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인삼' 가시오갈피 죽이기 내막
  • 차형석 기자 (papapipi@e-sisa.co.kr)
  • 승인 2001.11.1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효능, 인삼 '버금'…한국 멸종 위기, 러 · 중 '승승장구'
"한마디로 멸종 위기다." 10여년 동안 줄곧 가시오갈피를 연구해온 조선행 교수(50·공주교대)는 야생 가시오갈피가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고 말했다. 가시오갈피는 뿌리를 약재로 사용하는 목본 식물로 인삼과 함께 오가과에 속한다. 따지자면 인삼과 사촌지간인 셈이다. 가시오갈피가 멸종 위기에까지 처하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1970년대 냉전 시기 소련과 한국 사이에서 은밀히 벌어진 '가시오갈피 대 인삼 전쟁' 때문이다.


한국 인삼·소련 오갈피 70년대에 '은밀한 전쟁'




1970년대부터 소련은 가시오갈피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시베리아 툰드라 지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천연 가시오갈피를 '대용 인삼'으로 수출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노력이 결실한 때는 1976년. 소련 과학자들은 성분 비교 분석을 통해 '가시오갈피가 인삼보다 뛰어난 효능을 보인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소련은 이를 근거로 가시오갈피에 '시베리아 인삼'이라는 이름을 붙여 국제 시장에 내다 팔았다.


이 연구 결과에 당황한 것은 인삼 수출을 외화벌이 사업으로 적극 추진한 전매청이었다. 1977년 전매청은 미국에서 가시오갈피를 구입해 약학 연구진에 연구 용역을 주었다. 성분 비교와 실험을 통해 얻은 결론은 가시오갈피의 효능이 인삼 못지 않다는 것이었다. 연구 결과가 소련 학자들의 견해와 비슷하게 나오자 이 연구 논문은 철저하게 전매청 내부 문서로 보관되고 일반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시베리아 인삼의 공세에 전매청이 세운 전략은 '논문 조작'이었다. 사장된 채 밀실에 감추어졌던 이 연구 논문은 1978년 9월 서울에서 열린 2차 국제 인삼 심포지엄에서 발표되었다. 연구 결과는 연구진도 모르게 엉뚱하게 둔갑되었다. 정부가 일부 수치를 바꾸고 가시오갈피에 관한 부분은 삭제해 '가시오갈피의 효능이 인삼에 맞먹는다'는 논문의 결론을 '인삼의 효능이 탁월하다'로 탈바꿈시켜 이 논문을 인삼의 우수성을 알리는 근거로 활용한 것이다.




이처럼 가시오갈피 연구가 '찬밥 대접'을 받게 되자 학자들도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정부는 인삼이 잘 나가는 마당에 굳이 가시오갈피를 키울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가시오갈피도 심마니들이 남획해 결국 멸종 위기를 맞게 되었다.


1970년대 냉전 시기에 벌어진 가시오갈피 대 인삼 전쟁에서 가시오갈피는 힘도 써보지 못하고 완패했다. 현재 국제 가시오갈피 시장은 러시아·중국산이 석권하고 있다. 그런데 부전승을 거둔 인삼의 현주소도 초라하기는 매한가지다. 한국 인삼은 국제 시장에서 중국산 인삼과 미국·캐나다에서 대량 재배되는 인삼(하기삼)에 밀린 지 이미 오래다. 세계 인삼의 80%가 모이는 홍콩 시장에서 2000년에 한국 인삼이 차지한 비중은 고작 3.4%이다. 인삼 종주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한국인삼공사의 해외팀 관계자는 "내수 시장도 값싼 중국산 인삼에 밀려 일부 인삼농들이 인삼 재배를 위해 중국으로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가시오갈피를 처음 소개했던 한덕룡 박사(75)는 "한국은 오갈피를 키우기 좋은 복지(福地)다. 오갈피를 국가 자원화하자고 주장했으나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라고 탄식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