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핵과학자 `정보유출` 고해성사 내막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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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 카디르 칸 ‘핵 기술 유출’ 고해성사→사면 과정 미심쩍어
2월 들어 국제 뉴스 분야에서 ‘이 달의 인물’로 꼽힐 만한 인사가 있다면, 단연 파키스탄 핵무기 개발의 아버지 압둘 카디르 칸을 꼽을 수 있다. 1980년대 이란·리비아·북한에 파키스탄 핵무기 개발의 노하우를 빼돌린 장본인으로 지목되어 연일 국제 뉴스 지면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칸이 ‘핵 확산의 주범’으로 본격 거론되기 시작한 때는 지난 2월 초. 파키스탄 당국이 ‘핵 정보를 해외에 불법적으로 빼돌렸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워 그를 재판에 회부하겠다고 공식으로 밝히면서부터이다. 당국의 발표는 파키스탄 여론을 들끓게 했다. 그는 1970~1980년대 우라늄 농축 기술 등 파키스탄에 핵무기를 선물한 주인공일 뿐 아니라, 각종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에도 공헌해 파키스탄을 인도의 군사적 위협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게 한 국민적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칸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은, 그가 지난 2월4일 파키스탄 국영 텔레비전에 등장해 과거 자신의 행동을 깊이 뉘우치고 무조건 사죄한다고 발표하면서 더 뜨거워졌다. 그는 당시 텔레비전 발표에서, 과거 핵 기술 및 관련 장비 밀거래는 전적으로 자신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고백했다.

이같은 발표 직후, 파키스탄의 페레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여론의 압력과 본인의 사죄를 구실로 칸을 사면하겠다고 선언했다. 칸의 신병 처리에 대해 이처럼 신속한 조처가 이루어진 것은 칸 사건의 이면에 뭔가 사전 각본이 숨어 있다는 의혹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한 근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칸은 텔레비전 성명에서 자기가 왜 당국의 허가 없이 핵 기술을 밀거래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둘째, 그는 핵 기술·정보 밀거래가 전적으로 자신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고 했지만 사실과 다를 공산이 높다. 비록 칸이 파키스탄 핵 개발의 아버지로서 상당한 지위와 특권을 누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파키스탄의 핵 개발 프로젝트를 군부가 주도했으며 현재에도 군부의 통제 아래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칸 스캔들을 둘러싼 미국-파키스탄 밀약설이 모락모락 새어나오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즉 미국은 칸을 비롯해 파키스탄의 핵 전력을 불문에 붙이는 대신, 파키스탄으로부터는 이란·북한 등 ‘불량 국가’로 지목한 몇몇 나라의 핵 관련 정보를 넘겨받는 거래가 성립했다는 것이다. 만약 파키스탄측 핵 거래 내역이 미국으로 넘어갈 경우, 미국은 이란·북한 등 몇몇 ‘핵 확산국’에 대해 강력한 압박 카드를 손에 쥘 수 있게 된다. 당장 핵 포기를 둘러싸고 미국과 힘겨운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북한이 표적이 될 수 있다.

영국의 권위지 <파이낸셜 타임스>도 지난 2월6일자 서울발 기사를 통해 ‘북한 우라늄 개발 의혹에 대한 미국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될 것’이라는 분석 기사를 내놓았다. 미국은 2002년 10월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기술을 넘겨받아 우라늄 농축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파키스탄의 관련 정보가 넘어가면 이같은 주장에 신빙성이 커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칸의 ‘고해 성사’ 파장은 때마침 국제원자력기구가 파키스탄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핵 밀거래 실태 조사를 독일·일본으로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 법석에 이어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찾기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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