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경찰서 중국인 노동자 성고문 사건 전모
  • 高濟奎 기자 ()
  • 승인 2000.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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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경찰서 중국인 노동자 고문 사건 전말/불법 체포·폭행도 모자라 성고문까지
“나는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이들이 개·돼지라도 이렇게까지 할 수는 없다.”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터 박천응 목사(40)는 목이 메어 울부짖었다. 그는 6월20일 MBC가 방영한 <칭찬합시다>의 177번째 주인공이기도 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이지 않게 도와, 칭찬 받아 마땅했던 박목사. 그는 6월23일 직접 나서서 시민에게 중국인 노동자 4명의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중국인 노동자들이 무슨 일을 당했기에 박목사가 나선 것일까?

안산 살인 사건 관련자로 지목

위용린 씨(29)는 6월9일 오후 4시30분 대구에서 경찰에 연행되었다. 위씨는 영문도 모른 채 안산경찰서까지 끌려왔다. 밤 10시30분께 안산경찰서에 도착한 그녀에게 경찰관들은 다짜고짜 “6월4일 밤에 통화했던 사람이 누구냐”라며 물었다. 그녀는 짧은 한국말로 기억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경찰은 그녀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바른대로 말하라며 스태플러로 손가락 끝을 누르는 고문을 자행했다. 다음날에도 고문은 계속되었다. 볼펜을 손가락 사이에 넣어 압박하고 손가락을 구둣발로 짓이긴 것은 그나마 나은 편. 수건으로 입을 막은 다음 눕힌 채 한 사람은 허리 위에 올라타고 다른 사람은 경찰봉으로 그녀의 발바닥을 때렸다. 나중에 경찰은 성고문까지 저지르려 했다. 한 경찰관이 그녀의 바짓가랑이 부분을 잡고 옷을 찢어버렸다. 그는 “내가 얼마나 여자들 옷을 잘 벗기는 줄 아느냐”라며 그녀의 한쪽 멜빵 끈을 잡아 풀었다. 이씨는 울면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 “나는 처녀다. 제발 옷만은 벗기지 말아 달라. 옷 벗기면 나는 수치심 때문에 못 산다.” 보다 못한 다른 경찰관의 도움으로 그녀는 위기를 모면했다. 위씨는 6월12일 밤에서야 자신이 왜 붙잡히고 고문을 당했는지 경찰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때까지 그녀는 이유도 모르고 고문을 당한 것이다. 4월28일 밤 10시께 안산시 선부동 ㄱ 아파트 단지에서 남 아무개씨(25·여)가 머리와 얼굴을 흉기로 수차례 맞아 숨졌다. 4월26일에는 정 아무개씨(36·여)가 비슷한 장소에서 머리를 가격 당해 뇌손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6월4일에는 김 아무개씨(36·여)가 같은 수법에 머리를 다쳐 뇌사 상태이다. 결정적인 단서를 찾지 못한 경찰이 주목한 것은 핸드폰. 정씨와 김씨의 핸드폰이 모두 현장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씨의 핸드폰이 범행 뒤 중국과 통화하는 데 사용된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중국인이나 조선족을 강력한 용의자로 여겼다. 김씨의 핸드폰을 추적한 결과 바로 사건 발생 2∼3 시간 뒤 위용린 씨와 통화한 기록을 확인했다. 따라서 경찰은 위씨가 용의자를 알고 있을 것으로 판단해, 무조건 6월4일 밤에 전화 통화한 사람이 누구인지 추궁했던 것이다. 위씨는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4일 밤에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야근 중이었고, 상대방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전화를 끊었다. 마지막 전화는 화가 나서 욕을 하며 끊었다.”

경찰은 위씨를 체포한 뒤 그녀의 핸드폰 기록을 조회해 푸중하우(47)·슈스닝(24)·노즌동(29) 씨를 차례로 연행했다. 푸씨는 6월11일 오후 6시께 안산역 근처에서 연행되면서부터 경찰에 구타당했다. 경찰은 신분증과 영장도 제시하지 않았다. 무조건 잡고 두들겨팼다. 그는 선부 1파출소 수사본부로 끌려가서야 이들이 경찰인 것을 알았다. 목격자에 따르면 푸씨는 이때 수없이 구타당해 정신을 잃었다. 그 뒤 그는 안산경찰서로 옮겨져 조사를 받았다. 이때는 경찰측이 조선족 동포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6월4일 밤 위용린 씨에게 전화한 사람이 당신이냐?”라는 물음에 “아니다”라고 하자 경찰은 다시 집단 구타했다. 경찰봉으로 온몸을 구타해 정신을 잃자 물을 끼얹었다. 고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푸씨는 속옷까지 완전히 발가벗긴 뒤 허리띠로 성기를 집중적으로 구타당했다. 성고문이 자행된 것이다. “맞았다고 말하면 추방하겠다”

6월12일 오전 6시30분께 붙잡힌 노즌동 씨는 “위용린 씨를 알고 있다. 하지만 전화는 하지 않았다”라고 말하자 무조건 맞았다. 자백을 강요한 경찰은 노씨를 수갑 채우고 눕힌 다음 가슴을 짓밟았다. 목을 구둣발로 눌러 숨통을 조였다. 수갑 찬 손을 구둣발로 짓밟고 수갑을 벌리는 고문을 당해 노씨의 손목에는 아직도 수갑 자국이 남아 있다.

슈스닝 씨는 연행 과정에서 경찰에 구타당하고 정신을 잃어 바로 안산 고려대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그는 머리가 찢기고 한쪽 눈을 심하게 맞았다. 슈씨는 경찰서에서 조사받지 않고 바로 퇴원했다. 치료비는 경찰이 부담했다.

경찰은 혐의를 확인하지 못하고 이들을 풀어주면서 “경찰한테 맞았다고 말하면, 불법 체류자이므로 모두 체포해 추방하겠다”라고 위협했다. 이들은 추방되는 것이 두려워 고문당한 사실을 숨기고 회사에 다녔다. 슈씨의 상처를 이상하게 여긴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터 노종남 사무국장(29)이 추궁하자 그는 친구들과 싸워 생긴 상처라고 변명했다. 노국장은 “나를 믿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 설득했다. 결국 슈씨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터는 6월19일 기자회견을 갖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이들을 고문한 사람은 남 아무개씨 살인 사건을 전담하는 안산경찰서 수사본부 경찰관들이다. 경찰서장을 본부장으로 강력5반이 주축이 되어 총 1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문 경찰관들은 처음에는 “체포하다 생긴 상처들이다. 수사 과정에서 가혹 행위는 없었다”라고 발뺌했다. 경찰은 위용린 씨 경우 바짓가랑이가 찢어진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푸중하우 씨 성고문도 부인했고, 슈스닝 씨가 체포 과정에서 칼을 들고 반항했다며 정당 방위를 주장했다. 안산경찰서 고위 관계자도 “성고문은 없었다. 경찰들이 열심히 하려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밝혔다.

기자가 확인하니 위용린 씨는 바짓가랑이 부분이 찢어진 것이 확실했다. 위씨가 머물렀던 여인숙 주인에 따르면, 분명히 가랑이 부분이 찢어져서 자기가 직접 꿰매 주었다고 했다. 슈스닝 씨가 칼을 들고 반항했다는 경찰 주장도 사실과 달랐다. 애인 위미려 씨(20)는 칼을 항상 싱크대 서랍에 두었다고 했다. 칼이 든 서랍에는 그릇도 함께 놓여져 있어 순식간에 칼을 빼기가 불가능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경기도경 감찰계는 고문 경찰관을 조사했다. 6월23일 경기도경찰청에서는 밤늦게까지 고문 경찰관과 피해자 사이에 대질 신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도 고문 경찰관들은 성고문 등 민감한 부분은 사실을 부인했다.

고문 피해자들은 이번 사건으로 무단 결근해 모두 직장에서 쫓겨났다. 위용린 씨는 고문 충격으로 잠을 못자고 악몽에 시달린다. 노즌동 씨는 짓밟힌 목 때문에 침을 삼킬 때마다 통증을 느끼고 귀가 멍멍하다. 푸중하우 씨는 소변을 볼 때마다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마음의 상처 때문에 더 괴롭다. 푸중하우 씨는 떨면서 “나는 몸이 멍든 것은 괜찮지만 마음까지 멍들었다. 가슴이 아프다”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들의 바람은 다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런 일을 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박천응 목사는 경찰 조사를 지켜본 뒤 진상 규명과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법적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이윤주 사무국장(31)은 “경찰이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경찰의 기본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일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성남 외국인노동자의집 김해성 목사 (39)도 “요즘 경찰 표어가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이다. 하지만 경찰들은 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서는 생각을 바꾸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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