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동산 수사, 가혹행위·불법성 논란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7.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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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중 가혹 행위’ 의혹에 영장 집행에도 불법성 논란
지난 4월28일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형사합의부(재판장 김선중)에서 열린 아가동산 사건 결심 공판에서 수원지검 여주지청 강민구 검사는 김기순 피고인에게 형법상의 살인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의 횡령 및 조세 포탈 혐의를 인정해 사형을 구형하고, 김호웅씨 등 나머지 피고인 9명에 대해서도 징역 15년부터 10년까지 구형했다. 또 김기순씨를 제외한 피고인 5명에 대해서는 벌금 1백50억원을 함께 구형하고, 신나라유통 등 4개 법인에 대해서도 벌금 92억원을 구형하는 등 벌금 합계 8백42억원을 구형했다.

이 날 강민구 검사는 논고문에서 ‘아가동산은 신도들의 재산과 임금을 가로채고, 교주인 김기순의 명령을 거역하면 신도들의 목숨까지도 빼앗아온 사이비 종교 집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이 범죄 행위를 완강히 부인하는 등 법정 태도가 불순해 중형을 구형한다’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시사저널>은 제379·380호에 연속 게재한 아가동산 사건 추적 기사에서, 검찰의 이러한 판단이 무리일 수도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地官까지 동원해 시체 찾아도 헛일

검찰은 형사 사건에 대한 기소권을 독점 행사한다. 또 독자적으로 첩보를 인지(認知)해 수사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인지 사건 수사를 많이 담당한 검사일수록 유능하다는 평가가 검찰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수사도 하고 기소도 하다 보면, 검사도 사람인지라 편견에 기울어 객관성을 놓칠 수가 있다. 아가동산 사건을 인지 수사한 여주지청의 수사 과정은 과연 적법했는가.

아가동산 사건의 핵심은 아가동산 사람들이 김기순씨의 지시로 강미경양(사망 당시 21세)과 최낙귀군(사망 당시 5세)을 때려죽였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 최낙귀군은 사망 후 화장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강미경양은, 죽는 것을 목격했다는 아가동산 이탈자의 진술만 있을 뿐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여기서 눈길을 끈 증인이 아가동산의 굴삭기 기사인 윤방수씨(44)이다. 윤씨는 지난해 12월19일 작성한 최초의 검찰 조서에서 “강양의 시체를 묻은 적이 없다”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다음 날짜 조서에서는 “묻었다”라고 진술했다. 이에 따라 여주지청은 굴삭기를 동원해 윤씨가 지목한 곳을 파헤쳤으나 강양의 시체를 찾지 못했다. 이어 지관까지 불러 사람이 묻혀 있을 만한 곳을 지목케 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지난 1월3일 열린 증거보전 청구심에서 윤씨는 “강양의 시체를 묻은 사실이 없다”라고 다시 번복했다. 이후 몸을 숨겼다가 불심 검문에 걸려 여주지청으로 압송된 그는 지난 1월21일자 검찰 조서에서 “묻지 않았다”라고 했으나 이틀 후엔 다시 “묻었다”라고 번복했다. 윤씨는 검찰 조서에서는 ‘묻었다’와 ‘묻지 않았다’를 엇갈리게 진술했으나, 판사 앞에서는 일관되게 ‘묻지 않았다’고 진술했다(지난해 12월23일 판사 주재로 열린 공판 전 증인 신문에서는 ‘묻었다’고 진술했으나 이 공판은 위헌 판결이 났으므로 예외로 한다).

아가동산의 공윤순씨는 윤씨가 구속되기 전까지 윤씨와 가장 가까이 있었다. 공씨는 “윤씨는 묻은 사실이 없는데도 검찰이 자꾸 묻은 곳을 대라고 압박해서, 땅을 파더라도 피해가 적을 만한 곳만 대충 골라주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지난 3월31일 윤씨를 면회한 공씨는 “윤씨가 검찰에서 조사받는 도중 맞아서 양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3월24일 원주 기독병원 등이 발행한 윤씨 진단서에는 ‘양쪽 귀에서 모두 신경성 난청 증세를 보이며, 호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적혀 있다.

윤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가혹 행위를 당한 것은 아닐까. 여주지청 역시 신경이 쓰이는 듯 지난 1월24일 작성한 조서에서 윤씨로부터 ‘조사관(수사관)이 사실대로 말하라며 모자로 가슴을 톡톡 친 적은 있으나, 그것 때문에 고통을 못이겨 허위 자백을 한 것은 아니다’라는 진술을 받아냈다. 검찰의 가혹 행위 가능성에 대해 강민구 검사는 “내가 병원에 보내 진단서를 받게 했는데 가혹 행위를 했다니 터무니없는 소리다. 윤씨는 신경이 예민해졌거나 지병이 있어 병이 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맞아 죽은 시체, 얼굴은 깨끗?

윤씨의 진술이 전부 오락가락한 것은 아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아가동산 사람들이 최낙귀군을 이천 아가동산의 돼지우리에 3일간 감금하고 한 삽 가량의 돼지 똥을 강제로 먹이고 온몸에 돼지 똥을 바른 후 2시간 동안 길이 1m짜리 각목으로 무수히 때려 사망케 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윤씨는 모든 조서에서 “최군 시체는 이천 아가동산이 아닌 서울 하계동에서 보았다. 그때 최군의 시체는 (피멍 등이 없이) 깨끗했고 돼지 똥 냄새도 나지 않았다”라고 진술했다.

윤씨는 강미경양 부분에 대해서도 일관된 진술을 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아가동산 사람들은 길이 1m짜리 각목으로 3시간 동안 강양을 때려 숨지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윤씨는 강양의 시체를 묻었다고 진술한 경우에도 “강양의 시체는 (상처 없이) 깨끗했다”라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수 시간 동안 두들겨맞고 죽은 사람의 시신이 과연 깨끗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강민구 검사는 “윤씨가 본 것은 피살자의 얼굴인데 아가동산 사람들은 얼굴을 때리지 않는다. 또 사람을 죽인 후 시체를 깨끗이 씻기 때문에 시체가 깨끗한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최군과 강양이 수 시간 동안 매를 맞아 사망한 것이 사실일지라도 이를 살인으로 볼 것이냐, 폭행 치사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살인할 의사가 있었다면 아가동산 사람들이 굳이 2시간 이상 때릴 이유가 적기 때문이다. 혹시 엄하게 벌을 주려다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라면 폭행치사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많은 법조인의 설명이다. 그러나 치사죄가 적용되면 공소 시효(7년)가 끝나 피고인들은 벌을 받지 않게 된다. 아가동산 이탈자(피해자)인 ㅇ씨도 강미경양을 구타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 중의 1명이나 기소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강검사는 “ㅇ씨는 김기순의 강요로 마지못해 때렸다. 굳이 따진다면 치사죄를 범한 혐의가 있으나 이미 시효가 완료됐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광적으로 때렸으므로 살인 혐의를 벗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여주지청은 아가동산이 안동조씨 명의로 된 순천 땅을 윤씨에게 증여했기 때문에 윤씨가 진술을 번복했다고 주장했다. 공윤순씨는 안동조씨 지분을 윤씨 앞으로 증여하는 일을 추진했다. 공씨는 “채정석 전 지청장은 윤씨 명의로 된 부동산은 압류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내게 말했다. 그래서 압류되는 아가동산의 재산을 하나라도 더 줄이기 위해 증여를 추진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공씨는 “검찰은 윤씨가 무면허로 중기를 운전한 것과, 순천 땅의 실재 소유주는 김기순씨인데 윤씨가 명의를 빌려주었으므로 부동산 실명제 위반이라는 점을 들어 협박했다. 또 윤씨 명의로 된 땅을 압류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회유함으로써 윤씨로부터 강양의 시체를 묻었다는 허위 진술을 받아낸 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검찰 공소 사실 중 상당 부분이 윤씨 진술을 근거로 하고 있다. 때문에 여주지청은 공소장에 윤씨가 15년 동안 아가동산에서 일하고도 1억8천만원에 달하는 임금을 받지 못했다며 윤씨를 아가동산의 피해자로 기록했다. 그러나 윤씨를 비롯한 이탈자 18명이 재판 도중 진정(피해) 사실을 취하했고, 여주지청 또한 이들의 취하에 동의했다.

여주지청이 영장을 집행한 과정에도 불법성이 있었다는 시비가 일고 있다. 여주지청이 아가동산을 처음 수색한 것은 지난해 12월8일 저녁 9시쯤이었다. 그러나 여주지원 최윤중 판사가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은 낮에만 집행할 수 있는 주간(晝間) 영장이었다. 또 이 영장은 압수 품목을 세무·회계·임금 관계 장부로만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주지청은 밤중에 들어가 압수 대상이 아닌 현금(7억원)과 금고를 압수해 갔다.

사람부터 잡아놓고 긴급구속장 발부

이 날 여주지청은 구속 영장이 발부되지도 않은 김호웅씨 등 3명도 잡아갔다. 그러다 문제가 될 것 같자 다음날 오전 1시와 10시쯤 긴급구속장을 발부했다. 긴급구속장이란 구속 영장을 발부받지 못한 용의자를 긴급히 구속해야 할 경우, 검사가 직접 발행한다. 긴급구속장은 48시간 동안 효력이 발생하는데, 검사는 이 시간 내에 법원에 구속 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아야 한다. 지난해 12월16일 김기순씨가 자수할 때 정문교씨 등도 함께 여주지청에 출두했다. 이 날 이후 정씨도 여주지청에 붙잡혀 있었는데, 여주지청은 이틀이 지난 12월18일 오후에야 정씨에 대한 긴급구속장을 발부함으로써 불법 체포 시비를 만들었다.

인지 사건은 검찰이 수사도 하고 기소도 하는 만큼 수사가 적법했는지 심사할 장치가 없다. 때문에 검찰은 내부적으로 상급 기관이나 경험 많은 선배 검사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게 함으로써 인지 사건 수사를 심사하고 있다. 여주지청이 상급 기관인 수원지검과 대검 강력부에 첫 정보 보고를 올린 것은 압수 수색을 한 다음날(96년 12월9일)이었다. 이미 법원이 발행한 영장을 집행하고 난 다음에 정보 보고를 올린 것이라 수원지검 등이 적절한 수사 지휘를 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대검 감찰부의 한 관계자는 “아가동산 수사는 매우 답답하게 진행됐다”라고 평가했다.

아가동산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여주지청의 미숙한 수사 행태는 자칫 김기순씨 재판과는 별도로 새로운 문제를 만들 소지가 있다. 실제로 아가동산측은 강민구 검사 등이 불법으로 수사권을 자행했다며 고소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아가동산 수사를 지휘한 채정석 당시 여주지청장(현 대전지검 공안부장)은 노련한 공안 검사 출신인데도 수사 과정에서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만에 하나 아가동산 사건을 다룬 검사가 불법 수사 혐의로 다른 검사 앞에서 조사를 받는다면, 전체 검찰의 명예가 추락할 것이다. 이래저래 아가동산 사건은 계속 논란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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