원에 부여하고 있다. 특별 검사에 의해 탄핵 절차가 시작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탄핵의 구체적 사유를 담은 보고서를 하원에 제출해 탄핵을 의뢰한다. 탄핵이 제기되면 하원 법사위원회는 우선 탄핵 조사를 시작할지 여부를 논의한 뒤 의견이 모아지면 하원 재적 의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조사에 착수한다. 하원에서는 또 재적 의원 과반수가 동의해야 탄핵 발의 요건이 성립한다.
하원에서 탄핵이 발의되면 공은 상원(재적 의원 100명)으로 넘어간다. 상원이 탄핵 절차를 밟을 때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연방 대법원장의 주심 아래, 탄핵 심리를 비공개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심리가 끝나면 의원 개개인이 비공개가 아닌 공개 투표로 가결 여부를 가린다. ‘실명제 표결’인 것이다.

탄핵이 가결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에 해당하는 67명의 찬성이 필요하지만, 탄핵 사유가 100% 명백하지 않는 한 이 정도 정족수를 확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6년 임기를 보장받은 상원 의원들은 통상 당론보다는 개개인의 양식에 따라 투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 심판을 받은 존슨 전 대통령이나 20세기 들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탄핵 심판을 받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탄핵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미국의 탄핵에서 눈여겨볼 만한 점은 미국 헌법상 탄핵의 소추 근거 중 ‘기타 중범죄와 비행(other High Crimes and Misdemeanors)’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문구는 전통적으로 대통령의 권력 남용과 직무 중 비행을 지칭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그 광범위한 해석의 여지 때문에 정쟁에 의한 탄핵의 빌미로 악용되기도 했다. 존슨·클린턴이 이같은 죄목으로 일종의 ‘정치적 탄핵’ 대상이 되었던 대표적 인물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1865년 대통령 직을 승계한 존슨의 사례부터 살펴보자. 존슨은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는 다수파 공화당 때문에 제대로 업무를 추진할 수가 없었다. 공화당은 마침내 대통령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상원의 동의 없이는 공무원을 파면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무원 임기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발끈한 존슨은 때마침 자신의 뜻에 반기를 든 에드윈 스탠턴 전쟁부 장관을 해임하고 남북전쟁 때 북군 총사령관을 지낸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을 그 자리에 임명했다. 여기에는 스탠턴 해임을 통해 ‘공무원 임기법’의 합헌 여부를 확인하고자 했던 존슨의 복안도 작용했다. 공화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존슨이 법을 유린했다며 탄핵을 발의했지만 탄핵안은 상원에서 가결에 필요한 정족수 67표에서 1표가 모자라 부결되었다.

백악관 여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이 빌미가 되어 1998년 탄핵 심판대에 오른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우도 공화당의 정치적 보복에 시달렸다. 집권 2기를 맞이해 클린턴은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과 주요 국정 현안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했고, 급기야 1998년 9월에는 공화당의 방해로 이듬해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하는 바람에 연방 정부가 일시 문을 닫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처럼 양측의 불신이 정점에 이른 때에 대통령 탄핵 사건이 터졌다. 당초 클린턴 부부의 부동산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임명되었던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가 르윈스키와의 성추문과 관련해 열한 가지나 되는 탄핵 사유를 담은 보고서를 하원에 제출했다. 특히 이 보고서에는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성행위와 관련한 시시콜콜한 대화 내용까지 불필요하게 담겨 있어 ‘스타 특검이 클린턴에게 도덕적 치명상을 안겨 탄핵 가결을 유도하려는 정치적 동기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셌다.
결국 오랜 노력 끝에 공들여 완성한 이 보고서도 상원의 부결로 기대했던 결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당시 반대 표를 던진 공화·민주 상원의원들의 한결같은 견해는 ‘성 추문이 도덕적으로 단죄될 수는 있어도 헌법상 탄핵 사유는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 국민 대다수가 클린턴의 부도덕성은 나무라면서도 탄핵을 원치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민주당은 탄핵 대신 의회 차원의 규탄 결의안을 채택하자고 제안했지만 ‘클린턴 몰아내기’에 혈안이 된 공화당이 거부해 무산되었다.

명백하게 실정법을 위반한 닉슨 전 대통령은 탄핵에 앞서 스스로 사임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탄핵이라는 시비를 낳은 존슨·클린턴과는 구별된다. 1972년 6월 닉슨 재선 캠프가 고용한 괴한 5명이 워터게이트 건물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불법 침입하다 발각된 사건에 대해 닉슨은 시종일관 개입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최측근 참모들이 속속들이 진실을 고백하면서 닉슨의 고의적 은폐 사실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결국 하원은 1974년 7월30일 위증과 사법 방해, 권력 남용 등 세 가지 탄핵 사유를 들어 탄핵안을 발의했다. 상원의 탄핵 가결이 100% 확실한 상황이었다. 결국 닉슨은 하원 법사위가 탄핵 사항을 제시한 지 나흘 뒤인 8월9일 전격 사임했다.

이처럼 실정법 위반이 명백한 경우에도 탄핵안 발의가 의회에서 일사천리로 강행되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닉슨의 경우에도 특별검사에 의해, 혹은 의회 특별 위원회에 의해 장기간 조사가 이루어진 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명백한 사유가 인정되었을 때 탄핵안이 발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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