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화산 공포에 잠 못 이루는 일본
  • 도쿄/채명석 (cms@sisapress.com)
  • 승인 2000.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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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우스산 23년 만에 폭발… 화산 연쇄 분화 가능성
홋카이도 우스산(有珠山·732m)이 23년 만에 폭발함에 따라 긴급 피난했던 주민 4천6백여 명이 지난 4월13일 피난 지시가 일부 해제되어 2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또 20일에는 소베쓰죠 온천지구 100여 명에 대해서도 피난 지시가 일부 해제되었다.

일본의 화산예지연락회는 지난 4월12일 우스산이 당분간 지하수와 용암이 접촉해 일어나는 수증기 폭발을 계속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스산 산정 부근에서 한두 주일 안에 폭발적 분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이전의 견해를 수정한 것이다. 화산예지연락회는 또 용암이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표면 현상이 다르게 나타나므로 대폭발을 관측할 시간 여유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도 우스산 분화구는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고 있고, 산정 부근 용암이 갑자기 대폭발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소베쓰죠에서 2백60여 명, 아부다죠에서 7천8백여 명이 긴급 피난했다. 이들은 피난 생활이 한 달째로 접어들자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특히 홋카이도의 대표적 온천 관광지인 도야 온천가 주민은 휴일이 겹치는 5월 초의 ‘골든 위크’에도 온천 문을 열 수 없게 되어 근심이 태산이다. 소베쓰죠와 아부다죠에 걸쳐 있는 도야 온천가는 본래 우스산이 메이지 시대에 분화를 일으킴에 따라 생겨났다. 지하에서 솟아나는 온천수 양으로 따지면 일본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수량이 풍부한 곳이다. 도야 온천가, 분화구 폭발로 관광 수입 타격

도야 호수와 우스산을 끼고 퍼져 있는 도야 온천가의 호텔과 여관은 30여 개에 이른다. 23년 전 분화 때 용암이 흘러나와 생겨난 쇼와신산(昭和新山)이라는 볼거리도 있어 해마다 5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소베쓰죠와 아부다죠 관광협회는 관광 진흥을 위해 매년 ‘골든 위크’부터 가을까지 약 반년간 도야 호수에서 불꽃을 올려왔으나, 예상보다 5년 빠르게 우스산이 분화를 시작하면서 올해는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도야 온천가는 또 호텔과 여관 건물이 지진과 지면 융기, 화산재 등으로 큰 피해를 보아 피난 해제 조처가 내려진다 해도 곧바로 온천 문을 열 형편이 못 된다. 도야 온천가 주민은 한달간 이런 걱정 저런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4월18일 유람선을 전세 내 도야 호수 위에서 자신들의 피해 상황을 직접 점검했다. 한 주민은 “산에서 내려오는 화산재와 진흙물이 우리집을 덮치려 하고 있다”라고 발을 동동 굴렀다. 한 여관 주인은 “온천물이 이전처럼 솟아날지가 가장 큰 걱정이다”라며 안절부절못했다.

홋카이도 도청은 피재자생활재건지원법을 적용해 가옥이 붕괴한 세대에 최고 100만 엔씩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재건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해를 본 온천가 주민에게 100만 엔은 너무나 적은 돈이다.

온천가가 궤멸되면 종업원들의 생계도 막막해진다. 이 지역 주민에게는 온천관광업 이외에는 생계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야 온천가 주민은 온천을 빨리 복구하는 것만이 자활할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도야 온천관광협회는 4월14일 간부회의를 열어 분화 피해를 하루빨리 복구해 이전의 모습으로 재건하자고 다짐했다.

피난 생활이 한 달째로 접어들자 피난민 8천여 명은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산케이 신분>에 따르면, 피난민은 가장 필요한 물건으로 현금과 갈아입을 옷, 자세한 분화 정보 등을 들었다. 피난민들은 또 ‘프라이버시가 보호되지 않고 있다’ ‘익숙하지 못한 집단 생활로 정신 상태가 불안정해졌다’ ‘단체 생활의 룰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홋카이도 도청은 학교나 집회소에서 피난 생활이 장기화함에 따라 피난민을 위한 임시 주택을 건설하기로 하고, 응모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난민 전원이 가설 주택에 입주한다 해도 문제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한신 대지진 때의 경험을 살려 임시 주택에 입주한 피난민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치유해 주는 지원 태세를 갖추는 일도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러한 상황을 틈타 빈집을 터는 좀도둑도 늘고 있다. 홋카이도 경찰에 따르면, 한달 사이에 9건의 피해 신고가 있있다.

화산예지연락회에 따르면, 우스산의 이번 분화 형태는 지하수가 지하 용암에 저촉해 용암 파편 등이 분출하는 ‘용암 수증기 폭발’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스산 산정에서 용암이 직접 분출되는 대폭발이 일어나게 되면 사태는 매우 심각해진다.

화산예지연락회는 우스산이 분화 활동할 가능성을 세 가지 방향으로 예측한다. △소규모 수증기 폭발이 장소를 이전하면서 계속되거나 △우스산 산정 부근 화구(火口)에서 분화하거나 △새롭게 거대한 화구가 생겨 대량의 용암이 분출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우스산의 분화 상태가 어떤 방향으로 진전하든 이대로 분화 활동을 중단하리라고 내다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이번 분화는 메이지신산(明治新山)을 만들어낸 1910년의 분화와 닮은꼴이다. 메이지 분화 때는 분화가 산정에서 산록으로 퍼지면서 화구를 45개 만들어냈다.

이번에도 분화를 시작한 장소가 비슷하다. 그러나 그때와 달리 산 전체에서 분화가 벌어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산이 팽창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이에 따라 과거의 분화처럼 대폭발을 일으키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대폭발이 일어나면 지하의 용암이 지표에 흘러내리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난다. 그러면 우스산의 분화 활동도 장기화해 최후에는 용암 돔을 형성하게 된다. 즉 우스산 부근의 새로운 산들이 용암 돔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이번 분화도 용암 돔이 ‘헤이세이신산(平成新山)’을 만들 때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후지산, 현재로서는 분화 가능성 희박

일본 전국에는 우스산 외에도 감시를 필요로 하는 활화산이 86개나 있다. 30년 주기로 분화한다는 우스산이 예정보다 빨리 분화함에 따라 다른 화산들이 연쇄 분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기상청이 경계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전문가들이 우스산 다음으로 분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는 화산은 도쿄 남쪽에 있는 미야케지마(三宅島)이다. 미야케지마는 1983년 10월에 분화를 일으켰으나, 분화의 전조를 관측한 것은 겨우 1시간 반 전이었다. 기상청이 임시화산경보를 긴급히 발령했으나 간발의 차이로 시뻘건 용암이 산록 마을을 덮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미야케지마의 화산에 또다시 용암 압력이 가중되고 있고, 이에 따라 섬 전체가 팽창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야케지마의 분화 주기는 약 20년이지만, 이런 관측 데이터로 볼 때 분화가 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을 상징하는 후지산(富士山)이 분화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후지산이 최근에 분화한 것은 1707년이다. 분화 주기는 3백 년에서 5백 년으로 추정된다. 그런 점에서 후지산도 요시찰 대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후지산 지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주파 지진이 최근 20년간 해마다 10∼20 차례로 안정되고 있어, 현재로서는 분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말한다. 반면 후지산은 분화를 예지하기 어려운 형태의 화산이기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분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지진을 일으키는 활단층을 베개 삼아 자고 깨어난다는 일본인들에게 ‘화산 대폭발’이라는 또 다른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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