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터져나온 6월의 오열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2.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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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족들, 증언대회 열고 명예 회복 나서



지역과 이념과 세대를 넘어 민족 대화합의 꽃을 피웠다고 평가되는 월드컵 응원 열기의 뒤안에서 진정한 민족 화합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전쟁 전후에 무고한 가족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유족들이다. 주로 미군 폭격이나 군경·우익단체에 의해 마을 단위로 집단 학살당한 비무장 민간인의 숫자는 줄잡아 100만명. 물론 전쟁의 와중에 북한 인민군과 좌익도 곳곳에서 보복 학살극을 벌였다.


이들 유족에게 한국전쟁은 잊으려고 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전쟁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한국전쟁 52주기를 맞아 피학살자 유족들은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아물지 않은 상처를 치유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한국전쟁 때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의 피해 유족 대표들은 7월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 모여 ‘민간인 학살 증언대회’를 열었다. 흩어진 유족들을 모으는 작업은 2000년 초에 결성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범국민위·상임대표 김동춘 교수·이해동 목사)가 맡았다.


유족 대표인 문경양민학살사건유족회 채의진 회장은 “지난 50여 년간 역대 정권으로부터 수모만 당하면서 생존 유족들은 슬픔과 분노, 절망과 저주로 얼룩진 통한의 몸부림을 쳐왔다”라고 절규했다. 범국민위 김동춘 대표는 한국전쟁 때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들이 전국 단위로 모여 비슷한 고통을 나누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앞으로 지방을 순회하며 증언대회를 계속 열겠다고 밝혔다. 가공할 국가 폭력을 역사적으로 정리하지 않고 민족의 단합과 미래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41쪽 인터뷰 참조).





이번 유족 증언대회에 앞서 전국의 피해 유족과 인권·사회 단체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통합특별법안을 만들어 여야 의원 47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했다. 현재 이 법안은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다.
범국민위는 한국전쟁 때 전국 40여개 지역에서 민간인 100만여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민간인 집단 학살은 주로 개전 초기에 후퇴하던 군경에 의해 앞으로 인민군이 진주하면 그들을 이롭게 할지도 모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국 곳곳에서 자행되었다. 이른바 보도연맹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학살은, 개전 3개월 동안 군경이 후퇴하는 경로를 따라 경기도 여주·수원 이남에서부터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져, 그 상처를 입지 않은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음으로 희생자가 많이 난 것은 전선이 북상한 1950년 말부터 1953년 휴전에 이르기까지 후방 산악 곳곳에 은거하던 빨치산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국군 11사단(사단장 최덕신)이 공적을 부풀리기 위해 인근 자연 부락의 무고한 주민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이다. 나머지는 노근리 피난민처럼 전국 곳곳에서 미군기의 폭격과 기총소사에 살해된 경우이다.


4·19 직후 진상 규명 노력 5·16으로 무산


지난 52년 동안 상처를 치유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0년 4·19 혁명 직후 국회가 진상규명 특위를 구성해 전국 각지의 학살 현장을 답사해 진상 조사를 한 후 특별조치법을 제정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당시 국회는 15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전국 42개 지역에서 무고한 민간인 9천여명이 군과 경찰, 우익단체에 처참하게 희생된 것을 밝혀냈다.


그러나 이듬해 발생한 5·16 군사 쿠데타는 이런 상처 치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국회 조사에 협조했던 전국 각지의 유족 대표는 이른바 혁명포고령 위반죄로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이후 계속된 군사 정권 아래서 침묵을 강요당하며 곪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유족들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다시 일어섰다.


경남 거창, 경북 문경, 전남 함평, 제주도 등 일부 지역에서 유족회가 결성되고, 그동안 이 문제에 침묵하던 언론도 정부가 나서서 화해의 손길을 내밀라고 촉구했다. 특히 1999년 미국 AP통신이 노근리 사건을 보도하면서 한국전쟁 때의 양민 학살 문제가 국제적인 관심사로 떠오르자 정부는 노근리를 포함한 미군 학살 사건만이 아니라 군경이 저지른 양민 학살에 대해서도 해원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신고를 접수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실태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부는 현장 조사를 마치고도 아직까지 그 결과를 함구하고 있다.


결국 정부에 실망한 피학살자 유족들이 인권·시민 단체와 연대해 국민을 상대로 직접 이 문제 해결을 호소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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