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욕이 낳은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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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2.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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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증면, 조·석간 발행으로 ‘빚더미’에 앉아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일보>는 장안의 지가를 올리던 신문이었다. 1984년까지 신문업계 매출 1위였고, 그 이후에는 조간 시장에서 <조선일보>와 발행 부수 1위를 다투었다. 그러던 <한국일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1990년대부터다.




<한국일보>는 1990년 최초로 24면으로 증면했고 1991년에는 전국 동시 인쇄와 조·석간 동시 발행에 들어갔다. 이런 체제를 갖추기 위해 막대한 빚을 얻었다. 하지만 의욕적인 투자는 매출로 이어지지 않았고 빚을 갚기가 어려워졌다. <한국일보>의 한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신문 시장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지 않고 신문을 찍어냈다. 독자도 광고도 안 붙으니까 결국 돈만 낭비한 셈이다”라고 회고했다. 당시 사장이 장재국씨이다.



구석에 몰린 <한국일보>가 결정타를 맞은 것은 1994년 <동아일보> <중앙일보>가 조간으로 전환하면서부터다. 특히 <중앙일보>가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으며 시장을 잠식했다. 그렇지만 출혈 경영으로 발목을 잡힌 <한국일보>는 다른 신문의 공격적인 경영을 구경만 하고 있어야 했다. <한국일보>의 경영은 점점 악화했다.


1991년 1천2백86억원에 불과했던 부채는 1999년 5천5백90억원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에 매출은 2배 가량 늘어나는 데 그쳤으나 부채는 4.3배나 증가했다. 또 1998년 한 해 <한국일보>가 채권단에 이자로 지급한 금액은 모두 6백86억원에 달한다. 이런 상태이니 흑자가 날 리 없다. <한국일보>는 2000년에는 4백40억원 적자를 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주들은 도덕적 해이를 보였다. <한국일보>는 지난해 세무 조사 결과 사주 가족들의 해외 여행 경비를 회사 돈으로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언론 노조는 대주주들이 회사돈 2백29억원을 가지급금 형태로 빼돌렸다고 장씨 일가를 검찰에 고발했다.



그렇지만 최근 <한국일보>는 바닥을 치고 회복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선 부동산이나 유가 증권을 매각해 부채를 4천억원대로 줄였다. 단기 차입금도 상당 부분 상환했다. 또 전체 부채 가운데 1천5백억원은 고정 부채여서 상환 부담이 적은 데다, 채권단에 맡겨둔 담보 채권도 1천7백억원에 이르러 이것이 매각될 경우 부채 규모는 천억원대로 떨어진다. 경기가 바닥을 쳐 광고 시장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장재구 신임 회장이 이런 호기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한국일보>의 운명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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