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전교조 사태 일어나나
  • 부산·창원 박병출 부산 주재기자 ()
  • 승인 200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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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련 지도부 검거령에 공무원 조직 '술렁'…
"노조 설립 허용하라"


부산 사하구청에 근무하는 이용한씨(44·7급)는 10여일째 부산 남천성당 잔디밭에서 이슬을 맞으며 잠든다. 한뎃잠을 얼마나 더 자야 할지 기약도 없다. 경남도청에 근무하는 김영길씨(43·6급)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창원 사파성당 주차장 모서리에 쳐놓은 천막을 잠자리로 삼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7월11일부터 경찰의 검거를 피해 성당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씨는 부산공무원직장협의회연합(부공련) 위원장을, 김씨는 경남의 같은 단체인 경공련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검찰은 최근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연합(전공련) 차봉천 위원장(55·국회 사무처·6급)과 고광식 사무총장(42·인천 부평구·7급), 이용한 부공련 위원장, 김영길 경공련 위원장 등 4명에 대해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을 어기고 지난 6월9일 창원에서 전국공무원대회를 연 혐의이다.


그러나 지도부에 대한 검거령이 떨어지자 '공무원 민심'이 끓어오르고 있다. 이용한 부공련 위원장을 검거하기 위해 경찰 병력 50명이 출동한 7월11일, 부산 남천성당에는 공무원 수백 명이 집결해 경찰과 대치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낮에는 40∼50명, 밤에는 15명의 '사수대'를 조직해 이위원장을 지키고 있다.


휴가를 내고 농성장을 격려 방문하는 공무원도 하루 2백명에 달한다. 창원 사파성당 역시 경남 전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지도부 4명 무기한 농성…'PK 차별론'도 나돌아


행정자치부는 전국공무원대회가 열리기 전부터 이 행사를 불법으로 간주해 참석자를 중징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도 전국에서 2만명 가까운 공무원이 모여들어 '노동 기본권 보장'과 '공무원 노조 설립 허용'을 외쳤다. 지도부가 '작정하고' 불법 집단 행동을 저지른 이유는 공무원 관련법이 '공무원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 요구를 막기 위해 제정된 악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용한 부공련 위원장은 "전국공무원대회는 경찰에 집회 신고를 내고 퇴근 시간 이후에 가진 합법적인 모임이었다. 단지 집단 행동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 대상이 된다면, 동료끼리 만든 등산회는 왜 처벌하지 않는가"라고 항변했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성토도 쏟아지고 있다. 부산 연제구의 경우, 동사무소 한 곳당 15명 선이던 근무 인력이, 일부 기능이 구청으로 이관된 지난해 10월 이후 10명 선으로 줄었다. 일부 동사무소는 업무용 트럭을 자동 변속기 차량으로 교체했다. 운전기사 노릇까지 겸해야 하는 남자 공무원들이 항의하자, 여직원들도 운전을 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의약분업 파동 때 관내 병·의원을 할당받아 파업 만류에 나섰다. 전문가인 의사들이 우리에게 설득될 리도 없지만, 자택으로 찾아가면 '사모님'까지 나서서 오히려 우리를 꾸짖었다. 비참했다." 역시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박 아무개씨(31)의 경험담이다. 그는 관내 기업체가 파업에 들어가면 노동자들과 면담하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제출하라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정부와 지자체는 갈팡질팡하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형사 고발한 지도부 4명과 강인태 경공련 사무국장에게 공직배제(파면) 처분을 내리도록 각 시도에 지시했지만, 해당 자치단체는 이를 따르지 않고 있다. 경남의 경우, 김혁규 도지사는 지난 7월9일 "창원 집회는 법을 위반한 것이지만 공무원들의 단결권을 요구한 행사이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라고 말하며 처벌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영길 경공련 위원장이 낸 휴가(연가) 신청을 무시하고 7월11일 이후 계속 무단 결근으로 처리 중인 실무 부서가 7월23일 인사위원회에 징계안을 상정한다는 설이 나도는 등 위아래가 손발이 맞지 않고 있다.


같은 공무원 신분으로 체포 영장을 집행해야 할 경찰의 처지도 어정쩡하다. 김위원장은 7월18일 오전 대치 중인 경찰관들에게 3일 후에 자진 출두하겠다면서 근무지 복귀를 허용해 달라고 제의했다. 경찰은 김위원장에게 성당을 나서는 즉시 체포한다는 방침을 통보하고 주위에 2개 중대 병력을 배치해 '탈출'을 막았지만, 적극 체포할 의지를 보이지는 않았다.


체포 영장이 발부된 전공련 지도부 4명은 모두 각 지역 성당에서 농성 중이다. 차봉천 위원장은 7월9일 맨 먼저 명동성당에 들어가 단병호 민주노총위원장의 체포 영장 철회 요구 농성에 합류했다. 고광식 사무총장은 인천 산곡성당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중징계 대상자 5명 중 3명이 영남 지역 공무원인 데다, 전국 지도부가 아닌 강인태 경공련 사무국장까지 포함되었다는 점을 들어 'PK(부산·경남) 차별론'이 나도는 등 하위직 공직 사회의 분위기는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이들은 7월28일 부산역 광장에서 한 차례 집회를 가진 뒤 뜻이 관철될 때까지 전국을 돌며 대규모 공무원 대회를 계속하기로 했다. 공무원 노조 설립 문제는 이제 제2의 전교조 사태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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