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장관, 우리가 남이가”
  •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 ()
  • 승인 2003.08.1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시, 국무장관 사임설에 ‘달래기’ 적극 나서…내년 대선 망칠까 봐 전전긍긍
내년 11월에 치러질 대선에서 재선을 확신하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의 예기치 못한 스트레스 요인은 경기 침체도 아니고, 지지부진한 이라크 전후 수습 문제도 아니다. 진원지는 그의 내각에서 가장 신임과 존경을 받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66). 난데없이 파월의 사임설이 흘러나온 것이다.

지난 8월4일 <워싱턴 포스트>가 ‘설령 내년 대선에서 부시가 재선되더라도 파월은 2기 내각에 참여하지 않고 사임할 것’이라고 보도한 이후 백악관은 파문을 진화하느라 정신이 없다. 부시 대통령이 보도가 나온 다음날 저녁 파월 부부를 텍사스 주 자신의 별장으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하며 ‘단합’을 과시했을 정도다.

부시 대통령이 이처럼 ‘파월 달래기’에 나선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파월 사임설이 기정사실화할 경우 내년 재선 가도에 적지 않게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파월 사임설이 나온 직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파월의 퇴장은 부시 행정부에 ‘상당한 손실’을 줄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파월 지지율은 부시 대통령보다도 18% 포인트나 더 높은 83%로 나타났다. 특히 공화당원 10명 중 9명이 그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민주당원들도 10명 중 8명이 그에게 호감을 보였다. 이런 파월의 사임설을 방치할 경우 부시는 전통적 취약 지지층인 흑인 유권자는 물론이고 파월을 보고 자신을 찍었던 수많은 중도파 유권자들마저 내년 대선에서 놓쳐버릴 가능성이 크다.

파월 사임설이 흘러나오자 공화당측이 전전긍긍하는 것과 반대로 민주당측은 대선과 관련해 호재를 만났다며 반기고 있다. 민주당은 파월 사임설이 확실하다면 부시 2기 내각은 더욱 우경화로 나아갈 것이고 그럴 경우 특히 대외 정책이 엉망진창이 될 수 있다며, 이를 내년 대선 유세에서 쟁점으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부시 대통령은 온건파의 상징 격인 파월을 자신의 보수 내각에 영입함으로써 그간 국내외에서 유형 무형의 반사 이익을 누려왔다. 우선 국내에서는, 보수·진보 모두에게 두루 인기가 있는 파월의 존재가 부시 행정부의 우경화 이미지를 희석하는 데 기여했다. 이를테면 흑인 등 소수 민족 차별 철폐와 고용 우대 등을 골자로 한 ‘차별 철폐 조처’와 관련해 부시 행정부가 최근 이의를 제기한 데 대해 파월은 오히려 이 법을 적극 옹호하고 나서 전통적 민주당 지지 세력인 흑인·남미·아시아 계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파월은 낙태 문제에서도 부시 행정부 입장과는 정반대인 찬성 쪽이다.

파월은 또 대외적으로 미국의 일방주의적인 외교 행태에 제동을 걸며 유엔을 통한 문제 해결을 주창해, 유럽과 아시아 우방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보수 일색인 부시 행정부가 급격한 우경화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브레이크를 밟은 주인공이 바로 파월이다. 그런 맥락에서 파월은 주요 외교 현안과 관련해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같은 보수 강경파가 득세해온 부시의 외교 안보팀과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 그로 인한 불협화음 때문에 종종 사임설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곤 했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타임>은 ‘정치 분석가들은 이번에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공화당 우익 일각에서 파월 사임설을 의도적으로 퍼뜨렸다’고 분석했다. 특히 올해 들어 국무부 무용론을 주장하며 파월에게 공격을 펴온 뉴트 깅리치 전 하원 의장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체니 부통령을 정점으로 한 이른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에게 포위된 형국임에도 불구하고 파월이 건재할 수 있었던 데는 누구보다 그의 ‘존재 가치’를 높이 평가해온 부시 대통령의 힘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존스 홉킨스 대학 국제대학원 마이클 만델바움 교수는 “파월이 우아하게 은퇴하는 것조차 부시 행정부에 결코 득이 될 것이 없다. 파월의 높은 인지도와 지지도를 감안할 때 부시 대통령은 어떤 수를 쓰더라도 그의 사임을 막으려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자신의 사임설이 나올 때마다 ‘대통령의 뜻에 따라 봉사할 뿐’이라는 말 외에 일절 말을 아껴온 파월은 진작부터 부시 1기 내각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날 결심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