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선학원 ‘분종 위기’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6.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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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종단·선학원, 종헌 놓고 마찰…재산권에 대한 입장 차이서 비롯
대한 불교 조계종의 모체로 알려져 온 재단법인 선학원이 조계종과 ‘남남’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종단이 재단의 임원 자격을 조계종 승려로 못박고 그 선출권도 일부 차지하려 하자, 재단측이 분종까지 무릅쓰면서 이를 막으려는 것이다.

양측은 선학원 정관 개정을 둘러싸고 그동안 계속 갈등을 빚어 왔다. 선학원측은 78년 ‘선학원 임원 피선 자격을 조계종 승려로 제한한다’는 내용을 정관에서 삭제했다. 그 후 종단은 이 조항을 복구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선학원측은 이를 계속 묵살했다.

그런데 94년 출범한 현 개혁 종단은 새로 제정한 종헌 제9조 제3항 ‘본종의 승려가 법인을 설립했을 때는 그 정관에 해당 법인이 종단의 관장 하에 있음을 명기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해 선학원측의 입지를 바짝 조였다.

그래도 선학원이 종단의 요구를 거부하자, 종단은 선학원 이사 2명(법진·성열 스님)을 종단 방침에 역행하는 해종자로 간주하고 4월26일 초심호계위를 열어 징계하려 했다. 그러자 선학원 임원 11명(이사 9·감사 2) 중 9명이 4월24일 총무원에 제적원을 제출했다. 종단의 징계를 무기력하게 하려고 선학원 집행부가 선수를 친 것이다. 조계종 승려 만여 명 가운데 10%쯤 되는 것으로 추산되는 선학원 승려들이 결별을 선언할 경우, 종단의 위상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된다.

종헌은 일반 사회의 헌법과 같아서 종단 내부에서는 절대적 힘을 가진다. 하지만 선학원은 종헌의 구속력에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종단은 법적으로 사단법인 성격의 임의 단체에 지나지 않으므로, 민법에 의해 설립된 재단법인에 법적인 구속력을 가질 수 없다는 논리를 편다. 선학원은 무엇보다 종헌의 조항이 너무 막연하고 포괄적이어서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같은 법리적 견해 차이보다 심각한 요인은 재산권에 대한 입장 차이에 있다.
불교의 재산은 일반 신도들의 시주로 마련된다. 따라서 사찰이나 암자는 근본적으로 개인 재산이라기보다는 불교의 공적 재산이다. 한국 불교는 전통적으로 ‘대중 공의제’에 따라 재산 문제를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제가 사찰령을 공포하고 ‘주지 전권제’를 도입하자 주지가 사찰의 행정을 좌우하며 재산 관리를 도맡았다. 이렇듯 주지들이 절 살림을 독점하다 보니 사판승 중심으로 사찰을 운영하면서 선방 수행승을 박대하게 되었다.

일제가 조장한 주지제의 악습은 광복 이후 정화불사(상자 기사 참조)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그렇지만 조계종이 정화불사로 빈발하던 비구·대처 분규를 종식하고자 태고종 사찰과 승려를 통합 종단에 흡수하는 과정에서 종권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시주를 모아 따로 개인 사암을 창건한 승려들은, 매번 뒤바뀌는 종단 집행부에 재산권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재산을 종단에 등록하지 않고 민법으로 보장된 재단법인에 출연한 예가 많았다. 사찰을 선학원에 증여한 창건주는 영구적으로 주지 자리를 누리며, 자기 도제를 후임자로 지명할 수 있는 사자상승권까지 보장 받아 왔다. 특히 종단에서 소외되어 있던 비구니 승려들이 이런 방식을 선호했다. 선학원의 전체 분원장 가운데 비구니 승려는 70% 가까이 된다.

종단 “선학원이 점차 세속화한다”

종단도 이같은 역사적 배경을 알기에 선학원에 개인 사암을 등록한 승려들을 비판만 하지는 않는다. 조계종 중앙종회 법인대책특위 위원장 정우 스님(구룡사 주지)은 “종단이 어수선하던 시절에 재산을 착복한 이도 많은데 민법으로 보장된 재단법인에 절을 들여놓아 불교 재산으로 유지했다는 사실 자체는 고마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종단은 선학원 승려들이 조계종 간판 아래서 위상이나 교육 등에서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도 종단 살림에는 전혀 기여해 오지 않았다고 여긴다. 총무원 기획실장 현응 스님은 “선학원은 지금까지 종단 사업에 무임 승차해 왔다. 선학원은 자꾸 종단이 재산권을 건드릴 것으로 오해하는데, 종단은 선학원 승려도 이제 의무를 준수할 수 있도록 행정적 연계만을 갖게 하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종단이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선학원이 선리 탐구와 대중 불화라는 설립 취지에서 이탈해 자꾸 세속화한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종단은 선학원이 다른 종단 승려나 일반인의 재산까지 등록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5월6일 열린 종단의 중진 간담회에서 총무원 호법부장 혜창 스님은 이번 사태를 설명하며, 어떻게 태고종 승려나 보살·거사도 분원장이 되느냐고 선학원측에 따졌다고 밝혔다.

호법부장의 말은 종단은 물론 교계에 널리 퍼져 있는 생각을 대변한다. 선학원은 분원 3백5개·포교원 2백24개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과 창건주의 인적 구성(도표 참조) 정도말고는 그 현황이 베일에 싸여 있다. 지금까지 재단의 행정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학원측은 승려가 아닌 사람들도 분원장을 하고 있다는 종단측 비판은 인정하지 않지만, 다른 종단 승려가 소속되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때문에 조계종의 행정 지도를 수용하기가 어렵다는 고충을 털어놓는다. 선학원장 법진 스님은 종단의 정관 개정 요구를 따르기가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이사회가 종단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재산을 찾겠다고 소송을 걸어오는 분원장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재단이 갈등과 분열에 휩싸인다.”

명분으로는 종단측이 우세하지만, 양측 모두 한 뿌리라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하고 동사섭(화해와 포용을 뜻하는 불교 용어) 정신을 발휘하여 분종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이 사태를 지켜보는 교계 인사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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