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판으로 튄 ‘현중 노 - 노 갈등 ’ 불똥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4.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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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노조, 민노총과 노선 갈등…정몽준 후보측·민노당, 음모론 대결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 박일수씨(50) 분신 사건이 두 달이 지나도록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현대중공업(현중)과 민주노총을 비롯한 비상대책위원회와의 갈등은 현중 노조와 비대위 간의 ‘노-노 갈등’으로 비화해 갈등의 골이 한층 깊어졌다. 비대위가 현중 노조를 ‘어용 노조’ ‘귀족 노조’라고 비판하자 현중 노조는 2월부터 민주노총 산하 금속연맹에 연맹비를 납부하지 않고 있다. 양측의 물리적인 충돌도 잦았다.

살얼음판을 걷던 두 진영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은 3월3일 현중 노조원들이 박일수씨 시신이 안치된 울산대 병원을 습격하면서부터였다. 현중 노조원들은 영안실 앞에 있는 천막을 철거하고 깃발을 부러뜨렸다. 한 현중 노조 간부는 “하청 노조 위원장 등 비대위측이 우리 노조를 어용 노조라고 비판해, 항의 차원에서 한 불가피한 행동이었다”라고 말했다.

현중 노조는 3월11일 6천여 명이 모여 ''현중사랑 자원봉사단'' 발대식을 갖고 ‘박일수 분신대책위의 폭력 집회에 맞서 일터를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현중 노조의 한 노조원은 “우리 노조가 지나치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구사대 같은 일만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금속연맹은 3월26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현대중공업 제명을 결의했다.

노-노 갈등의 여파는 급기야 현중이 속해 있는 울산 동구 총선판으로 파급되었다. 현중 노조가 현중 사측보다 더 사측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정몽준 당선 프로젝트의 일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울산 민주노총 장인권 수석부본부장은 “분신 사건이라는 총선 악재가 터지자 정몽준 의원이 현중 노조를 움직여 노-노 갈등으로 몰고 갔다. 이것이 정씨 입장에서 보면 이 문제를 푸는 가장 이상적인 해법이었다”라고 말했다.

현중 노조, 정몽준 후보 지지로 돌아서

울산 동구에서 정몽준 후보와 맞붙은 민주노동당 김창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측이 민주노동당이 분신의 배후이며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내용의 선전물을 뿌렸다. 실상은 정몽준 후보가 노·노 갈등의 효과를 보기 위함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정몽준 후보측은 민주노동당이 분신 사건을 정치 이슈화할 목적으로 조종하고 있다고 본다. 정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민노당은 분신 사건이 발생하자 엄청난 호재라고 판단해, 정후보가 현중 노조를 사주했다는 네거티브 전략을 폈다. 하지만 주민들로부터 외면당했고 노-노 갈등이 터졌다”라고 말했다.

사정이 어떻든 노-노 갈등의 최대 수혜자는 정몽준 의원으로 보인다. 애초 2만여 현중 노조는 민주노총 뜻을 받들어 민노당 김창현 후보를 지지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고 박일수씨 분신 사건을 계기로 현중 노조는 사실상 민노당 후보에게서 등을 돌린 상태다. 탁학수 현중 노조 위원장은 “민주노동당 김창현 후보가 현중 노조가 전형적인 어용 노조라고 하는데 어떻게 지지한단 말인가. 나부터 안 찍겠다”라고 말했다.

울산 동구에서만 내리 4선을 한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는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후보를 20% 넘게 따돌리며 5선 고지에 성큼 다가서 있다.

10년 넘게 울산 동구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의사는 “정후보가 대선 전 날 지지 철회와 탄핵 투표로 노무현 대통령을 두 번이나 죽였는데도 이 지역은 담담하다. 정후보가 지난 대선에서처럼 갑자기 마음을 바꿔 울산 동구에서 공장을 옮긴다고 하면 어쩌나 하며 지역민들이 눈치를 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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