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피땀 긁어 '아방궁' 짓네
  • 박병출 부산주재기자 ()
  • 승인 2001.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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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 지자체들,
거창한 청사 건설에 '일로매진'…공무원 1인당 15평 쓰기도


부산 지역에서는 지난 3개월 동안 도·소매업 분야에서만 신규 실업자가 1만8천명이나 발생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전국 최악의 경제 상황'을 강조해 온 부산·경남 지역 자치단체들이 저마다 경쟁적으로 청사 신축에 나섰다. 하나같이 건물 전면을 통유리로 덮고 바닥에는 카펫을 까는 등 규모나 치장이 도를 넘었다.




경남 진주시는 지난 3월 말 새 청사를 준공해 집들이가 한창이다. 지하 3층 지상 10층 연건평 27,025㎡. 진주 지역 단일 건물 중 최대 규모이다. 행정동과 의회동이 길게 연결되어 있고, 국회의사당과 같은 돔형의 의회 지붕을 왕관 형태 장식이 둘러싸고 있다. '의기 논개'에 얽힌 사연으로 유명한 진주성을 본떠 지어 '장중함'이 바라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진주시는 경남에서도 청사 재건립이 시급한 자치단체로 꼽혀 왔다. 1995년 진양군과 도·농 통합 이후 청사가 종전의 시청과 군청으로 나뉘어 있는 데다, 둘 다 지은 지 40년이 넘어 비가 새는 노후 건물이었다. 문제는 신청사가 합당한 계획에 따라 지어졌느냐 하는 점이다.


진주시가 1996년 5월 시의회에 신청사 건립계획을 처음 보고할 때 3백40억원이던 공사비는 다섯 달 후 재정계획 설명회 때는 5백33억원으로 늘어났다. 1997년 5월 다시 6백87억4천여 만원으로 껑충 뛴 공사비는 외환 파동을 겪을 무렵인 10월에는 5백91억8천만원으로 줄었다. 그러나 진주시는 결국 청사 건립에 6백84억원을 썼다. 여러 차례 예상액 중에서 가장 높게 잡았던 금액과 일치한다.


신청사가 유발한 교통 불편, 시민에게 떠넘겨




청사가 너무 크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진주시 관계자는 인구 증가율·공무원 수·행정 수요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관계자는 전용 공간이 1인당 13㎡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라며 진주시 청사는 오히려 좁은 편이라고 강조했다.


진주시는 당초 준공 시점의 인구를 50만명으로 잡고 신청사 규모를 산정했다. 청사가 준공된 지난 3월 현재 인구는 34만2천명에 머물러 있지만, 건축 규모는 당초 계획 그대로다. 더구나 시민의 편익을 위해 추진해야 할 청사 신축이 오히려 민원을 부르기까지 했다.


진주시의 새 청사는 도동 자유시장과 2차로 도로 하나 사이로 붙어 있다. 점포 수보다 훨씬 많은 노점상이 수십 년간 길에 좌판을 벌이고 장사를 해 왔지만 재래 시장이다 보니 단속이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청사 준공을 앞두고 시청 주변 환경 정비에 나선 진주시는 주변 거리에서 노점상을 완전히 쓸어냈다. 시장 한 귀퉁이에 간이 천막을 설치해 일부 노점상을 수용했지만, 원래 숫자에 턱없이 못 미친다.


주물공장에 다니다 IMF 이후 실직해 도동 시장 주변에서 바나나를 팔아 왔다는 김 아무개씨(46·진주시 상대동)는 "노점상의 절반 이상이 장사를 그만두거나 다른 곳으로 쫓겨 갔다"라고 말했다.


시장을 이용하는 주민들도 불만이 많다. 진주시가 시장 앞에 설치했던 노상 주차장을 폐쇄하는 바람에 먼 곳에 차를 두고 짐을 날라야 하는 탓이다. 신청사가 유발한 교통 문제를 시민들에게 떠넘기는 방법으로 해결한 것이다.


진주시 공무원들이 청사의 '표준형'이라고 제시한 부산시 청사는 1997년 말 준공했다. 약 7만㎡의 드넓은 부지 위에 시의회(7층)와 경찰청(16층), 28층 높이 시청 등 연건평 15만7천여 ㎡에 달한다. 청사 앞 뒤에 광장 여러 개와 옥외 공연장을 설치하고 어린이놀이터까지 갖추어 '시민 휴식 공간' 기능을 더했다. 건축비는 2천6백40억원(경찰청 4백72억원 부담)이 들어갔다. 고급스런 외양과 넉넉한 부지, 잘 다듬어진 수목과 분수대 등은 특급 호텔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민원인이 가장 많이 찾는 로비는 난방이 되지 않고 화장실은 비좁다. 너비 1m 남짓한 통로 입구에 장애인용 소변기가 설치되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용할 때는 '볼 일'을 마친 사람도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할 형편이다.


장애인 '죽이는' 주차장과 화장실




부산 강서구청은 부산시청과 반대 경우이다. 화장실 통로 너비는 부산시청과 비슷한데, 장애인용 소변기가 가장 안쪽에 설치되어 있다. 휠체어 장애인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서 길을 터 주어야 이용할 수 있고, 겨우 용변을 마친 뒤에는 90° 각도로 서너 번씩 꺾여 있는 화장실 입구를 '곡예 운전'으로 후진해 나와야 한다. 또 전체 주차 공간 2백45면 중 장애인 전용은 겨우 7면이다. 부산지체장애인단체협의회는 강서구청을 '최악의 청사'로 선정했다.


강서구청은 지난해 6월 준공했다. 비슷한 시기에 지은 부산 기장군청과 더불어 해당 지역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물이다. 대부분 농민인 이 지역 주민들은 노후한 농가 주택에서 산다.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어 화장실 한 칸이라도 마음대로 늘렸다가는 해머를 든 철거반이 득달같이 달려온다.


이와 대조적으로 강서구 청사는 지상 7층 지하 1층에 주차장을 빼고도 연면적 16,044㎡를 자랑한다. 이를 청사내 근무자 수로 나누면 공무원 한 사람당 50㎡나 되는 면적이 돌아간다. 특히 강서구청은 아프리카산 카나리아 야자, 아르헨티나산 코크스 야자 등을 조경목으로 선택해 지난 겨울 상당수가 고사했다. '겉멋'에만 신경을 써 이들이 추위에 약한 점을 등한시한 것이다. 마른 빗자루처럼 시들어 가는 값비싼 나무들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심정을 짐작할 만하다.


동해안의 절경과 어우러져 휴양 시설을 떠올리게 하는 기장군청 건물은, 뒤로 돌아 들어가면 문제점이 드러난다. 주차장이 좁아 차 댈 곳을 찾기 어렵다. 그 탓에 주변 도로 곳곳이 불법 주차 차량에 점령되어 있지만, 사정을 아는 군청으로서는 단속할 처지가 못된다.


내년 4월 준공 목표로 4백50억원짜리 청사를 짓는 부산 사상구청 주변은 지진을 겪은 것처럼 땅이 갈라져 있다. 심한 곳은 길이 100여 m, 너비 50㎝ 이상 벌어졌고 1m 넘게 가라앉은 곳도 있다. 그런데도 구청측은 벌어진 곳을 모래로 메워 가며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지자제 실시 이후 공무원들은 근무처를 '회사'로 부르는 데 익숙해 있다. 자치단체장들이 '경영 행정'을 주창하며 자신들을 '○○시·군 주식회사'의 대표라고 강조해 온 영향이다. 그러나 '주주'들이 내는 혈세를 고대 광실을 짓는 데 들이붓는 것을 경영 행정이라고 믿을 사람은 없다.


김대중 대통령도 지난 4월16일 지자체들이 건물 신축, 국제 행사·경기 유치에 과다 투자하는 등 전시성 투자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기획예산처장관에게 "내년 선거를 앞두고 이들의 재정 낭비 여부를 철저히 관리하라"고 지시했다. 부산 16개 구·군과 경남 23개 시·군은 이미 대다수가 청사를 신축했거나 계획을 추진 중이어서 뒤늦은 지적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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