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죽음 뒤 '산자들의 추태'
  • 박병출 부산 주재기자 ()
  • 승인 2001.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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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씨 조문 빙자, 돈벌이·사이버 폭력 난무…
'빗나간 추모 열기' 자성 목소리도


지난 두 주일 동안 우리 사회의 화두는 '의로운 청년 이수현'이었다. 이씨가 1월26일 도쿄의 전철역에서 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사고 소식이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그의 홈페이지(blue.nownuri.net/∼gibson71)에는 애도하는 글이 2만여 건이나 올랐다. 조회 수는 10만을 넘어섰다. 나우누리측은 홈페이지를 영구 보존하겠다고 발표했다. '인터넷 조문'만이 아니었다. 노제 현장이나 혼백을 안치한 정수사에도 각계 인사와 시민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러나 유례 없이 뜨거웠던 추모 열기를 한번쯤 되짚어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한 젊은이의 값진 죽음을 기억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것과는 별개로, 추모 분위기가 촉발된 과정이 '열병(熱病)'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게시판에 욕설과 유언비어, 조문을 위장한 상술 등 사이버 폭력이 난무한 것도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사고 소식은 1월27일 오전 도쿄발 연합뉴스 보도를 통해 국내에 알려졌으나, 다음날이 일요일이어서 국내 일간지들은 29일에야 보도했다. 일본에서는 27일부터 이씨가 유학한 '아카몬카이' 어학교 1층 빈소로 조의금을 전달할 수 있는 은행 계좌 번호와 부산의 집 주소, 조문이 가능한지를 묻는 전화가 빗발쳐, 학교측은 전화를 4대로 늘리고 직원들이 교대로 밤을 새우며 조문객을 받았다. 언론사에도 이씨의 의로운 행동을 찬양하거나 조문 방법을 묻는 전화가 쇄도해 <마이니치 신분>은 일요일인 28일에도 직원이 출근했다. 29일에는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가 고노 외상과 마치무라 문부과학상, 가토 전 자민당 간사장을 대동하고 빈소를 전격 방문해 조문 분위기를 북돋았다.


이씨 유족, 인파에 떠밀려 뒷전에서 '오열'


29일 국내 조간 신문들은 이를 크게 부각했고, 이씨의 홈페이지에는 추모 글이 몰리기 시작했다. 다음날 그의 여자 친구 한 아무개씨(25·부산 남구 대연동)의 글이 실리면서, 게시판은 더 뜨거워졌다. 가수인 한씨는 연인을 잃은 안타까운 심경과 함께 '항상 널 위해 노래 부를게. 널 위해 노래할게. 사랑해'라고 썼다. 그 내용은 '퍼온 글' 형식으로 급속히 퍼져 나가 인터넷 조문객을 불러모았다. 마침 이 날은 이씨 유해가 귀국하는 것과 겹쳐 추모 열기가 더욱 확산되었다. 김해공항에는 비행기 도착 시간인 오후 4시 훨씬 전부터 추모객과 취재진이 몰려 입국장을 메웠다. 그 사이에도 당일 오전 일본에서 있은 고별식(발인)에 29일 빈소를 찾았던 모리 총리와 각료들, 다나카 마키코 의원 등 고위 인사들이 다시 다녀간 사실이 전해졌다.

유해를 맞이해 김해공항 국제선 청사 앞에서 열린 노제에는 유족과 부산 내성고·고려대 등 이씨의 학교 동문 외에 부산 시민, 공항 이용객 등 수백 명이 참석했다. 고인의 아버지 이성대씨(61)와 어머니 신윤찬씨(53)가 겨우 영정 옆에 섰을 뿐, 고모 이성연(56)·여동생 이수진(25) 씨 등 다른 유족은 인파에 떠밀려 저만치 뒷전에서 오열해야 했다.

안상영 부산시장이 직접 나와 고인을 '영접'했고, 김형오 한나라당 부산시지부장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정부는 이씨에게 국민훈장 석류장을 추서하고 김대중 대통령을 대신해 김재종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각별한 애도의 뜻을 전했다. 신언항 사회복지비서관은 노제가 끝난 후 유해를 안치한 정수사까지 찾아가 헌화했다.

2월1일 열린 추모 법회에도 5백명이 넘는 시민이 참석해 이씨의 명복을 빌었다. 법당 앞에는 김대중 대통령·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등이 보내 온 조화 수십 개가 늘어서 추모 열기를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의 보도 자세가 일본 따라잡기 식으로 일관한 바람에 오히려 고귀한 생명을 구하려다 죽음을 맞은 이씨의 정신을 기리기보다 추모 경쟁으로 흐르고 말았다는 지적도 있다. 값진 '살신성인(殺身成仁)'이 아니라 일본땅에서 영웅으로 스러져간 '살신한인(殺身韓人)'으로 만들고 말았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실제로 이씨 추모 홈페이지에는 '상대가 일본인인데도 몸을 아끼지 않고 뛰어든 것이 더욱 자랑스럽다' '일본인들에게 한국인의 기상을 확실히 보여 준 쾌거'라는 글이 적지 않게 올랐다. 반대로 일부 네티즌은 '아까운 한국인의 목숨을 하필 ×바리를 위해 던질 게 무어냐'라거나 '미친 ×' 등으로 폄하하며 반일 감정을 드러냈다. 어쩌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일본인은 '뭇매'나 다름없는 독설 세례를 당했다. 나중에는 각종 홈페이지 선전이 끼어드는가 하면, 일부 유명 사이트마저 '이수현 추모방'을 만들고 일본인 이름으로 이씨의 홈페이지에 광고를 올려 방문객 빼가기를 시도하는 등 '난장판'을 만들었다.


이씨 아버지 "밤 늦은 면담 약속 한 달 이상 밀려"


그 속에 묻혀 있지만 귀담아 들어야 할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부 네티즌은 폭언을 들어가면서도 이씨 추모 열기에 대해 자성을 촉구했다. 최근에만 해도 지난 1월 남해안 유류 운반선 침몰사고 당시 실습 여대생 김학실씨(부산 해양대 3년) 등 동료 선원 7명을 구하고 희생된 항해사 심경철씨(26) 등 매년 의로운 희생자가 여러 사람 나왔는데도 무관심했던 사실을 상기하자는 것이다.

이수현씨의 의거를 과소 평가할 수는 없지만, 이번의 추모 열기는 일본측의 '의도된 영웅화'에 끌려간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한 유명 인사도 국내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에는 공(公)보다 사(私)를, 의무보다 권리를 더 중요시하는 왜소한 젊은이들 때문에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은 망한다는 위기 의식이 퍼지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교육 개혁, 헌법 개정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라고 밝혔다. '일본 국민은 지금 우리도 이수현씨와 같은 청년을 키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라는 표현도 의미심장하다.

유족들은 추모 열기로, 위안을 삼으면서도 부담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은 표정이다. 아버지 이성대씨는 사고 이후 직장인 회계사무소에 출근하면서 각계의 면담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눈코 뜰 새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씨는 "퇴근 시간 이후에 만나야 하다 보니 약속이 매일 밤 10∼11시까지 한 달 이상 밀려 있다"라고 말했다. 시신을 일본에서 화장해 아들의 유골을 안고 귀국한 이씨는 따로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일반 조문객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아사히 신분> 문화사업단과 아카몬카이 어학교 등에 조의금이 답지하고 있고, 일본 정부와 일본철도회사(JR)도 '용기 현창비' 건립, 추모사업 등 다양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씨가 다녔던 고려대와 내성고가 추모 사업을 구상 중이고, 재일 교포 실업인이 한·일 유학생 회관 건립 기증, 기념 조형물 건립 의사를 유족측에 전달했을 정도이다. 달아올랐던 국민적 추모 열기가 식어 가는 지금, 머지 않아 유족이 겪어야 할지도 모르는 정신적 공황에 대한 우려와 함께 앞서간 의로운 죽음들도 다시 한 번 조명한다면 이씨의 살신성인이 더욱 빛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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