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륙에 안네 프랑크 추모 열기
  • 런던·韓准燁 편집위원 ()
  • 승인 1999.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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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안네 프랑크 추모 열풍… 전기 출간·기념 행사 줄줄이
영국을 비롯한 유럽 대륙에 안네 프랑크 붐이 일고 있다. 탄생 70주년인 오는 6월12일을 앞두고 3월 하순부터 전기 세 권이 나와 출판사간 경쟁이 치열하고, 올 한 해 세계 각국에서 <안네의 일기> 재출간 붐이 일어날 조짐이다. 안네의 일생을 다룬 영화가 만들어지고 연극도 무대에 올려진다. 안네의 출생지 프랑크푸르트와 일기가 쓰인 암스테르담 등에서는 갖가지 기념 행사가 열린다.

유태인 소녀 안네 프랑크(안네리에스 마리 프랑크)는 13세 생일 이틀 후인 42년 6월14일부터 44년 8월1일까지 일기를 썼는데, 그 안에는 히틀러가 주도한 유태인 탄압과 대학살(홀로코스트)의 실상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안네의 일기는 두 가족이 체포되어 유태인 집단수용소로 끌려간 44년 8월4일의 사흘 전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이미 안네 식구들은 밀고자에 의해 피신처가 발각되어 체포당할 것을 예견한 듯 마지막 며칠의 일기는 숨막힐 듯 처절하다.

‘공포 때문에 오히려 크게 고함을 쳐 이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감옥과 집단 수용소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무섭다.… 최근 며칠새 분위기는 납처럼 무겁고 숨막힐 듯하다. 밖에서는 새 한 마리의 울음 소리도 들려 오지 않고, 사방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죽음 같은 침묵만이 휘장처럼 감싸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은 나를 저 끝없는 지하 세계, 나락으로 끌고 가는 듯하다.’

체포된 이후 45년 3월 하순 수용소에서 사망할 때까지 7개월 남짓 안네가 다시 일기를 썼다거나, 편지나 메모를 남겼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오는 6월12일 탄생 70 주년을 맞아 안네 프랑크의 15년 9개월 간의 짧은 생애가 새롭게 밝혀지고 조명된다. 일기가 끝난 이후 독일 베르겐 벨젠 수용소에서 숨질 때까지의 행적은 물론이고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사춘기 소녀의 성적 성숙 과정과 첫사랑의 비밀, 은신처를 밀고한 자의 정체 등을 새로이 담은 안네 프랑크 전기 세 권이 영국에서 잇달아 출간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언론들은 <지상에서 핀 장미>(캐럴 안 리 지음, 바이킹 출판사) <안네 프랑크 전기>(멜리사 뮬러 지음, 블룸스베리 출판사) <안네 프랑크 이야기>(미르얌 프레슬러 지음, 맥밀런 출판사)가 출간 되기도 전에 주요 내용을 발췌해 보도했다. 전기를 펴내는 영국의 세 출판사는 저마다 ‘안네의 일생에 관한 한 가장 정확하고 풍부한 기록 추적과 신빙성 있는 증언을 토대로 쓰였다’고 주장한다. 증언 바탕으로 수용소 생활 등 새로 밝혀

먼저 영국 태생인 여류 작가 캐럴 안 리는 3월25일 안네의 사망 54주기에 맞추어 발간될 <지상에서 핀 장미>야말로 각종 증언과 자료를 집대성한 ‘진본’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안네와 세 살 위 언니 마고가 세 번째로 이송된 베르겐 벨젠 수용소에서 굶주림과 장티푸스로 죽음을 맞은 최후의 순간을 수용소 동료들의 증언을 통해 처음으로 생생히 밝혀냈다고 강조한다.

이에 맞서 역시 같은 날 출간될 <안네 프랑크 전기>의 저자 멜리사 뮐러는 안네 아버지 오토와 사업 관계를 맺고 있었던 암스테르담 주민들과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 자료, 전후의 재판 자료 등을 동원해서 반 세기 동안 비밀에 싸여 있던 밀고자의 정체를 밝혀냈다고 주장한다.

오는 4월 초에 발간될 <안네 프랑크 이야기>의 저자 미르얌 프레슬러는 앞의 두 전기가 사춘기 소녀가 이성에 눈 뜨는 과정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체포 과정을 둘러싼 밀고자의 정체에 초점을 맞추어 미스터리 소설화함으로써 센세이셔널리즘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미르얌 프레슬러는 독일 거주 유태인 여류 작가로, 그 자신이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영국의 일간 신문 <인디펜던트>는 이처럼 안네가 다시 새롭게 부활하는 것은 ‘인간의 잔학성과 광기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홀로코스트의 광풍 속에서 안네가 마치 어린 순교자처럼 흠 없는 성녀의 반열에 올라서 세기 말을 불안한 마음으로 보내는 인간의 마음 속에 한가닥 위안을 주기 때문’이라고 논평했다.

다음은 캐럴 안 리가 지은 <지상에서 핀 장미>에 기록된 안네의 최후 순간이다.


이가 살갗을 파고들어 생기는 피부병 ‘개선’은 견딜 수 없는 가려움증을 가져왔다. 먼저 안네가 이 병에 전염되어 곧바로 환자들만이 수용되는 별동으로 강제 격리되었다. 동생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언니 마고도 자원해 환자 병동으로 옮겨한 후 곧 이 병에 전염되었다. 두 딸을 한꺼번에 환자 병동으로 떠나보낸 어머니 에디스는 급식 배급량이 훨씬 적은 병동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는 두 딸을 자나깨나 걱정해, 끼니 때마다 자기 몫을 조금씩 떼어내고 사방을 뒤져 음식 부스러기를 모아 딸들에게 비밀 루트를 통해 보내곤 했다.… 에디스는 44년 9월 두 번째로 이송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결국 두 딸을 다시 만나지 못한 채 45년 1월6일 수용소 막사 침대에서 숨졌다. 몸은 물론 마음까지 극도로 약해져 먹을 의욕조차 없었다. 그가 숨진 침대의 담요 밑에는 굳어버린 빵조각들이 있었다. 죽기 직전까지 에디스는 이 빵들이 두 딸과 남편 오토에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임종을 지키는 동료들에게 안타깝게 호소했다. 그러나 에디스가 사망하기 전 이미 안나와 마고는 아우슈비츠를 떠나 독일 중북부 베르겐 벨젠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우슈비츠가 그나마 정
돈되고 질서가 잡힌 지옥이라면 벨젠 수용소는 무질서한 지옥이었다.…안네와 마고가 이송된후 11개월이 흐른 45년 12월에 새로 취임한 요셉 크라머 신임 소장은 수용소 관리들 가운데서도 가장 악명이 높았다. 그는 마음이 내키면 수시로 수용자들을 굶겨 죽였다. 거의 먹지 못한 상태에서 건강이 악화한 안네는 16세 처녀로 성장했음에도 커다란 눈만이 공중에 떠다니는 것 같았다고 생존자들은 증언한다. …

장티푸스에 걸려 격리 수용

당시 안네는 장티푸스가 악화해 수용소 안에서도 완전 격리되어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었다. 추운 2월이었으나 장티푸스는 굶주린 수용자들 사이에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고, 아직 몸을 가눌 수 있는 사람들이 설사 치료용 들풀을 끓여 환자들에게 먹였으나 하루에도 수백 명이 숨져 갔다. 숨진 시체들은 수용소 밖 공터에 매장도 되지 않은 채 비바람 속에서 썩어 갔다.

언니 마고도 곧 장티푸스에 전염되어 두 자매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의 죽음을 최후까지 지켜 본, 당시 10대 소녀였던 유태계 네델란드인 자니에 브릴스리즈퍼 여사는 54년 전 베르겐 벨젠의 그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마고는 이미 회복 불능 단계에 가 있었다. 마고는 침대에서 내려져 죽음을 맞고 있었고, 안네는 펄펄 끓는 고열에 고통받고 있었지만 의식이 아직 남아 마고의 마지막을 지켜 주었다. 안네는 마고가 이제 영원히 평안한 잠을 잘 것이고, 그러면 자신도 더 살아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는데, 그말처럼 안네는 마고가 숨진 직후 마지막 기력을 잃고 쓰러졌다.”…

어머니 에디스는 안네의 생각보다 훨씬 이전에 사망했지만, 안네는 아버지 오토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마지막까지 살아 남으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 안네는 45년 3월 중순, 베르겐 벨젠 수용소에서 병사했다(오토 프랑크는 자유의 몸이 된 이후 가족을 찾아 헤맸는데, 안나와 마고가 죽었다는 사실을 같은 수용소 친구 자니에 브릴스리즈퍼를 직접 만나 확인했다).

2주 간격으로 숨진 안네와 마고의 침대가 비자, 다른 두 소녀들은 수용소 언덕에 쌓여 있는 시체들 가운데서 두 자매를 찾아내 담요로 이들을 싸서 수용소 밖 공동 매장지에 운반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고작이었다.”

안네의 열여섯 번째 생일이 되었을 45년 6월12일 오토 프랑크는 안네가 일기에서 ‘비밀 별채’라고 명명한 암스테르담의 피신처로 돌아왔다. 두 딸과 아내 그리고 다른 일가족은 이미 이 세상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오스트리아 출신 여비서였던 미프 기에스가 돌아온 상사를 위해 그동안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간직해 온 귀환 기념 선물을 내놓았다. 게슈타포가 들이닥쳐 안네의 가족을 체포할 당시, 요행히 압수되지 않았던 몇 권의 공책이었다. “여기 당신 딸 안네가 남긴 값진 선물이 있어요.”


안네의 일기는 이렇게 해서 47년 암스테르담에서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이 일기는 그 이후 반 세기 동안 나치 독일이 저지른 홀로코스트의 악몽을 인류에게 일깨우면서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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