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중앙 로비 거점 '서울 출장소' 추진
  • 울산·박병출 주재기자 ()
  • 승인 1995.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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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시 승격 기대 맞물려 시민들도 찬성
본격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 지 한 달이 넘었다. 요즘 민선 단체장들은 바쁘게 뛰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분주한 만큼 눈에 띄는 성과를 얻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바쁘기만 할 뿐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 나가야 할지 막막하다는 하소연이 많다.

그러나 경남 울산시(시장 심완구)는 민원인에 대한 고객 서비스 개념 도입, 경영 행정에서 한걸음 나아간 공격형 경영 추구 등 ‘변화의 물결’을 선도하는 자치단체로 꼽힌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울산시청 서울출장소’ 개설 계획이다. 물론 자치단체의 서울출장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제주도는 77년에 이미 서울출장소를 설치해 직원 5명이 근무하고 있다.

울산시의 경우가 특별히 다른 점은 서울출장소를 설치하려는 목적이다. 제주도의 경우는 출장소 주업무가 지리적 특수성에 따른 서울 출장 직원 편의 제공과 업무 연락, 관광 홍보 활동 등인 반면, 울산시는 이를 정부에 대한 로비의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기초 자치단체가 중앙 정부를 상대로 로비 활동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민선 시대의 변화를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심완구 시장은 선거 전부터 여러 차례 “서울출장소를 개설해 광역시 승격과 예산 확보를 위한 로비 활동을 펴겠다”고 공약했다. 서기관급을 소장으로 하여 5명 정도를 상주시켜 중앙 정부를 상대로 한 ‘정보 수집’과 실무자급 접촉을 맡기고, 필요하다면 부시장과 시장이 직접 나선다는 것이다.

경남도 반응에 관심

심시장의 계획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울산시청 간부급 공무원들이 미묘한 처지에 놓였다. 상급 기관의 ‘눈치’를 의식해서이다. 경상남도로서는 기초 자치단체가 상급 기관인 도를 거치지 않고 중앙 부처에 드나들면 심기가 편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상남도 역시 서울연락사무소 설치를 추진하고 있어 다른 사람에게는 경쟁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마저 있다.

시 고위 관계자는 행정 구조상 기초단체가 직접 중앙 정부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하면서도 “앞으로는 지방자치단체도 적극적 경영 행정을 펼치지 않으면 살아 남기 어렵다. 언젠가는 그런 쪽으로 나아갈 것이다”라고 말해 서울출장소 설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시민들은 더 적극적이다. 서울출장소가 광역시 승격 운동과 맞물려 있는 만큼 무조건 설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울산시에 대한 광역시 승격 방침을 발표했다가 경남도내 다른 시·도 출신 국회의원들의 반발이 거세자 ‘계획을 97년 1월로 유보한다’고 물러섰다. 대통령 공약 사항이 힘없이 밀려난 데 대해 시민들은 불만이 많다. 심지어 97년 약속에도 신뢰를 갖지 못하고 있다.

울산시에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 4명 중 3명이 민자당 소속이다. 유일한 무소속인 정몽준 의원도 여권에 가깝다. 민자당 민주계의 ‘맏형’으로 통하는 최형우 전 내무부장관도 울산 출신이다. 이들이 힘을 모으면 광역시 승격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시민들의 주장에는 반박할 여지가 별로 없다. 시민들은 ‘광역시 승격에 관한 한 정치인은 누구도 우리 편이 아니다’라는 소외감에 젖어 있다. 이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밝은 한 지역 인사의 말을 들어보면 분명해진다.

“97년 승격이 이뤄지려면 지금쯤은 구체적 준비가 진행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된다’ ‘안된다’ 하는 논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시민들 사이에 불안감을 조성해 내년 총선에 ‘여당을 뽑아야 승격이 가능하다’는 득표 전략으로 연결하려는 속셈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총선 후 대선 전에 승격된다 해도, 준비 없는 ‘졸속 광역시’가 될 우려가 있다.”
1차 관문은 내무부 승인

시민들은 광역시 승격 시민 운동을 펼쳐 중앙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여권 인사 중심의 기존 울산광역시승격추진위원회(위원장 김성렬 울산시 의회 의장) 외에 야권 인사들이 주축이 된 울산광역시쟁취시민운동본부(의장 송철호 변호사)를 지난 8월1일 발족해 범시민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이 단체가 추진위에 대해 ‘협력적인 경쟁 관계’로 활동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추진위측 역시 기구 정비와 시민 운동 재점화를 서둘러, 서울출장소 설치는 머지 않아 공론화할 것으로 보인다.

심시장도 이 달 안에 계획을 마무리해 출장소 설치를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출장소 개설이 심시장의 결정만으로 당장 가능한 것은 아니다. 내무부의 승인이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심시장은 출장소에 서울 소재 기업체에 대한 투자 유치 활동, 출향 주민 민원 업무 대행,향토 농수산물 판매 등 다양한 일거리를 주어 승인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무부로서는 그럴 경우 쇄도할 전국 2백30여개 기초 지방자치단체의 출장소 승인 요청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숙제로 안게 된다. 또 사실상의 ‘독립 선언’에 대해 경남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주목거리이다.

울산시가 계획한 대로 ‘울산시청 서울출장소’가 개설된다면 각 지방에서 올라온 ‘공무원 로비스트’가 중앙 부처 주변을 분주히 움직이는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날 날도 멀지 않았다. 그 때쯤 진정한 지방 경쟁 시대가 실감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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