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수, 25℃ 넘으면 맹물도 온천
  • 최영재 기자 ()
  • 승인 1996.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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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성분 규정 없는 온천법, 마구잡이 개발 불러…사후 관리 전무·오염 무방비
 
전국에 온천 개발 열풍이 불고 있다. 온천 업자들의 광고와 ‘좋겠지’‘약이 되겠지’ 하는 국민 심리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은 최근, 전국에서 아흔여섯 곳이 온천 지구로 지정되었고, 여든 곳에서 온천수 합격 판정을 받았으며, 삼백 곳에서 온천 탐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에서도 온천 개발이 줄을 잇고 있다. 서울에서 온천을 개발했다는 곳은 모두 여덟 군데이다. 광장동 워커힐호텔, 면목동 용마자연공원, 중계동 서울온천빌딩, 서초동 여원빌딩, 자양동 성동백화점, 성산동 수도용지, 염창동 나이아가라호텔, 잠원동 리버사이드호텔 등이다. 서울시는 이 가운데서 워커힐호텔을 온천 지구로 지정하고 온천수 이용을 허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커힐호텔 관계자는 5백∼7백m 정도 깊이로 판 온천공 네 곳에서 26.1∼29℃인 약알칼리성 온천수가 쏟아져 나왔다고 말했다. 워커힐호텔은 온천수 이용 허가가 나오면 일단 사우나와 헬스 클럽에 이 물을 끌어 쓸 예정이다.

 
워커힐호텔은 개발 단계라지만, 서울 노원구 하계동 서울온천은 이미 서울 시내에서 온천 영업을 하고 있다. 지하 7층, 지상 10층, 연건평 만여 평인 건물 전체에 온천탕·수영장·볼링장·식당·이발소·헬스클럽·스쿼시 코트·실내 골프 연습장 같은 여가 시설이 꽉 들어차 있는데, 하루 평균 3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 서울온천은 93년 노원구청과 한국자원연구소가 검사한 결과 지하 8백∼천m 깊이로 판 온천공에서 28.2℃인 온천수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 조항 ‘25℃ 넘고 인체 무해하면 온천’

휴전선 근처 연천 지역에도 온천 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 이 지역은 땅 임자들이 온천수를 발견했다면서 앞을 다투어 목욕탕·상가·식당 같은 위락 시설을 짓고 있다. 덕분에 지난해 말만 해도 평당 5만∼10만원 선이던 온천 개발지 주변 땅값이 20만∼30만원으로 치솟았다.

부동산업자와 건축업자가 온천을 개발하기 위해 기를 쓰고 덤비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일단 온천 지구(온천수가 나오는 온천공 네 곳 확보)나 온천공 보호 구역(온천수가 나오는 온천공 한 곳 확보)으로 지정 받으면 개발 절차가 까다로운 지하수법 적용을 받지 않고 손쉽게 온천을 개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땅값이 뛰고 주거 지역에서도 부분적으로 위락 시설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온천이라고 해서 다 온천일까. 온천 지대는 화산 지대와 정확히 일치한다. 전국토에 좋은 온천이 퍼져 있는 일본이 바로 화산 지대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나라는 비온천 지대라서 몇 군데를 빼고는 온천이 나오기 힘든 지형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온천이 현행 온천법으로 따지면 온천이지만 학술적인 의미로 보면 온천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현행 온천법 제2조에는 온천을 ‘지하로부터 용출되는 25℃ 이상의 온수로서 그 성분이 인체에 해롭지 아니한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성분은 문제삼지 않고 지하수 온도가 25℃만 넘으면 온천수로 보는 이 조항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참고로 여름철 수돗물 온도가 21~22℃인 점을 감안하면 수온 25℃가 얼마나 ‘시원한’ 정도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또 겨울에는 수온이 체온보다 낮으면 목욕을 할 수 없다. 적어도 인체보다 2∼3℃는 높아야 목욕물로 쓸 수 있다. 실제로 최근에 개발된 온도가 낮은 온천들은 물을 보일러로 데워서 쓰는 형편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25℃ 조항은 일본 온천법을 따른 것이다. 한국자원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천혜의 온천 지대인 일본의 경우, 비록 미지근하지만 좋은 광물 성분을 많이 함유한 것을 ‘냉천’이라 하여 온천의 한 종류로 친다. 그 밖의 경우 42도 이하의 것은 온천으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최근에 개발된, 이렇다 할 성분을 함유하지 않은 25도 남짓한 우리나라 온천수는 차라리 광천수라 불러야 옳다”라고 말했다.

 
한정상 교수(연세대·지질학)는 “통상 지표면의 연평균 온도는 15℃인데, 지하로 백m씩 내려갈 때마다 온도가 2℃씩 올라간다. 결국 우리나라는 어디든지 5백m만 파면 25℃짜리 지하수가 나온다. 요즘 업자들은 천m 가까이 땅을 팔 수 있다. 이렇게 퍼올린 지하수를 온천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환경 단체들은 온천법의 25℃ 조항을 개정하기 위해 ‘온천 개발은 질병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온천수여야 하며, 굴착 기술을 감안할 때 38.5℃ 이상의 수온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의 온천법 개정안을 국회 개원과 함께 입법 청원할 예정이다.

현행 온천법의 또 다른 문제점은, 온천의 수질·수량·수온을 사후 관리하는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천업자들은 일단 허가만 떨어지면, 수질이 떨어지거나 적정량 이상 뽑아 쓰거나 수온이 떨어지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주무 부서인 내무부 지역개발과가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당국은 온천업자들의 무분별한 개발이 꼬리를 무는데도 법 제정 뒤 한 번도 단속 규정을 만들지 않았다.

“지자체가 온천 개발 허가 남발한다”

지방자치단체에 온천 허가 업무를 일임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환경단체들은 세수 증대를 노리는 지자체가 생태계 파괴 같은 위험을 안고 있는 온천 개발 허가를 남발한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등 유럽 나라들은 온천 자원을 보존하고 이용하기 위해서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같이 참여하는 관리 체계를 가지고 있다. 온천 개발을 둘러싼 지역 갈등과 환경 파괴 문제를 사전에 막는 제도적 장치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무분별한 온천 개발과 허술한 온천법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온천수는 지하수이기 때문에 빗물이 땅 속에 스며드는 양 이상을 뽑아 쓰면 지하 수위가 내려간다. 지하 수위가 내려가면 그 공간을 메우기 위해 하천수나 하숫물 같은 주위의 오·폐수가 지하수로 흘러들어갈 수밖에 없다. 대구 지역은 70년대부터 지하수 개발붐이 일어나 시추공 수가 1만5천여 개에 이르렀다. 이렇게 지하수를 마구잡이로 퍼쓰다 보니 물 수지 균형(Water Balance)이 무너져 신천과 금호강 주변 오·폐수가 지하수로 스며들기 시작해 지하수를 오염시켰다. 결국 현재 대구 지역 지하수는 대부분 먹을 수 없는 물이 되고 말았다.

서울 시내에서 온천을 개발하는 일은 더욱 위험하다는 지적이 높다. 한정상 교수는 “서울시 자체가 거대한 오염원이다. 곳곳에 주유소가 있고 하수도도 30∼40%는 샌다고 보아야 한다. 온천이 적정 취수량을 퍼올리더라도 주변에 오염원이 있으면 지하수는 오염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온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행 온천법을 개정하는 수밖에 없다. 한교수는 “온천도 새로 개발할 때는 먹는 샘물처럼 환경영향평가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며, 온천공에 자동계측기를 설치해 수질·수량·수온을 전문 연구원이 시간 별로 확인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온천 개발을 둘러싸고 일고 있는 여러 집단 간의 분쟁은 결코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 사이의 문제이다. 무분별한 온천 개발은 후손에게 돌아갈 소중한 자원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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