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 곡성 '잠자리 전쟁' 내막
  • 나권일 광주 주재 기자 (nafree@e-sisa.co.kr)
  • 승인 2001.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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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촌 싸움이 '생 잠자리' 잡네/꼬마잠자리 연고권 쟁탈전
잠자리가 귀빈이다. 희귀종 꼬마잠자리가 서식하는 전남 곡성군(군수 고현석)은 흥겨운 잔치를 열고 ‘잠자리'라는 이름의 상표 등록까지 마쳤다. 구례군(군수 전경태)은 잠자리를 대량 사육해 환경 농업에 적극 활용키로 하고 ‘자미'(jami)라는 잠자리 캐릭터를 개발해 홍보물에 활용하고 있다. 극심한 환경 오염으로 사라졌던 잠자리가 곡성과 구례에서 부활하자 두 자치단체는 주도권을 잡으려고 미묘한 신경전까지 벌이고 있다.




구례군이 개발한 잠자리 캐릭터 '지미'(위 왼쪽)와 구례군에서 발견된 희귀종 꼬마잠자리(위 오른쪽).


잠자리에 먼저 주목한 쪽은 곡성이었다. 곡성의 환경운동가들은 국내에서 서식하는 잠자리 100여종 가운데 몸길이가 15mm 정도이고 날개가 아름다워 희귀종으로 분류된 꼬마잠자리를 1998년 습지에서 처음 발견했다. 이듬해 11월 민간 환경단체인 ‘환경을 생각하는 꼬마잠자리 보존회'를 결성했다. 민간단체들은 지난 8월8∼12일 석곡면 보성강변에서 ‘2001 곡성 잠자리 축제'를 열었다. 곤충학회 학자들과 잠자리를 취재한 다큐멘터리 제작진까지 초빙해 생태체험학교를 운영하자 관광객이 7만명이나 몰려들었다.


꼬마잠자리보존회는 내친 김에 특허청에 ‘잠자리'라는 이름을 상표로 등록했다. 잠자리라는 이미지를 농산물 상품 브랜드로 활용해 부가 가치를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박정수 꼬마잠자리보존회장은 "곡성은 전국에서 제일가는 잠자리 학술 탐구 지역이자 생태 교육의 보고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민간단체의 활동에 자극 받은 곡성군은 폐교된 초등학교 분교를 수리해 15만평에 이르는 섬진강 자연 습지 주변을 배경으로 하는 잠자리 생태 학교를 운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곡성, ‘잠자리' 상표 등록…구례, ‘자미' 캐릭터 개발


곡성의 잠자리 열풍을 민간단체가 주도하고 있는 데 반해 구례군은 지난해부터 군청이 운영하는 농업기술센터가 직접 잠자리를 채집하고 사육해 연구하고 있다.


산란을 위해 1시간에 모기 8백여 마리를 잡아먹을 정도로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잠자리를 이용해 벼멸구를 방제하겠다는 것이다.




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번데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성충이 되는 잠자리는 하루살이·모기·파리유충 뿐만 아니라 올챙이까지 잡아먹는다. 논물에 가두어 놓으면 벼멸구를 효과적으로 처치하는 ‘잠자리 농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잠자리를 시험 사육해 연구하고 있는 오치경씨는 "잠자리는 풍요의 상징이다. 잠자리가 많으면 풍년이 온다는 옛말이 틀린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구례농업기술센터는 농법 활용에 그치지 않고 인공 습지 천여평에 잠자리 학습원을 조성하고 잠자리 생태학습원도 만들어 초등학생들이 잠자리의 일생을 공부할 교육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구례군은 캐릭터 개발까지 마쳤다. 잠자리(잠)를 쌀농업(米)에 이용한다는 의미로 ‘자미'(Jami)라 이름짓고, 노고단 야생화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차용해 ‘야미'(Yami)를 만들어 두 가지 캐릭터에 대한 의장 등록을 마쳤다.


구례군이 이처럼 곡성보다 먼저 잠자리 학습장을 만들고 캐릭터까지 개발하자 곡성 꼬마잠자리보존회가 반발했다. 구례가 인공적으로 잠자리를 사육해 억지 이미지를 만들려 한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러자 구례는 곡성 잠자리 축제가 1회성 행사일 뿐이라고 응수했다.


타협과 협상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구례군농업기술센터 박종산 소장은 "우리는 친환경 농업과 해충 박멸로, 곡성은 축제로 특화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이미 함평군이 나비를, 무주군이 반딧불이를 자기 고장을 홍보하는 브랜드로 키워내는 데 성공한 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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