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등가 휩쓰는 ‘김강자의 힘’
  • 崔寧宰 기자 ()
  • 승인 2000.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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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공조 단속으로 수도권 초토화…10대들 신종 윤락업으로 이동, ‘근절’ 의문
서울 종암경찰서에 김강자 서장이 1월 6일 취임한 이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일대 속칭 ‘미아리 텍사스촌’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선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 이는 한마디로 울상인 이곳 업주들 표정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하지만 김강자 서장은 윤락 행위 자체는 단속하지 않는다. 현행법이 윤락 행위를 불법이라고 규정했지만, 이를 모두 단속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가 방점을 찍고 있는 부분은 미성년자를 고용해 윤락 영업을 하는 행위다. 하지만 본인이 매일 새벽 미아리를 순찰하는 바람에 이곳의 윤락 영업 자체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그래서 업주뿐만 아니라 미용실·화장품 가게·사채업자·포장마차·미아시장 상인 등 이 지역에 기대어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이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미아리 텍사스촌의 윤락업소 바로 앞에서 영업하는 한 포장마차 주인은 “김서장 때문에 이 장사도 이제 다 해먹었다. 들어오는 골목 어귀에 순경들이 보초를 서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김서장이 새벽에 순찰을 도니 손님이 오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런 탓인지 이곳은 요즘 두 집 건너 한 집꼴로 아예 문을 열지 않고 있다. 미성년자 영업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

전임 김수철 서장 때부터 미성년자 사라져

그러나 미아리에서 미성년자가 사라진 것은 김강자 서장 때문이 아니다. 전임 김수철 서장 시절부터 미아리에서는 미성년자가 사라졌다. 1999년 2월 말 취임한 김수철 서장은 2000년 1월5일 자리를 떠날 때까지 미성년자를 고용한 혐의로 미아리텍사스촌 업소 2백64개 가운데 백여 곳을 폐쇄하고, 주인 90여 명을 구속했다. 1998년 미아리 업소 2백50여개 가운데 단속된 곳이 20곳 정도였던 사실에 견주면 엄청난 단속이다. 이곳 업주들에 따르면, 미아리 역사 40년 가운데 전임 김수철 서장만큼 단속을 많이 한 서장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단속을 펼 때 업주와 접촉하는 민원 부서 대신 의경, 보안과 직원, 각 파출소에서 임의로 뽑은 직원 등 업소 주인과 유착할 가능성이 없는 직원을 동원했다. 김수철 서장이 중점 단속한 대상은 미성년자 고용 영업 행위였다. 현행법으로는 윤락 행위가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으나 그는 백여개 업소를 폐쇄하면서도 윤락 행위 자체를 문제 삼아 처벌하지는 않았다. 1999월 7월 발효된 청소년보호법도 미아리에서 미성년자를 없애는 데 한몫 했다. 업주들에 따르면, 이 법이 통과되기 전에는 미성년자 고용 혐의로 적발되더라도 짧게는 열흘 길게는 한 달 정도면 보석으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이 통과된 뒤로는 구속 수사뿐만 아니라 3개월 영업 정지, 업주와 이용객 명단 공개, 과징금 천만원 등으로 처벌이 크게 강화되었다.

위기 의식을 느낀 미아리 업주들은 1999년 11월 자율정화위원회를 만들었다. 현재 이 모임에는 이곳 업소 주인 2백50여명이 전원 가입했다. 자율정화위원회는 1월10일에는 스스로 미성년자를 고용하지 말자며 결의 대회까지 열었다. 이같은 공감대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1월11일 경찰은 미성년자 3명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윤락을 강요해 1천3백60만원을 갈취한 혐의로 천호동 윤락가 업주를 구속했다. 이 윤락 업주를 신고한 이는 다름 아닌 미아리 텍사스촌의 업주였다. 경찰은 신고한 업주에게 포상금 2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윤락가의 미성년자 영업 행위 단속은 종암서 차원에서만 진행하는 일이 아니다. 서울의 다른 윤락가에서도 미성년자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고, 손님까지 끊기는 일종의 ‘미아리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1월13일 0시30분 서울 청량리역 근처 일명 588 윤락가. 추적추적 내린 겨울비 탓도 있었지만, 이곳은 한창 시간인데도 거의 철시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도 윤락가 입구를 순경이 지키고 서 있고, 거의 10분 간격으로 경찰 순찰차가 경광등을 번쩍거리며 업소 앞을 돌고 있었다.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남자 손님과 순찰 도는 순경 숫자가 비슷할 지경이었다.

공창은 빙산 일각, 단란주점·보도방 방치

이는 서울 천호동 홍등가도 마찬가지였다. 경찰 단속도 단속이지만 언론사 취재가 이어지는 바람에 손님들 발길이 뚝 끊겼다. 미성년자 윤락녀는 이제 이 일대를 다 둘러보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미아리와 서울만 집중적으로 단속한다고 해서 윤락가에서 미성년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쪽에서 단속을 크게 하면 다른 곳으로 업소와 종업원이 옮겨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기와 수돗물을 끊는 등 씨말리기 작전으로 나갔던 서울 천호동 윤락가 단속 뒤, 이곳의 업소가 경기도 일원으로 대대적으로 이동했다. 천호동 윤락가 업소가 대대적인 단속을 피해 옮겨간 곳은 경기도 파주군 법원리 일대 일명 ‘용주골’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취재진은 서울 외곽의 미성년자 고용 윤락 영업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1월12일 밤 11시께 이곳을 찾았다. 소문대로 이곳은 서울과 달리 손님이 그리 크게 줄지 않았다. 이곳을 찾는 손님은 대부분 서울 사람들이었다. 업소 앞을 천천히 주행하며 여자를 고르는 차량 번호판을 보니 70% 정도가 서울 번호판이었다. 서울의 윤락가에서 경찰 단속이 심해지니까 이곳으로 손님이 몰린 것이다.

이곳은 서울과 달리 단속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업소 주위를 경찰이 2인1조로 순찰하고 있었지만, 그 숫자가 서울에 견줄 바가 아니었다. 이곳에서 만난 윤락여성 김미화씨(가명·25)는 “단속이라고 해보았자,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들어와서 둘러보는 수준이다. 지나가는 행인의 앞길을 가로막고 호객 행위를 하는 ‘히파리’만 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미성년자 고용만큼은 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퍼지고 있었다. 김미화씨는 “업주들이 모여 미성년자를 고용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한 곳이라도 미성년자를 고용했다가 들키면 전체 업소가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가게에서 만난 이수정씨(가명·23)는 “요즘은 오히려 손님이 미성년자를 거부한다. 얼굴이 어려 보이는 윤락녀가 나오면 다른 아가씨로 바꿔 달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미성년자에게 금품을 주고 성관계를 맺으면 고객까지 처벌한다는 쌍벌 조항이 생긴 이후 이런 현상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미아리 현상’이 확산되는 것은 경찰 단속이 예전과 달리 전국에서 동시 다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경찰청은 1월10일∼2월28일 50일 동안을 ‘윤락가 청소년 고용 등 특별 단속 기간’으로 정하고 전국적으로 미성년자 매매춘 행위를 단속하고 있다. 경찰은 전국 53개 윤락가 밀집 지역을 중점 단속 지역으로 정했다. 이곳을 중심으로 청소년 매매춘, 고용, 인신 매매 및 청소년 상대 갈취, 폭력 행위를 단속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두고보아야 알겠지만, 전국적인 단속 덕분에 한쪽을 치면 다른 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을 듯하다. 현재 경찰이 집중 단속하는 곳은 미아리 텍사스 촌 같은 윤락업소 밀집 지역이다. 일종의 ‘공창’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업소는 전체 유흥업소 가운데 일부분일 뿐이다. 이는 검찰의 미성년자 고용 단속 통계(아래 표 참조)를 보면 단박에 드러난다. 이 통계를 보면, 미성년자가 가장 많이 적발된 곳은 단란주점·보도방·유흥주점 순이다. 이런 업소에서는 여전히 음성적으로 미성년자가 일하고 있다. 미아리 텍사스촌 업주 모임 대표 김 아무개씨는 “경찰의 집중 단속 이후 이곳 업주와 종업원이 속속 다른 신종 윤락업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전화방·출장 매매춘 등 너무 다양하고 점조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단속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손님들도 주위에서 손쉽게 윤락 여성을 찾을 수 있어 굳이 이곳을 찾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지적한 대로 미성년자가 매매춘 행위를 하는 곳은 미아리 같은 윤락업소 밀집 지역이 아니다. 전화방·원조 교제처럼 쉽사리 단속할 수 없는 신종 윤락 매체로 이미 옮겨가고 있다. 검찰 통계만 보더라도 이런 사실은 드러나지만, 이런 형태의 매매춘 행위는 워낙 개별적이고 음성적이기 때문에 실제 규모는 훨씬 크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일부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경찰의 일제 단속 기간이 끝나면 미아리처럼 관리되는 윤락업소에서도 다시 미성년자 윤락 영업이 고개를 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매매춘 악순환 고리 끊어야

미성년자 매매춘 행위는 경찰 노력만으로는 없애기가 불가능하다. 여성단체·관공서·학교·사회복지기관 등 유관 단체가 유기적인 협조 체제를 갖추고 추진해야만 가능하다. 경찰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가출 소녀를 가정으로 돌려보내면 이들은 대부분 다시 가출해 유흥업소에 재취업하거나 신종 매매춘 영업에 뛰어든다. 이는 검찰 통계를 보더라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같은 악순환은 매매춘 여성과 가출 소녀를 재교육하는 사회 시스템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매매춘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유흥업소에서 10대 윤락 여성을 찾는 남성 수요를 적극 차단하고 엄벌하는 조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성년자와 윤락 행위를 한 남성 명단을 공개한다는 조처는 그 시발점일 뿐이다. 남성의 접대 문화 개혁 등 사회 전반에서 미성년자의 성을 사고파는 야만적인 행위를 엄벌하자는 운동이 일어날 때, 김강자 서장의 미성년자 매매춘 근절 투쟁은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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