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구하기' 나선 뮌스터 대학 크리스만스키 교수
  • 고제규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3.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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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구명’ 위해 방한한 뮌스터 대학 크리스만스키 교수
송두율 쇼크’가 지나갔다. 재판을 받기도 전에, 송두율 교수(59)는 여론 재판에서 이미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요란했던 언론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이제 무관심하다.

한국에서 차갑게 식은 송두율 쇼크가 독일 사회에 뒤늦게 상륙했다. 11월4일 독일 뮌스터 대학 사회학과 교수들을 대표해 크리스만스키 명예교수(68)가 한국을 찾았다.

그는 송두율 교수가 몸 담은 뮌스터 대학 사회학과를 창설한 원로 교수다. 1971년부터 뮌스터 대학 정교수로 재직했다. 1970년대에 그는 서독에서 마르크스 사회학의 권위자였고, 송두율 교수와 마찬가지로 ‘경계인’을 자처하며 독일 통일에 큰 관심을 기울인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그는 2000년 정년 퇴임했지만, 명예교수로 남아 뮌스터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수인번호 65번’ 송두율을 세 차례 면회한 그는 11월9일 독일로 돌아갔다. 자신을 송두율 구명을 위한 선발대라고 밝힌 크리스만스키 교수를 11월7일 오후에 만났다.

송두율 교수를 잘 아는가?

송교수와는 1971년부터 30년 동안 인연을 맺었다. 1971년 내가 뮌스터 대학에 취임해 사회학연구소를 창립할 때, 송교수는 강사 신분으로 창립 실무를 맡았다. 송두율은 뮌스터 대학 사회학연구소의 주춧돌을 놓은 사람이다. 나는 그의 교수 자격 논문 심사와 외래 교수 채용 심사에 참여했다. 그는 일상의 문제를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 파고드는 훌륭한 학자다. 동유럽과 서유럽, 아시아와 유럽,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등 상호 충돌 관계를 거대한 역사 발전 과정으로 이해하려 했다. 송교수의 학문적 업적은 독일 사회학계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송교수를 면회했을 때 무슨 이야기를 했나?

지난 9월15일 송교수가 귀국하기 전에 독일에서 가족과 함께 만났다. 그때 송교수는 ‘민족 통일을 위해 한국에서 할 일이 생겼다’며 흥분했었다. 그런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철창에 갇힌 그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송교수에게 독일의 지식인들이 연대 활동을 시작했으니 용기를 잃지 말라고 했다. 비록 철창에 갇혀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강해 보였다.

독일 지식인들의 연대 활동이란?

나는 독일 뮌스터 대학 사회학과 교수들이 요청해 선발대 자격으로 왔다. 송두율 교수의 처지를 정확히 알아보고 돌아가서 보고할 계획이다. 우선 뮌스터 대학 사회학과 교수들이 송두율 교수 구명을 위한 웹사이트를 만들고 연대 활동에 들어갔다. 교수 17명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다. 다른 대학의 진보적 지식인들도 속속 연대 활동에 합류하고 있다. 하버마스 교수도 그 가운데 포함된다. 독일 앰네스티 지부는 송두율 교수 구속을 걱정스럽게 보고 있다. 독일 연방의회 의원 몇 사람도 송교수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1월12일부터 16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럽사회포럼에서도 송두율 구명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송교수 문제를 본격적으로 세계 지식인 사회에 제기하겠다.
1968년 서독에서 독일공산당(DKP)이 재창당되었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독일공산당은 동독 사회당의 자금을 받았다. 지식인 가운데 독일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하고 돈도 받은 경우가 있었다. 지식인 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인 논쟁이 뜨거웠지만, 국가보안법 같은 법으로 형사 처벌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1970년대 초반에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직업 선택에 제재가 있었을 뿐이다. 예를 들면 국가 공무원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반시민적 제재라며 저항을 받았다. 독일에서는 논쟁과 토론을 통해 이같은 문제를 극복했다.

송교수가 한국 실정법을 위반했으니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내가 알기로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 국가이다. 그런데 어떻게 반문명적인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겠다. 하버마스 교수를 비롯해 유럽 지식인들은 국제 인권 기준에도 어긋나는 국가보안법으로 송교수를 처벌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변호사 입회도 없이 하루 15시간씩 심문당했다는 대목에서는 한국이 법치 국가인지 의심스럽다.

송교수 문제를 보도하는 한국 언론을 어떻게 보는가?

적어도 정치국 후보위원이나 간첩이라고 보도하려면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한국 언론은 왜곡된 보도를 일삼고 있다. 언론은 증거가 제시될 때까지 인내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너무 쉽게 떠드는 것 같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올 수 있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 경악스럽다.

한국 시민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은?

독일과 한국은 분단국으로서 유사한 경험을 했다. 먼저 통일한 독일의 경우, 동서독 학자들의 교류가 통일 과정에서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송교수가 제시한 내재적 접근법은 한국 통일에 기여할 것이다. 분단 시절 서독 학자들이 동독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여행자 신분이었지만 동독의 장점을 보려 했다. 이는 동독의 처지에서 보아야 가능했다. 송두율 식으로 표현하면 내재적 접근법으로 보아야 보이는 ‘옥’을 보려 한 것이다. 송두율은 옥의 티만 보려는 게 아니라, 티를 안고 있는 옥을 보려고 내재적 접근법을 제시했다. 남북 학자들의 만남을 주선한 그에게 상을 주지 못할지언정 간첩으로 매도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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