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산만하다고요?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0.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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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질환의 대표적 증상…조기 발견 뒤 약물 치료해야
“석환아, 오늘 학교에서 뭐 했어?” “선생님, 스타크래프트 해보셨어요?” “석환아, 학교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게 뭐야?” “선생님, 그런데 리니지도 해보셨어요?”

석환이(10•가명)는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장난감 자동차를 만지작거리며 동문서답을 거듭했다. 상담 교사가 10분 넘게 학교에 관한 질문을 계속하고서야 석환이는 제대로 답하기 시작했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석환이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산만한 아이로 취급받았다. 석환이 어머니 김은숙씨(40•가명)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석환이가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왕따’가 심각한 교육 문제로 한창 떠올라 있을 때였다. 김씨는 불안했다. 석환이의 손을 잡고 성신여대 심리건강연구소를 찾았다. 석환이는 요즘 1주일에 한 번씩 심리건강연구소에서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 석환이가 앓고 있는 병의 이름은 ADHD(Attention Defecit Hyperactivity Disorder;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한국 어린이 8%가 ADHD 환자”

ADHD는 1902년에 처음 알려졌으나 오랫동안 뇌손상을 원인으로 한 ‘미세 뇌손상 장애’ 또는 ‘뇌기능 장애’로 불렸다. 1980년 ADHD가 주의력 결핍을 동반한다고 알려지면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성신여대 심리건강연구소 채규만 교수는 “미국에서는 전체 어린이 중 3∼15%가 이 증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8%가 정도가 앓고 있다”라고 말했다.

ADHD의 원인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학계에서는 유전적인 요인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하지만, 임신부의 음주, 간접 흡연을 포함한 흡연도 영향을 미친다. 채교수는 납 중독도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린이가 납이 포함된 물을 마시거나 자동차 배기 가스에서 나오는 납에 노출될 경우에도 발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정과 사회 환경은 발병 원인이 아니지만 병을 악화시킬 수 있다. 산만한 습성을 고친다고 매를 들 경우 어린이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ADHD는 7세 이전에 6개월 이상 부주의, 충동적인 행동이 지속된 경우에만 진단한다. 7세 이후에 주의력 결핍이나 과잉 행동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우울증이나 다른 질병으로 판단한다. 석환이처럼 어려서부터 앓아 왔으나 나중에서야 진단 받는 경우도 있다.

ADHD 어린이가 항상 산만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게임을 할 때나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에는 집중력이 매우 높다. 석환이도 혼자 있을 때는 게임에 몰두한다. 이처럼 자녀들이 산만하더라도 특정 분야에서 남다른 영특함을 보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평소의 산만함을 지나치기 쉽다.

채규만 교수는 “학계 일부에서는 처칠이나 클린턴도 ADHD 환자로 규정한다. ADHD로 진단받은 아이들이 창의성 검사에서는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한다. 채교수는 제대로 치료받는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6∼7세 이전에 치료를 받으면 ADHD 어린이 가운데 40∼50%는 정상으로 성장한다. 약물 치료와 인지행동 치료 프로그램이 병행되는데, 약물 치료는 리탈린•덱세드린•아데랄 등 중추신경 흥분제를 사용한다. 이미 국내외 연구에서 그 효과가 인정되었다. 하지만 부모들은 편견 때문에 약물 치료를 꺼린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노경선 전문의는 “리탈린과 같은 약물과 다른 프로그램을 병행할 경우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라고 말한다. 채규만 교수는 “모든 약에는 약간의 부작용은 따른다. 리탈린도 초기에 어지러움이나 두통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부모들이 무조건 약물 치료를 반대해 치료가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약물 치료에만 지나치게 의존해 논란이 일고 있는 미국에 견주어, 한국은 인지행동 치료만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전문가들은 이미 효과가 검증된 약물 치료를 병행하지 않는다면, 어린이가 성장한 다음 알코올 중독이나 약물 중독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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