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둘러싼 ‘2개의 함정’
  • 최재천 (변호사·법무법인 한강 대표) ()
  • 승인 2003.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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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고 평등의 원리에 기초해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는 우리의 헌법 정신에 비추어,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밝힌 차별금지법 제정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헌법·인권위원회법·근로기준법 등에 차별 금지가 충분히 구현되어 있는데도 실천으로 옮기지 않은 우리의 법의식부터 서로가 비판해야 한다.


헌법은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선언해 놓았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 행위라 함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性)적 지향 △병력 등을 이유로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하여 어떠한 형태의 차별도 금하고 있다.



법 규정보다 실천 여부가 중요



그런데도 불합리한 차별은 존재했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전 상황이 말해 주듯이 법을 새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실천 여부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현장에서 어떤 기준으로 차별 여부를 판단하고 개선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토론과 합의이다.



차별 금지는 헌법상 평등권에서 출발한다. 이때의 평등은 절대적 평등이 아니라 합리적 근거가 없는 차별 금지, 즉 상대적 평등을 말한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합리적 차별이고 어느 것이 불합리한 차별인지 구별되어야 한다. 법학자들은 △인간의 존엄성 존중이라는 헌법의 최고 원리 △정당한 입법 목적 달성 △수단의 적정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자고 한다. 하지만 이 얼마나 모호한 이야기인가. 어쨌든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하면 합리적 차별이고 그렇지 못하면 자의적 차별이라는 것이다. 차별 대상을 나열해 법에 규정하기는 쉽지만 구체적 영역에서 이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문제는 판단과 실천인 것이다.



최근 부시 행정부는 대학 입시에서 유색 인종 학생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소수계 우대제도’에 대해 백인 차별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3월, 미국의 한 하급 법원에서는 장교 승진 과정에 인종과 성을 고려토록 한 정책이 백인과 남성들을 역차별한 것이라는 판결도 있었다.
우리의 사례를 살펴보자. 얼마 전에는 산업 재해로 인해 생긴 얼굴 흉터에 대해 여성이 남성보다 4배 넘게 보상받아 온 차별을 해소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사회적 관습을 감안한 합리적 차별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한국남성협의회라는 단체가 여성부 설치 근거가 된 정부조직법이 위헌이라는 헌법 소원을 낸 일이다.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심화하고 모자보건법과 모성보호법 등 여성을 위한 법은 존재하나 남성을 위한 특별법은 한 가지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이 단체의 문제 의식이다.
평등과 차별 금지를 극단으로까지 밀고 가다 보면 차별금지법은 2개의 함정에 빠질수 있다. 그 하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헌정 체제를 부인할 위험성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약자·소수자를 지나치게 보호하려다 뜻하지 않은 역차별을 만들어낼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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