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에 열받고, 시장에 질리고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5.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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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시 직영 온천 폐쇄로 6개월째 혼란…중앙 부처는 뒷짐만
경상도와 서울을 잇는 ‘영남대로’의 주요 길목 경북 문경. 문경은 예로부터 산세가 높고 험하기로 유명했다. 과거 급제의 꿈을 품고 한양을 향하던 영남 선비들이 애를 먹던 곳이기도 했다. 얼마나 넘기가 고단했으면 새도 쉬어가는 고개, ‘문경 새재(聞慶 鳥嶺)’라고 했을까.

조용한 산골 마을 문경 새재가 최근 세간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문경시장이 시가 운영해온 온천을 폐쇄하기로 하면서부터다.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시장이 자신의 온천을 살리기 위해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시장은 지역 주민들이 자기들과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고 하소연한다. 과연 문경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문경 새재를 넘었다.

박인원 문경시장(67)은 문경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문경을 떠난 그는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상경했다. 박시장은 “군 복무중에 부친상을 당해 이것저것 안한 일이 없다. 명절날 하루도 쉬지 않고 돈을 모았다”라고 말했다. 자그마한 공장을 운영하던 박시장은 1986년 전력 자재 기업인 제룡산업을 설립했다. 제룡산업은 변압기와 송·배전용 용품 등을 주로 한국전력에 납품하는 기업이다.시장이 운영하는 온천만 남아

1997년 제룡산업이 코스닥에 상장되면서 박씨는 막대한 부를 쌓았다. 2002년 6·13 지방 선거에 출마하면서 박씨가 신고한 재산은 1백58억4천2백만원. 당시 출마한 단체장 후보 가운데 이명박 서울시장(1백75억3천4백여 만원)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박씨의 한 해 납세액만도 5억7천8백50만원에 달했다.

사업이 성공 가도에 들어서자 그는 눈을 고향으로 돌렸다. 문경 출신 공무원들을 모아 고향 돕기 활동을 펼쳤고, 재경문경향우회장과 문경시발전협의회장을 맡았다. 2001년에는 문경온천과 200여m 떨어진 온천지구에 문경종합온천을 열었고 문경관광호텔을 개업했다. 당시 문경에서는 자수성가한 사업가가 고향에 봉사한다며 그를 칭송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 활동을 기반으로 2002년 지방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시장에 당선되었다.

문경시장에 당선된 뒤에도 박시장은 미담 사례에 등장하는 단골 손님이었다. 사재를 털어 문경 출신 학생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는 문경학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역 노인들을 위해 요양원을 건립하겠다는 약속이 중앙 언론에 자주 소개되었다.

시장의 정력적인 행정에 대한 평가도 좋았다. 문경시는 경상북도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명상 웰빙 타운’을 유치했다. 시가 문경관광개발을 설립하자 시민들은 종자돈 81억원을 모아 주었다. 문경 전체 시민 가운데 25%가 참여했다. 지난 12월 중부내륙고속도로 개통으로 문경은 서울에서 1시간30분 거리로 가까워지면서 외지인의 발길이 잦아지고 땅값도 덩달아 뛰었다. 문경은 경북의 다른 지역을 멀찌감치 제치고 성장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시민과 시장이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문경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불협화음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6월 말, 문경시립치매병원 부지가 문경온천 부지로 변경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부터였다. 애초 문경시는 문경읍 평천리에 있는 시유지에 시립치매요양병원을 설립하기로 했다. 지난해 3월 보건복지부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5월 사업비 전액을 지원받기로 했다. 그런데 문경시는 6월 갑자기 시립치매병원 터를 시가 직영하고 있는 문경온천 부지로 변경해 온천을 폐쇄한다는 것이었다.

문경온천은 1996년 28억5천여만원이 투입되어 건립되었다. 이후 1996년 1억3천만원, 1997년 7억8천만원, 1998년 7억3천만원 등 2001년까지 31억여원 흑자를 내 ‘관광 문경’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지자체 사업의 모범 사례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2001년 문경온천과 200여m 떨어진 온천지구에 박씨가 총자본금 1백25억원을 들여 세운 문경종합온천이 들어서면서 이용객이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문경온천은 2003년에 처음으로 4천4백여만원 적자를 냈다. 박시장은 “적자가 뻔한 시 온천을 빨리 정리하는 게 시민의 부담을 줄이는 일이다. 담당자들이 병원 최고 적격지로 온천 부지를 선정했다”라고 말했다. 온천 폐쇄 반대한 이장 해촉되자 분노 확산

하지만 시민들의 사랑을 받던 시 온천이 폐쇄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시민들은 박시장 소유의 온천을 살리기 위해 시 직영 온천을 닫았다고 의심한다. 문경에서 자재상을 하는 김순자씨는 “관광 개발을 위해 온천을 지어야 할 판에 온천을 없애고 있다. 온천지구에 시장이 운영하는 온천 하나만 남는다는 것은 누가 봐도 독점 아니냐”라고 말했다. 온천 폐지를 반대하는 시민들은 온천수 사용료, 감가상각비 등 불합리한 공제 액수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적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박시장이 당선된 후 문경온천을 방치해 문을 닫을 준비를 했다고 주장한다. 문경온천은 지난해 늘 하수구가 막혀 있고, 수도꼭지는 빠져 있었으며, 히터나 에어컨을 틀지 않을 정도로 관리가 엉망이었다고 한다.

문경시 행정이 불신을 사면서 문제는 더 꼬이기 시작했다. 박인원 시장은 지난 9월 지역 시민단체들과 간담회를 갖고 온천 구매자가 있으면 시 온천장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시민단체에서 계약금까지 지참한 구매자를 대동하고 시장실을 방문하자, 시장은 면담 요청을 거절했다. 박시장은 “다섯 번 공고를 냈지만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공사하려고 진행하는데 사겠다는 사람을 데려온 것은 방해할 목적이 분명했다”라고 말했다.

이후 양측은 더욱 가파르게 대치했다. 지역 5개 시민단체는 문경온천살리기공동대책위(공대위)를 설립하고 공동대표 김윤기·김석태·박인국 씨가 지난 12월16일부터 12월31일까지 단식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공대위는 문경시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소했다.

공대위 관계자들은 시 온천을 폐쇄하면서도 문경종합온천을 광고하는 박시장의 이중적인 태도에 더욱 분개했다. 문경시 홍보전단지에는 박시장 소유의 문경종합온천이 문경을 대표하는 명소로 소개되어 있다. 심지어 문경시청 공무원 명함 뒷면에까지 문경종합온천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문경시는 지난 4월 1억4천여만원을 들여 마성면 소야교에 대형 홍보판을 세우고 8천여만원을 들여 서울 지하철 1호선 전동차 내부 등에 광고를 하고 있다. 공대위 김석태 대표는 “문경종합온천을 위한 시의 광고액만도 10억원이 넘는다. 시장 소유의 온천을 홍보하기 위해 시 예산을 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시장은 “문경온천을 없애는 게 아니다. 노인병원과 기능성 온천으로 리모델링해 관광객을 유치하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시장의 행보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 문경시청의 한 공무원은 “온천을 다시 만드는 것은 온천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공직 사회에서는 박시장을 이해하는 분위기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온천 폐쇄 반대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임기가 1년이나 남은 이장을 해촉하자, 민심은 시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노인병원 안에 있는 기능성 온천을 관광객이 꺼릴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비판한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한 데는 시장을 견제해야 할 시의회와 지방 언론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시의원 13명 가운데 건설업 종사자가 7명이고, 이들이 경영하는 건설회사 상당수는 시와 수의 계약을 맺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 지방 신문 기자는 박시장의 온천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박시장 영향력 법조계까지 뻗쳐”

박시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박시장의 영향력이 판검사에게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박시장은 2년6개월을 재임하면서 2년6개월째 재판에 매달려 있다. 지방 선거 과정에서 박시장은 무료 온천욕을 제공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1심에서 벌금 80만원, 2심에서는 벌금 90만원을 선고 받았다. 선거법상 당선 무효에 해당되는 100만원보다 10만원이 적은 액수다.

지난 총선에서는 무소속 신국환 후보와 함께 모범운전자회 회원들을 만나 곤욕을 치렀다. 신국환 의원은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는데, 박시장은 불기소 처분되었다. 선관위는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리자 대구고법에 재정신청을 냈다. 대구고법은 재정신청을 기각했다. 문경시 선관위는 “판사인 문경시선관위 위원장이 고심 끝에 재정신청을 했는데도, 같은 판사가 법 해석을 이렇게 다르게 할 줄 몰랐다”라고 말했다. 문경의 한 공무원은 “지역 사회에서는 다 인연이 깊어 서울에서는 통하지 않는 일이 통용되기도 한다. 박시장은 이런 관계를 잘 이용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시민들은 박시장이 이전에 보여준 선행도 정치를 하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경시청의 한 공무원은 “시민들은 문경학사 학생 선발도 지역 유지들에 대한 로비 차원이라고 폄하한다. 시장이 짓겠다는 노인요양원도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라고 말했다. 문경시장에서 만난 신 아무개씨는 “시장이 되어 시 행정을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 방향으로 몰아 가고 있다. 은행을 털기 위해 은행에 들어간 도둑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안타까운 것은 자치단체장과 지역 주민들이 6개월이 넘게 싸우고 있지만 중앙 부처에서는 뒷짐만 지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자치부 담당자는 “시민들이 제출한 건축금지가처분신청 재판을 지켜본 뒤 검토하겠다. 지자체의 행위가 위법인지 아닌지를 다룰 뿐 행자부에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행자부가 간단한 결정만 내리면 조정될 수 있는 문제다”라고 말하자 “참고하겠다”라고 답했다.

지난 1월14일 공대위 대표들은 행정자치부·감사원·부패방지위원회에 다시 진정서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시민 1만2천명의 서명이 담겨 있었다. 1월18일에는 주민 1천여 명이 시청 앞에 모여 ‘시민 온천 폐쇄 반대 및 탐욕 시장 규탄’ 궐기대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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